미국 경제가 회복하는 가운데 이라크 전쟁때 미국의 편에 서 있던 나라와 그 반대편에 서 있던 나라의 경제 성장 속도가 다르다는 사실이 눈에 띤다. 자위대 파견을 약속한 일본은 15년 가까운 슬럼프에서 헤어나 2ㆍ4분기에 4% 성장을 달성했지만, 전쟁을 반대한 독일과 프랑스는 같은 시기에 마이너스 성장을 기록했다. 세계 경제 회복기에 미국에 줄을 대느냐, 그렇지 않느냐에 따라 성장 속도가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모건스탠리의 이코노미스트 스티븐 로치는 재미있는 계산 결과를 냈다. 그는 95년부터 2002년까지 전세계 국내총생산(GDP) 증가액이 3조1,630억 달러이고, 이중 96%인 3조450억 달러가 미국에서 창출됐다고 주장했다. 이 계산이 옳다면 미국이 95년부터 `강한 달러(strong dollar) 정책`을 추진한 덕분에 각국이 미국에 물건을 많이 팔고 동반 성장한 것이다. 환율 변수를 대입할 경우 미국은 전세계 GDP의 30%를 생산하고, 세계 경제 성장의 60%를 차지한다는 것이 정설이다. 현재 세계 경제 회복에 가장 큰 문제는 미국이 세계 경제 회복의 유일한 견인차이고, 다른 나라가 미국에 지나칠 정도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일본과 프랑스ㆍ독일의 성장 속도가 다른 배경은 환율 변동에서 찾을 수 있다. 올들어 미국은 달러 약세 정책을 취했고, 가장 큰 타격이 유로였다. 유로는 달러에 대해 20% 절상됐다. 국제시장에서 물건 값이 20% 오르고는 경쟁력을 상실하는 것은 불을 보듯 분명하다. 이에 비해 일본은 외환보유액을 쏟아부으며 엔화 절상을 저지하는 바람에 엔화가 달러에는 115~120엔의 좁은 밴드(환율변동폭)를 유지하는 한편 유로에 비해 상대적으로 약세를 기록했다. 일본의 다국적 기업들은 유럽 기업들보다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었던 것이다.
콜린 파월 미 국무방관은 이라크 전쟁후 유럽에 보복을 할 것을 명백히 한바 있다. 이에 비해 최근 아시아를 방문한 존 스노 미 재무장관이 도쿄에서 일본 엔화를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중국 위앤화 절상만 집중 거론했다. 적어도 미국을 지지한 일본에 대해 관대한 것이 워싱턴 경제관료들의 분위기인 것 같다.
달러 강세가 동반되지 않는 한 세계 경제는 불안한 회복의 길을 걸을 것이며, 이 와중에 미국의 압력은 외교적 지지도에 따라 강도를 달리하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재용기자 jylee@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