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 채권단을 비롯해 금융당국, 정치권 등이 현대그룹의 현대건설 인수자금의 적정성을 재확인하겠다고 나선 것은 ‘승자의 저주’를 사전에 방지하기 위해서다.
금호아시아나그룹이 무리하게 인수자금을 차입해 대우건설을 인수한 후 그룹 전체로 유동성 위기가 확산됐던 과거의 경험을 반복하지 말아야 한다는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기업 매각 시 입찰 참여 업체들이 제출한 가격에만 얽매이지 않고 실질적인 조달능력과 향후 재무건전성 유지 방안 등에 대한 종합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여론이 높아진 것도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공동매각주간사도 현대그룹에 나티시스은행의 예금과 동양종금증권과 체결한 컨소시엄 계약서의 풋옵션 내용에 대한 증빙소명을 요청하면서 “우선협상대상자의 선정결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지는 않는 사항이지만 시장에서 이슈가 되고 있는 사항을 확인하는 차원”이라고 밝힌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현대그룹이 현대건설의 우선협상대상자로 선정된 이후 현대건설의 자금력에 대한 의혹은 끊이질 않았다. 우선 입찰 직전에 독일 엔지니어링기업 M+W그룹이 빠지면서 백기사로 등장한 동양종금증권의 자금력에 대해 문제가 불거졌다. 자금난을 겪고 있는 동양그룹이 7,000억원이라는 거액을 지원한다면 분명 현대그룹에 불리한 옵션조항이 붙어있을 거라는 지적이었다. 또 총자산이 33억원에 불과한 현대상선 프랑스법인이 1조2,000억원의 현금을 해외에 예치하고 있다는 것은 상식에 맞지 않는다며 출처에 대한 소명요구가 높아졌다. 급기야 현대증권 노동조합은 나티시스은행 계좌에 있는 자금은 투기자본인 넥스젠캐피탈의 돈이란 의혹을 제기하며 출처를 밝히라고 요구했다.
현대그룹은 이에 대해 “동양종금증권은 명백한 재무적 투자자이며 7,000억원에 대해서는 담보를 잡히지도 않았고 풋백옵션도 들어가 있지 않다”고 해명하고 있다. 하지만 나티시스은행 예금에 대해서는 “비밀유지 조항 때문에 밝힐 수 없다”는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오히려 “채권단의 우선협상대상자 선정 결정에 이의를 제기하는 이들의 행위가 입찰 방해죄에 해당된다면 민형사상 모든 법적 조치를 취할 것”이라며 강경대응 방침을 밝혔다.
현대그룹 한 관계자는 “자금 조달 증빙에 대한 판단은 채권단에서 이미 최종결론 내린 것으로 입찰참가자나 그 밖의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도록 규정에 명시돼 있다”며
“이의제기 금지조항에도 불구하고 금융당국이 여러 입찰관계자들을 불러 추궁하고 근거 없는 의혹을 들어 흠집 내는 행위는 매우 부적절한 행위”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 같은 논란에 대해 금융계 일각에서는 ‘음모론’도 제기되고 있다. 현대건설의 주요 채권단 중 하나인 외환은행의 매각을 앞두고 있는 론스타가 외환은행의 매각가격을 높이기 위해 현대건설 매각을 서두르고 있다는 것이다.
금융계 한 관계자는 “현대상선 프랑스 법인이 나티시스은행과 맺은 계약서가 분명히 존재할 것이며 이것만 제대로 확인하면 자금의 성격, 조건 등을 모두 확인할 수 있는 데 왜 그걸 명확히 밝히지 않는지 모르겠다”며 “채권단 내에서도 현대건설의 자금력 검증에 대해 이견이 있는 것은 빨리 팔고자 하는 세력과 그렇지 않은 세력이 있다는 증거 아니겠느냐”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