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공황의 세계적 충격 D. 로터문트 지음/ 예지 펴냄
침체에 빠진 세계 경제는 다시 회복될 수 있을 것인가. 대부분의 매스컴들은 이라크 전쟁이 끝나면 세계 경제가 다시 빠르게 회복될 것이라고 장담한다. 유가 안정과 미국을 중심으로 하는 세계 체제에 대한 믿음이 재확인되기 때문이란 게 주 이유다.
하지만 일부에서는 반론도 있다. 이라크 전쟁이 끝나도 세계 경제는 회복되지 않을 것이며 오히려 장기 불황에 빠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고 있는 것. 해롤드 제임스 프린스턴대 교수는 현재 상황이 29년 대공황 때와 비슷하다고 지적한 바 있고, 사카키바라 일본 게이오대 교수는 이라크전이후 세계는 동시에 불황에 빠질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하지만 어떤 경우든 이라크 침공으로 드러난 미국의 일방주의가 정치경제적 회로를 타고 세계 질서에 다시 한번 거대한 변화를 몰고 올 것이란 점에는 별다른 이견이 없을 듯하다.
독일 역사학자 D.로터문트가 쓴 `대공황의 세계적 충격`은 29년 미국의 주식시장 붕괴로 시작된 대공황이 어떻게 전세계로 퍼져 나갔는지를 분석한 책이다. 지금까지 대공황이 주로 경제학적 관점에서 미국과 유럽 중심으로만 다뤄졌던 데 반해 저자는 철학ㆍ사회학을 공부한 역사학도답게 인류 상호작용의 역학 이해에 중심을 둔 학제적 관점에서 대공황이 어떻게 선진국에서 저개발국에게까지 전파되었는지를 풍부한 사료를 통해 고증해 낸다.
이 책은 우선 대공황만을 따로 떼내 다루는 게 아니라 1차 세계대전~대공황~2차 세계대전으로 이어지는 일련의 사건들을 하나의 틀 안에서 분석해 낸다. 대공황은 1차 세계대전이후 전쟁채무와 배상금 등으로 얽힌 세계체제의 모순을 전세계로 확산시킨 사건임과 동시에 그 때까지는 국제정치에서 변방의 위치에 있던 미국을 세계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사건이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저자에 따르면 대공황은 발발하자마자 국제적인 신용망을 타고 유럽을 강타하고, 이어 아시아, 아프리카, 아메리카 등 전세계로 그 충격이 급속히 파급됐다. 당시 식민지였던 한국에서는 일본의 과도한 토지세와 인두세의 징수, 동양척식회사의 토지조사를 통한 경작지 수탈, 일본에 종속되었던 통화관리로 인한 디플레이션과 통화가치 하락 등으로 그 파장이 미쳤다. 영국의 식민지였던 인도에서는 노동자들의 실질임금 안정에도 불구하고 `고통의 황금`이라는 당시의 표현대로 인구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농민의 금장신구가 시장에 흡수되었고, 이는 다시 영국으로 흘러 들어가 영국의 경제 회생을 돕는데 쓰였다. 남미에서 나타난 `페론주의`역시 대공황의 여파였다는 게 저자의 주장이다. 아울러 독일에서 히틀러의 등장을 계기로 파시즘이 힘을 얻게 된 것도 대공황으로 각 국이 채택한 불평등한 구상무역협정등의 보호주의, 경쟁적 평가절하를 통한 중상주의등의 정책과 밀접히 관련돼 있다는 분석이다.
저자는 대공황은 국가별, 지역별로 상황은 조금씩 달랐지만 대개 이런 과정을 통해 전세계로 그 충격이 미쳤으며, 특히 저개발국, 식민지 국가들은 대공황의 가장 큰 고통을 떠안게 되었고, 이 지역의 농민들이야말로 대공황의 최대 희생자가 되었다고 결론짓는다.
이 책은 모두 16장으로 구성돼 있다. 1장에서는 지금까지의 연구를 가로막아왔던 경제학의 맹점에 대해 이야기하고, 2장에서는 1차대전이후 금본위제로의 복귀가 가져온 결과에 대해 다룬다. 이어 3장에서는 당시의 국제금융관계를 복잡하게 만들었던 미국과 여타 유럽국가간의 전쟁채무와 배상금 문제를 짚는다. 4장에서는 밀의 과잉생산이 어떻게 국제신용체제에 긴장요인이 되었는지를 다루고, 수급조건이 안정적이었던 다른 농산물들이 어떻게 밀 가격 하락의 영향을 받게 되었는지 분석한다. 5장부터 13장까지는 미국을 시작으로 대공황이 어떤 과정을 거쳐 세계 각국으로 퍼져 나가고, 각 국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되었는 지 개관한다. 유럽은 물론 터키와 이집트, 호주, 인도, 라틴 아메리카 등의 상황이 언급되며, 중국, 일본은 물론 한국의 사례가 다뤄진다. 아울러 14장에서 16장까지는 세계사적 관점에서 유럽 파시즘의 대두와 식민지 해방운동, 히틀러의 등장과 재무장 등 대공황이 가져 온 이후의 정치적 결과에 대해 서술한다.
세계가 30년대 대공황 때보다 더욱 더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여져 있는 오늘날, 이 책은 전문 연구자들뿐 아니라 향후 세계체제의 변화에 대해 관심있는 독자들에게 많은 시사점을 제공해 줄 것으로 기대된다.
<강동호기자 easter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