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정부 당면 과제 중 하나는 바로 수출증대를 통한 경제살리기다. 내수시장 규모가 크지 않은 우리나라 입장에서 수출은 사활이 걸린 중요한 문제다. 국가산업이 발전하면 다시 말해, 기업 활동이 활발해지면 청년실업 같은 문제 역시 어느 정도 해결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물건을 만들었다고 해서 바로 수출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다른 나라에 수출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넘어야 하는 관문 '무역장벽'이 있다. 세계무역기구(WTO) 체제하에서 관세를 통해 수입을 억제하는 관세장벽은 허물어졌지만 기술적인 내용으로 수입을 제한하는 '무역기술장벽(TBT)'이 다시 대두됐다.
대표적인 무역기술장벽이 인증제도다. 국가에서 소비자에게 판매하기 전에 제품이 안전한지, 환경에 위해를 가하지는 않는지, 에너지를 과다하게 소비하지는 않는지 등의 내용을 확인해 이를 만족하는 제품만을 자국의 시장에 유통시키는 것이다. 인증을 취득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제품에 대한 시험이 이뤄지게 된다. 시험한 결과를 기록해놓은 문서를 '시험성적서(test report)'라 하는데 이 성적표와 그 외의 평가 요소들을 종합해 인증서가 발급된다. 미국·유럽연합(EU)·중국·일본 등 주요 수출대상국들 대부분이 이 같은 인증제도를 도입했다. 우리 역시 인증제도(KC인증)를 운영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제조업체가 어떻게 이 기술장벽을 극복할 수 있을까. 답은 의외로 간단하다. 국내에서 해당 국가의 인증을 취득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만약 국내 국가시험인증기관이 주요국 해외인증 획득서비스를 보다 저렴하고 빠르게 제조업체에 제공할 수 있다면 기술장벽은 극복될 수 있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이 같은 패스트트랙을 밟기는 쉽지 않다. 일단 많은 국가에서 자국 법적의무인증제도 인증 권한을 외국 기관에 쉽게 개방하지 않는다. 중국·일본·미국 등 대부분 국가에서는 인증 권한을 갖는 기관을 자국에 소재한 기관으로 한정하고 있다.
그렇다고 답이 없는 것은 아니다.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국가 간 상호인정협정(MRA)을 통해 우리나라 인증기관이 해당 국가의 인증기관으로 지정되거나 우리나라 인증마크(KC Mark)를 해당 국가마크와 동일하게 취급하는 것이다. 대표적으로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우, 사우디아라비아 표준청과 한국 산업통상자원부 국가기술표준원이 2008년 상호인정협정을 체결해 국내에서 해당 인증을 취득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 MRA를 통해 상대국 인증기관을 동등하게 인정하는 경우는 많지 않다. 인증 자체가 일종의 고급 서비스산업으로 간주돼 이미 전 세계 시험 인증시장을 주도하고 있는 기관을 보유한 국가 입장에서는 자국 주요산업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는 정책을 펼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인증산업은 자국 소비자 안전을 확보하고 국가 간 무역에 있어서 자국 시장을 보호하는 '기술장벽' 역할을 한다. 그 자체가 하나의 산업적 특성을 갖는 매우 중요한 분야다. 이런 역할을 수행하는 국가시험인증기관은 역량 확보가 매우 중요하며 이를 기반으로 국내 소비자는 물론 수출 제조업체에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특히 수출 관점에서 국내인증기관이 외국의 국가인증기관과 동등한 법적 자격을 갖추기는 어렵더라도 국내 시험평가가 가능하도록 '시험결과'의 상호인정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시험결과(시험성적서)'를 상호 인정받게 된다면 국내수출제조업체의 제품이 국내에서 시험평가를 받아 비용 절감, 일정 단축은 물론 분야에 따라 기술유출의 위험성까지 모두 낮출 수 있다.
정부가 국내 적합성 평가 능력을 국제적 수준으로 끌어올리고 이를 기반으로 국가 간 MRA 혹은 시험결과 상호인정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현재 정부는 국가시험인증 인프라스트럭처 강화를 위한 사업을 추진하고 있지만 아직 글로벌 시험인증기관에 비해 역량이 많이 부족한 것이 사실이다. 이에 대한 해법으로 정부는 지난해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오는 2017년도까지 선진국 시험인증역량 대비 87%를 확보한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다만 우리나라는 시험인증을 규제로 인식하는 경향이 강해 종전까지 시험인증 산업 발전을 저해한 측면이 있다. 앞으로 시험인증 산업은 우리나라 제조업이 더욱 고도화되고 발전하기 위한 훌륭한 조력자가 돼야 한다.
이관섭 산업통상자원부 1차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