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찾은 경남 거제시 대우조선해양 옥포조선소 내 에너지시스템 실험센터. 6월 문을 연 뒤 언론에 처음 공개된 5,000㎡(약1,500평) 규모 센터에서는 대우조선 LNG선의 핵심 기술로 꼽히는 천연가스 재액화장치(PRS) 개량 작업이 한창 진행 중이었다. PRS는 LNG선이 운항하는 과정에서 자연 기화돼 날아가는 가스를 잡아 액화시켜 다시 창고로 돌려보낸다. PRS를 탑재하면 자연 기화를 최소화하기 위해 적재공간을 줄여가며 화물창을 두껍게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에 건조비용과 운송효율, 선박 연비 등에서 탁월한 효과를 볼 수 있다.
센터는 2005년 조선소 안벽 내 265㎡(80평) 규모 유휴부지에서 출발해 지금에 이르기까지 PRS를 탄생시키기 위한 연구진들의 피나는 노력을 고스란히 담고 있었다. 강동억 대우조선 가스기술연구그룹 차장은 상용화 직전 모델들과 실험장비를 소개하며 “PRS의 개념은 간단하지만 현실에 적용하는 게 기술력”이라며 “내년 상반기에는 지금보다 성능을 10% 이상 개선한 제품을 내놓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센터에서 차량으로 5분 정도 달려 도착한 안벽에서는 세계 첫 PRS 탑재 천연가스추진선 ‘크리올 스피릿’의 마지막 건조작업이 이뤄지고 있었다.
이날 현재 공정률 98%로 도장과 최종점검이 끝나는 내년 1월 캐나다 티케이사에 인도된다. 이 배는 기존 LNG선보다 연비는 30% 좋고 오염물질 배출량은 30% 낮아 연간 운영비 절감액만 500만달러가 넘을 것으로 분석됐다. 이 때문에 이달 초 진행된 시운전 때 세계 LNG선 업계가 뜨거운 관심을 보였고 PRS는 100% 제 기능을 발휘했다. 건조작업을 지휘하는 송하동 선박CM1부서장은 “선주들이 극찬했다”며 “실전에 투입돼 6개월가량 지나 경제성이 입증되면 추가 발주가 기대된다”고 밝혔다.
대우조선은 올해 해양플랜트 부실로 3·4분기까지 4조5,000억원의 영업적자를 내며 부도 직전까지 갔지만 10월 말 산업은행 등 채권단으로부터 4조2,000억원을 긴급 수혈받기로 해 겨우 살아났다. 대우조선은 LNG선을 디딤돌 삼아 재기를 노리고 있다. 실제 LNG선은 모든 선종을 통틀어 가장 수익성이 좋고 대우조선 전체 매출 가운데 LNG선 비중은 올해 20%에서 내년 30% 이상으로 훌쩍 뛴다. 2014년 PRS와 천연가스추진 방식을 내세워 세계 LNG선 발주량(63척)가운데 37척을 싹쓸이한 성과가 이제는 실적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대우조선의 한 관계자는 “구모양의 모스방식 LNG선이 대세이던 2000년 대우조선이 네모난 멤브레인형을 독자 출시해 시장을 장악한 것처럼 이번에는 PRS로 새로운 기회를 만들 것”이라고 설명했다.
옥포조선소에서는 대우조선 임직원들의 경영정상화 의지도 곳곳에서 드러났다. 임직원 가운데 80% 이상이 올해 받은 격려금을 우리사주 유상증자에 참여하겠다는 동의서에 서명했으며 참여율은 더 늘 것으로 예상된다. 고통을 함께 나누겠다는 뜻으로 철저히 자발적으로 이뤄진다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생산 현장에서는 매주 2회 조업을 마친 뒤 마라톤회의를 열어 공정 개선 방안을 논의하고 바로 적용하고 있다. 옥포조선소의 한 고위관계자는 “올해 조선업이 말썽을 일으킨 것은 사실이지만 지난 15년간 한국 경제 발전을 이끈 효자 산업이었다”며 “반드시 영광을 재연하겠다”고 다짐했다.
/거제=임진혁기자 liberal@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