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을 비롯한 글로벌 경기침체와 화웨이·샤오미 같은 후발업체의 추격으로 고전하고 있는 삼성전자가 스마트폰과 TV 등 주요 정보기술(IT) 제품이 '저성장 시대'에 진입했음을 공식화했다.
영업이익 10조원 시대는 당분간 다시 오기 어려우며 삼성전자도 예전 같은 성장세를 보이기 어렵다는 경종을 스스로 울린 것이다. 삼성이 내부적으로 저성장 시대를 공언한 만큼 체질개선과 사업개편 속도는 한층 빨라질 것으로 전망된다.
권오현(사진)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은 2일 사내 게시판에 공개한 창립 46주년 기념사에서 "스마트폰·TV 등 IT 산업의 주요 제품이 저성장 시대로 진입하고 선진 경쟁사들이 새로운 기술과 모델을 도입해 기존의 가치사슬을 바꿔나가고 있다"고 밝혔다. 그는 특히 "지금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차원이 다른 변신이 필요하다"며 "제품개발과 운영, 조직문화 등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 새로운 시대의 선도자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권 부회장의 말은 삼성전자가 변곡점을 지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삼성 내부 관계자는 해석했다.
삼성의 한 고위관계자는 "삼성전자가 한때 영업이익 10조원을 내기도 했지만 고객도 영리하고 경쟁사도 놀고 있는 게 아니다"라며 "삼성전자는 이익 규모 등에서 새로운 기준, '뉴노멀'로 갈 것"이라고 했다.
글로벌 금융위기로 금융사에 저성장·저수익이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았듯 삼성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실제 삼성전자의 주력인 IT 분야는 경쟁이 갈수록 심화하고 있다. 반도체만 놓고 봐도 중국 칭화유니그룹이 미국 업체인 샌디스크를 우회 인수했고 세계 1위 반도체 업체인 인텔은 30년 만에 메모리 시장에 다시 뛰어들겠다는 의지를 밝혔다.
삼성전자가 거래선을 다변화하고 있고 메모리 분야에서는 독보적인 경쟁력을 유지하고 있지만 격차는 줄어들 것이라는 게 업계 예상이다. 스마트폰 시장도 사면초가 신세다. 삼성전자의 3·4분기 IM부문 영업이익은 2조4,000억원대로 3조원의 벽을 넘지 못하고 있다. 게다가 중저가 제품판매가 늘면서 평균판매단가(ASP)는 180달러 수준에 불과하다. 중국 현지에서도 토종 업체에 밀리고 있다. 화웨이는 중국 스마트폰 시장에서 9월 말 기준 점유율 15.2%로 1위다.
TV도 샤오미가 초저가 대형 울트라고화질(UHD) TV 출시를 선언했다. '반값 TV'라는 얘기가 나올 정도로 가격 경쟁력이 높다. 시장조사기관 IHS에 따르면 중국 TV 시장에서 삼성전자의 점유율은 9%대로 5위권에 그쳤다. 삼성 내부에서는 권 부회장이 직접 변화의 중요성을 주문한 만큼 지금까지 이어져왔던 사업 개편이 더 빨라질 것으로 보고 있다. 이날 권 부회장은 "지난날의 성공 방정식에 집착하지 말고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변신이 필요하다"며 "캐치업(catch up) 모드에서의 변신과 퍼스트 무버를 향한 변신은 차원을 달리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그는 또 "제품 개발과 운영, 조직문화 등 모든 것을 새롭게 시작해 새로운 시대의 선도자가 돼야 한다"고 주문했다. 이 때문에 연말 있을 인사와 조직개편이 대대적으로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에 힘이 실리고 있다. 삼성전자의 경우 지금도 지원인력 현업 재배치와 일부 직원에게 희망퇴직을 유도하고 있는데 상황에 따라서는 그 폭이 더 커질 것이라는 얘기다.
현재 삼성전자는 본사 인력 가운데 최대 30% 정도를 사업부로 전환 배치하고 연구개발 조직인 DMC연구소 규모도 대폭 축소하고 있다.
/김영필기자 susopa@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