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빛과 눈부신 초록으로 둘러싸인 스위스의 한 고급 호텔. 휴양을 즐기러 온 부유층과 명사들로 가득한 곳이다. 세계적 지휘 거장 프레드 밸린저(마이클 케인)도 매년 이 곳을 찾는 한 명. '심플송'이라는 현대 클래식을 탄생시킨 그는 영국 여왕의 특별 지휘 의뢰를 받을 정도로 존경받는 마에스트로다.
함께 휴양지에 머무는 친구 믹 보일(하비 게이틀)도 성공한 삶을 산 인물이다. 거장까지는 아니더라도 할리우드의 주목받는 영화 감독이었다. 은퇴한 밸린저와 달리 그는 지금도 젊은 각본가들과 함께 영화사에 길이 남을 유작을 만들고자 열정을 불태운다.
하지만 아쉽게도 두 사람은 모두 늙어 버렸다. 곳곳에 검버섯이 핀 피부는 보기 안쓰러울 정도로 탄력을 잃었고, 매일 아침 소변 한번 시원하게 보는 게 소원일 정도로 신체는 쇠락했다. 예전 같지 않은 게 육체만이 아니다. 음악을 삶의 전부로 여기며 살아 온 밸린저는 여왕을 위한 영광스러운 연주 자리를 알 수 없는 이유로 거절한다. 젊은 시절이었다면 생각지도 못할 일이다. 믹 보일도 끝내주는 작품으로 선명한 생(生)의 마침표를 찍고자 고군분투하지만 연출력과 창의력 모두 과거 같지 않다.
85세 노인을 주인공으로 설정한 동시에 '유스(Youth·젊음)'라는 제목을 내 건 이 역설적인 영화가 두 시간 동안 집요하게 보여주는 것은 바로 이 같은 '젊지 않은' 삶이다. 그렇다고 빛났던 과거를 회고하거나 통상 생각하는 노년의 정서-고독 등-를 강조하는 종류는 아니다. 그저 더 이상 젊지 않은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을 담담히 비추고 그들이 어떤 미래를 바라보는지를 함께 고민한다. 그리고 묻는다. 대체 젊다는 것은 무엇일까. 그리고 나이 든 삶은 어디로 가는가.
답을 찾아가는 방식이 쉬운 편은 아니다. 뚜렷한 플롯이 있기 보다는 추상적인 이미지와 파편화된 대사, 다양한 캐릭터들의 비교·대조를 통해 이야기를 끌어가기 때문이다. 카메라는 노년의 한껏 주름지고 지친 몸과 싱그럽기 짝이 없는 젊은 육체의 이미지를 집요할 정도로 번갈아 보여주며 나이 듦에 대한 관객의 생각을 자극한다. 세계를 호령했지만 현재는 비만으로 걷기 조차 힘든 남미 축구스타와 아름다운 육체를 무기로 모든 것을 다 가진 미스 유니버스, 한물간 여배우 브렌다 모렐의 주름진 입술과 빛나는 육체를 댄스 게임에 소모하는 마사지사 등 수많은 인물들을 보여주며 젊음을 묻는다. 모든 것이 가까이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젊음과 모든 것이 멀리만 느껴지는 노년의 삶. 두 개의 충돌하는 이미지 속을 헤매다 보면 젊음과 나이 듦에 대한 어떤 생각이 조금은 손에 잡히는 듯 하다.
이미지와 음악이 중심이 된 영화인 만큼 빛나는 장면들이 참 많다. 특히 영화 초반부터 언급되지만 마지막에서야 등장하는 '심플 송'은 소프라노 조수미의 아름다운 목소리와 더불어 놀라울 정도의 감동을 준다. 7일 개봉.
/김경미기자 kmkim@sed.co.kr
사진제공=그린나래미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