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도 한 번 잘 살아보자'던 힘찬 구호는 반 백 년도 못 돼 '헬조선'이라는 자조로 바뀌었다. 힘들지만 저 산만 넘으면 부자 나라, 행복한 삶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던 믿음이 철저하게 배신당한 까닭이다. '한강의 기적'으로 대표되는 급속한 경제성장의 과실이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전. 오히려 지금은 청년실업, 빈부격차, 부의 고착화, 사회갈등 등 난제가 산적해 있다. "모두가 힘을 합치면 못 해낼 일이 없다"는 구호로는 더이상 강한 나라를 만들 수 없는 세상. 저자는 '강한 나라=경제적으로 발전한 나라'라는 단순한 도식적 사고에서부터 벗어나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국 사회의 발전에 대한 논의가 보수·진보를 막론하고 오직 경제적 차원에서 성장과 분배라는 제한된 상태로 다루어져 왔기에 지금껏 이렇다 할 대안을 내놓지 못했다는 것이다. 좀 더 적나라하게 말한다면, '경제성장'이란 일시적인 진통제일 뿐 문제의 근원을 해결할 만병통치약은 더 이상 아니라는 이야기다.
경제학자 출신으로 시민단체와 행정기관을 두루 거친 저자는 사회 발전을 자유, 생명, 신뢰, 재산권, 견제와 균형 등 기본 가치의 실현이라고 정의하고, 이를 구현하는 수단으로 '사회적 기술'이라는 개념을 제시한다. 단순히 재화를 생산하는 기술과 달리 사람 간의 게임 규칙인 제도와 이를 실행에 옮기는 조직, 그리고 이를 이끄는 리더십이 사회적 기술에 해당한다. 책은 사회적 기술을 구성하는 제도·조직·리더십이 역사적으로 어떻게 구현되었는지 인류의 시작부터 현대까지, 동서양을 넘나들며 구체적인 사례와 함께 제시한다.
서문엔 인류 역사에서 번영했던 사회의 공통점이 언급돼 있다. 신분 이동·교환 및 교역의 확대, 권력분립, 신뢰와 법치의 강화. '헬조선'이라 불리는 지금 여기, 2016 대한민국엔 무엇이 있고 없는지 따지며 책장을 넘긴다. 읽을수록 우리네 현실이 안타까운 것은 어쩔 수가 없다. 1만 8,000원.
/송주희기자 ssong@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