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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고무 생산의 70%를 차지하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 등 3대 고무 생산국이 다음달부터 한시적으로 수출 물량을 대폭 줄이기로 했다. 5년 넘게 추락해온 고무 가격을 떠받치기 위해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이들 3개국이 공조해 공급을 줄이겠다는 것이다. 철강 과잉생산으로 국제사회의 비난을 받고 있는 중국은 철강 관련 신규 프로젝트를 동결시켜 철강 생산능력을 최대 1억5,000만톤까지 억제할 계획이다. 이처럼 원자재 값 하락에 맞선 생산국들의 공급통제 움직임이 가시화하고 있지만 시장은 효과에 대해 반신반의한다. 석유 카르텔의 감산 논의가 시장점유율을 뺏기지 않으려는 주요 원유 생산국들의 이해관계 때문에 좌초되는 상황에서 다른 원자재의 가격 방어가 얼마나 성공적으로 이뤄질지는 미지수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현지시간) 국제삼자고무협회(ITRC)를 구성하는 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태국이 다음달부터 6개월 동안 한시적으로 고무 수출을 20% 줄이기로 합의했다고 보도했다. ITRC는 국제 원유 공급량을 쥐락펴락하는 석유수출국기구(OPEC)처럼 고무 생산에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이번 합의로 세계 시장에 공급이 묶이는 수출 물량은 총 61만5,000톤에 달한다.
ITRC가 수출통제 합의에 도달한 것은 지난 5년 동안 70% 가까이 주저앉은 천연고무 가격 때문이다. WSJ에 따르면 도쿄상품거래소에서 6개월물 고무 선물가격은 2011년 ㎏당 500엔대에서 현재 150엔대에 머물고 있다. ITRC 회원국인 태국의 경우 전체 인구의 10%가 고무 생산에 종사할 정도여서 지속적인 고무 가격 하락은 이들 국가에 경제적으로뿐 아니라 정치적으로도 큰 부담이다.
공급물량을 줄여 가격을 떠받치려는 움직임은 고무 생산국에서만 일어나는 일은 아니다. 중국 국무원은 과잉생산에 따른 철강 가격 하락을 억제하기 위해 향후 5년 이내에 철강 제품 생산능력을 1억~1억5,000만톤 감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고 이코노믹타임스는 이날 보도했다. 국무원은 이를 위해 신규 철강 프로젝트 승인을 동결하고 폐쇄되지는 않았지만 가동을 중단한 일명 '좀비' 시설이나 낙후 시설은 폐쇄할 방침이다. 원유를 비롯해 철강·구리·알루미늄·면화 등 원자재의 베어마켓(약세장)이 가시화하면서 주요 생산국들의 가격 방어 대책이 가시화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이러한 움직임이 실제 원자재 가격 반등으로 이어질지는 불투명하다. WSJ에 따르면 시장 전문가들은 글로벌 수요가 약해지고 재고는 쌓여 있는 상황에서 수출을 줄인다고 가격이 장기적으로 회복되지 않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게다가 생산이나 수출을 억제하는 것은 곧 글로벌 시장에서의 점유율을 경쟁국에 내줘야 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태국 고무 산업 관련 협동조합 관계자는 ITRC 합의에 대해 "과거에도 그랬듯이 3개국이 모두 약속을 지킬 것으로 보지 않는다"며 수출제한 조치에 대한 회의감을 드러냈다. WSJ는 2012년에도 ITRC가 한시적인 수출제한에 나선 결과 고무 가격이 '반짝' 반등했으나 장기적으로는 제자리로 돌아왔다고 전했다.
중국의 철강 과잉생산 억제 방침에 대해서도 국제사회의 반응은 반신반의다.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세실리아 말름스트룀 EU 통상담당 집행위원은 가오후청 중국 상무부장에게 서한을 보내 중국 철강 수출이 지난해 50% 이상 늘어나 특정제품 가격이 절반으로 떨어졌다고 지적하며 "우려되는 추세를 감안해 철강의 과잉생산, 상황을 악화시키는 기타 요인들을 억제할 적절한 제반조치를 취할 것을 당부한다"고 촉구했다. 그는 최근 리커창 중국 총리가 국내 철강 과잉생산을 줄일 방침을 밝힌 데 대해 환영하면서도 이런 다짐은 "반드시 가능한 한 조속히 구체적 결과로 나타나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편 세계은행은 최근 주요 원자재의 80%에 달하는 원자재 가격 전망을 하향 조정했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10월 전망 당시 톤당 59.5달러로 예상했던 2016년 철강 가격을 올 1월에는 42달러로, ㎏당 1.7달러로 내다본 고무 가격 전망치는 1.4달러로 각각 하향 조정했다.
/신경립기자 klsin@sed.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