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율전쟁 新무기 장착한 美… 조작국 통상·투자 직접 제재 가능

■ 법안 발효 임박 환율버전 '슈퍼 301조' 파장은
美와 거래하는 모든 나라 무역·산업정책 등 강제 길터
거대 신흥국보다는 韓·대만 등에 본보기 보일 가능성
법안 잠재적 파급력 사전 점검·관련 조직 상설화 필요



환율 버전 슈퍼 301조라 할 수 있는 베넷-해치-카퍼 수정법안(이하 BHC법안)은 환율 조작국에 대한 미국의 직접 제재를 가능하게 한다는 점이 기존과 다르다. 그동안 미국은 수출 제고를 위해 자국 화폐에 대한 저평가를 유도하는 환율 조작 행위에 대해 구두 경고, 보고서 발표, 국제사회를 통한 간접적인 압력을 행사해왔다. BHC법이 발효되면 미 정부는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환율 조작 의심 국가들에 대한 분석을 확대하고 통상과 투자 부문에서 직접적인 제재를 가할 수 있는 '새로운 무기'를 갖고 환율전쟁을 벌일 수 있게 된다.


14일 외신에 따르면 백악관은 지난 11일(현지시간) 보도자료를 통해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무역촉진법 2015 (Trade Facilitation Trade Enforcement Act of 2015)에 대해 서명할 것이라고 밝혔다. 무역 관련 광범위한 법안을 다루는 무역촉진법은 7편(Title 7)에서 환율 조작 의심국에 대한 분석과 제재 내용을 포함하고 있다. 이 법안을 주도한 의원들의 이름을 따 베넷-해치-카퍼 수정법안으로도 불린다. 백악관은 "이 법안은 불공정한 환율 개입 관행에 대응할 수 있는 전례 없는 새로운 수단을 제공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BHC법안은 △미국의 주요 교역국 중 환율 개입(의심) 국가들에 대한 분석 확대 △국제사회 제재 유도 △직접적인 제재 강화 방안 등을 담고 있다. 우선 환율 조작 의심국의 통화가치가 저평가된 원인을 분석하고 해당국에 시정 조치를 통보할 수 있다. 시정이 이뤄지지 않으면 제재에 들어갈 수 있다. 직접 제재 방안으로는 미 연방정부의 조달 계약을 금지하고 환율 조작국에서 이뤄지는 신규 투자에 대한 해외민간투자공사(OPIC)의 자금 지원이나 보증을 제한하는 방안 등이 포함된다. 특히 미국과 새로운 무역협정 협상시 상대국의 환율 정책을 문제 삼을 수 있는 근거조항도 마련됐다.

미국이 이 같은 법 통과를 서두르는 이유는 2000년 이후 미국의 경상수지가 지속적으로 악화되고 있는 가운데 기준금리 인상에 따른 달러 강세가 예상되기 때문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BHC법안은 환율을 매개로 미국과 거래하는 모든 나라의 무역·외환·통화·산업정책을 강제할 수 있는 파급력이 큰 법안"이라고 설명했다.

당장 한국이 이 법안의 1차 타깃 국가가 될 우려가 제기된다. 미국이 환율전쟁 선전포고를 하기에는 파장이 너무 큰 중국과 같은 거대 신흥국보다는 한국·대만과 같이 경제 규모가 작고 정치적 영향력이 미미한 나라부터 '본보기'를 보일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한국은 중국·대만·이스라엘 등과 함께 2000년 이후 지속적인 대미 무역수지 흑자를 기록해왔고 최근 3년간 전체 경상수지가 GDP 대비 6%를 상회하고 있다. 특히 미 재무부는 한국에 대해 외환 시장에 개입하고 있다고 지적해왔다.

이에 따라 대응책 마련이 시급하다. BHC법안에서 환율 조작 여부를 판단하기 위해 사용되는 방법론뿐만 아니라 자체 환율 분석 모델 등을 개발해 미국에 대한 치밀한 대응 논리와 데이터를 마련해야 하는 것이 급선무다. 또 외환 및 통상과 관련한 여러 정책부처 간 긴밀한 공조 체계 강화가 필요하다. 김성훈 한경연 부연구위원은 "정부가 해당 법안의 잠재적 파급력을 사전 점검하고 데이터와 연구에 기초한 외환·통상 외교 능력을 갖춰야 한다"며 "기획재정부·한국은행·외교부·산업통상자원부·국제금융센터 등 관련 기관 공조를 확고히 하는 한편 관련 조직 상설화도 고려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혜진기자 has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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