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컨틴전시플랜] 경제교과서에도 없는 멀티플위기… "차원다른 해법 필요"

'美 테이퍼링' 단일 이슈와 싸웠던 때와 다른 양상
증시 외국인자금 석달만에 7조3,000억 빠져나가
"불확실성 커졌다" 양대 경제수장 화법도 달라져



"권투에서도 잽을 계속 맞아 누적되면 KO될 수 있다는 것을 유념해야 합니다."(유일호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정부가 지난 2013년 '테이퍼 탠트럼(긴축 발작)' 때 세운 컨틴전시 플랜을 전면 수정하고 나선 것은 대외경제상황이 과거 어느 때보다 복잡한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기 때문이다. 위기의 공식이 달라지면서 과거 해법은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고 판단한 것이다.


2013년만 해도 국제금융시장을 지배한 이슈는 미국의 테이퍼링(양적완화 축소) 한 가지였다.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미국의 기준금리 인상과 맞물려 중국의 경기둔화, 유럽의 상업은행 유동성 위기, 일본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에 따른 시장 충격 등 동시다발로 악재가 덮치고 있다. 여기에다 저유가발 리스크까지 겹쳤다. 기획재정부의 한 관계자는 "과거에는 바다 위에서 튜브에 의존하고 있는데 테이퍼링이나 엔화 약세 등 한 개의 파도만 순차적으로 몰려와 이에 맞게 헤엄을 치면 됐는데 이제는 미국·중국·일본·유럽·저유가 등 사방에서 파도가 덮쳐오는 상황"이라고 묘사했다.

더구나 몰려오는 파도 모두 초유의 일이다. 일본이 사상 처음으로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도입하는 실험에 들어가자 주가가 폭락하고 엔화 가치가 급등하는 등 여진이 뒤따르고 있다. 축복이라 여겨졌던 저유가는 산유국의 연쇄 디폴트(채무불이행) 가능성을 키우며 우리 경제에 '독(毒)'으로 돌아오고 있다. 기존 경제학 교과서로는 이해하기 어려운 현상들이다.

한때 10%씩 성장하던 중국 경제성장률은 6%대로 둔화됐고 위안화 가치 변동에 따라 금융시장은 출렁이고 있다. 미국의 금리 인상은 현재 진행형이며 유럽에서는 마이너스 금리 도입으로 시중은행발 위기 가능성이 고조되고 있다. 여기에 북한의 장거리 미사일 발사는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논란으로 번지며 지정학적 리스크를 끌어올리고 있다.

실제 우리 주식시장을 보면 2013년 테이퍼 탠트럼 당시보다 외국인 투자금의 유출이 심각하다. 2013년 5월 테이퍼링 가능성이 처음 제기된 후 6월 한 달 동안 5조1,470억원의 외국인 자금이 빠져나갔지만 그뿐이었다. 이후 7월·8월·9월 모두 순유입돼 연간으로 보면 총 4조7,240억원이 들어왔다. 다른 신흥국과 엄연히 차별되는 양상을 보인 것이다.

하지만 최근에는 △지난해 11월 1조1,680억원 △12월 3조690억원 △올 1월 3조 710억원 등 3개월간 무려 7조3,080억원이 빠져나갔으며 2월에도 18일까지 약 6,000억원이 유출되는 등 다른 신흥국과 마찬가지로 외국인 자금 유출로 몸살을 앓고 있다. 잠잠하던 채권시장에서도 유출 양상은 뚜렷하다. 2013년에는 8월부터 12월까지 총 8조3,800억원이 빠져나갔다. 올해는 1월 4,870억원이 순유출됐으며 2월에는 12일까지 무려 3조3,808억원을 팔았다.

시장의 불안심리를 잠재우는 데 초점을 맞췄던 우리 경제 양대 수장의 화법에도 위기감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유일호 경제부총리는 최근 "애초 생각했던 것보다 대외환경이 어려운 상황"이라며 "주요 2개국(G2) 리스크가 아닌 주요4개국(G4) 리스크가 가장 큰 위험요소"라고 전선을 넓혔다.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는 최근 개최한 금융협의회에서 "중국 금융시장 불안, 국제유가 추가 하락, 일본은행의 마이너스 금리 도입 등으로 국제금융시장의 변동성이 대단히 커졌다"며 "이런 대외 리스크에 북한 관련 지정학적 리스크까지 가세해 불확실성이 어느 때보다 높다"고 우려했다. /세종=이태규기자 classic@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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