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란 찾은 기업인들 "기회의 땅에 미래 건다"

경제사절단 400여명 대거 첫발
10년만에 이란 찾은 韓기업인들
"건설·유화·전자 등 기회… 이란에 공장 짓고 현지화 제품 늘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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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무역협회 직원과 이란 현지인들이 한·이란 경제공동위원회 개최를 하루 앞둔 28일(현지시간) 테헤란 공항에서 한국 경제사절단을 맞이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다. 한국과 이란은 10년 만에 경제공동위를 재가동하며 경제교류의 물꼬를 틀 예정이다. /테헤란=이혜진기자
한·이란 경제공동위원회에 참석하기 위해 28일(현지시간) 이란에 도착한 우리나라 경제사절단 일행이 테헤란 아자디호텔에서 체크인을 하고 있다. /테헤란=서일범기자


조환익 한전 사장 "500MW급 발전소 현지건설 검토"

김희용 동양물산 회장 "끊어졌던 거래처 복구할 것"

중소기업인들 "부품 등 당장 수출할 수 있는 신시장"




박삼구 금호아시아나 회장은 30년 만에 설레는 마음으로 이란 땅을 밟았다. 전 세계 곳곳을 안방처럼 누비는 박 회장이지만 지난 1979년 이슬람혁명 이후 시작된 경제제재에 따라 이란만큼은 출장지 명단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었다. 박 회장은 출국 전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본지가 최근 테헤란 현지에서 개최한 '한·이란 경제협력 컨퍼런스'를 언급하며 "직항 여객기를 띄우기는 힘들겠지만 화물기는 고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경제제재 완화 이후 처음으로 정부와 무역협회 등의 주최로 개최되는 '한·이란 경제공동위원회'와 민간행사에 참석하는 국내 기업인들이 28일(현지시간) '마지막 기회의 땅'으로 꼽히는 이란에 대거 첫발을 내디뎠다. 이번 이란 경제사절단은 39개 대기업, 27개 중소기업 등 95개 기업·단체를 포함해 총 400여명으로 꾸려졌다.

이번에 이란을 찾은 국내 기업인 상당수는 2012년 초강력 제재가 시작되기 한참 전 이란을 방문했었다. 아예 처음인 최고경영자(CEO)도 적지 않다. 그동안 제재가 길어지면서 대다수 기업들은 지사를 철수시키는 등 사실상 이란 사업을 포기했다. 애써 구축했던 현지 사업 파트너와의 관계도 끊어졌다.

농기구 업체인 동양물산 김희용 회장은 "방문기간 동안 관계가 끊어졌던 거래처들을 다시 만나고, 현지 공장설립 가능성까지도 타진해볼 생각"이라며 "이제 다시 시작"이라고 기대감을 나타냈다.

삼성전자·LG전자·현대자동차 등 이란 시장에서 점유율 1위를 달리고 있는 곳들도 제재 완화 이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어 새로운 성장 모멘텀이 절실하다.

사절단에 앞서 지난 27일 테헤란에 도착한 이승철 전국경제인연합회 부회장은 "이란은 제조업 기반이 있고 상대적으로 개방적인 문화를 갖고 있어 한국이 투자할 만한 환경을 갖춘 곳"이라며 "이란 시장을 공략하면 중동 및 서아시아 시장에 대한 교두보를 마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번 경제사절단 방문은 이란 시장 진출 재개를 위한 첫 단추다. 인구 8,000만명, 천연가스 매장량 세계 2위의 거대 시장이 그동안 굳게 닫아걸었던 빗장을 활짝 열어젖힌 만큼 적극적인 공략에 나서겠다는 각오다. 이달 초 이란을 찾은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한 달도 안 돼 다시 이란을 방문했다. 조 사장은 "10년 전에 왔을 때와 달라진 게 없더라"며 "그러나 앞으로는 크게 발전할 것 같아서 지사도 내고 이란 발전시장을 본격적으로 공략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력은 이란에서 500㎿ 규모의 발전소를 짓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는 한국전력의 첫 이란 진출 사업이다.

건설·플랜트 업종의 최고경영자(CEO)들도 대거 이란으로 향했다. 박영식 대우건설 사장, 임병용 GS건설 사장, 한찬건 포스코건설 사장 등이 사절단에 참여했다. 한 사장은 "도로·병원·항만 등 각종 인프라 건설 시장에서 기회가 많이 있을 것"이라며 "특히 수익성이 높은 오일&가스 플랜트 분야 진출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란에서는 1,000억달러 규모의 플랜트 및 인프라 공사가 쏟아질 것으로 예상돼 건설사들의 생존을 위한 한 판 승부가 불가피하다.

실제로 현대건설을 비롯한 국내 건설사들은 최근 이란 현지에 직원들을 급파해 한 달씩 체류시키면서 공사 입찰에 필요한 정보들을 수집하고 있다. 일부 프로젝트에는 입찰의향서를 이미 제출하는 등 물밑 경쟁이 치열하다. 이란 정부의 한 관계자는 기자와 만나 "병원 공사 등에 한국 기업이 적극 입찰해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고 밝혔다.

두산중공업은 김헌탁 부사장 주재로 29일 테헤란에서 '두산 로드쇼'를 개최한다. 이란 발전소 관계자, 수(水)사업 고객과 관련 정부 관료 등을 초청해 두산중공업의 기술력을 홍보할 계획이다.

일부 엔지니어링 회사들은 제재로 인해 중단된 프로젝트들의 재개 가능성을 타진하고자 이번 경제사절단에 참여하기도 했다. 대양엔지니어링의 김숙현 부회장은 "2011년 80억달러 규모의 파이프라인 건설을 위해 이란 국영건설사와 MOA까지 체결했다가 중단됐다"며 "이번에 석유부 관계자들을 만나 사업 재추진 방안에 대해 논의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정유 및 석유화학업계도 이란 시장 개방에 따른 수혜를 입을 것으로 보인다. 이란산 원유를 들여와 수입선을 다변화하면 수익성을 높일 수 있다는 판단이다. 김준 SK에너지 사장과 문종박 현대오일뱅크 사장은 이번 이란 방문에서 향후 수입물량 확대 가능성을 점검한다. 두 회사는 제재 중에서도 이란산 원유를 수입해왔다. 그러나 경제제재가 시작되면서 도입 물량이 반 이상 줄었다. 양사는 모두 이란산 중질류에 최적화된 정제 시설을 갖추고 있지만 수입량이 줄면서 이를 충분히 활용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허수영 석유화학협회장(롯데케미칼 사장)도 이번 사절단에 동참했다. 합성수지 일부를 이란에 수출해왔지만 규모는 크지 않았다. 당장 염두에 둔 사업 아이템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세계 4위 산유국인 이란에서 석유화학 비즈니스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이들은 한·이란 비즈니스포럼 및 1대1 미팅과 같은 공식 일정 외에도 현지 지사와 사업 파트너들을 만나 본격적인 비즈니스 활동을 벌인다.

전자업계에서는 박상진 삼성전자 사장이 이란을 찾았다. 삼성전자는 LG전자와 더불어 이란 가전 시장에서 부동의 1위를 고수하고 있다. 하지만 제재 완화 이후 현지 사정이 급변하고 있어 시장 점검이 필요하다.

중국 하이센스를 비롯해 독일 등 유럽 가전업체들이 급격히 세를 불리고 있어 수성(守城) 전략이 시급하다. LG전자의 한 관계자는 "제재 완화 이후 경쟁이 치열해지면 한국 기업이 점유율 70~80%를 유지하기는 힘들 것"이라며 "현지화 제품 등을 출시해 전체 매출 규모를 늘리는 방안을 모색하고 있다"고 밝혔다.

포스코도 파이넥스 공법 제철소를 이란에 수출하는 방안을 이란 정부와 막바지 협의하고 있다. 파이넥스는 저품질 철광석으로도 쇳물을 뽑아낼 수 있어 '꿈의 제철소'로 꼽힌다. 이란 정부는 제재 완화 전인 지난 2015년 초 포스코에 파이넥스를 수출해달라고 직접 연락할 정도로 끈질긴 구애 작업을 벌여왔다.

중소기업인들도 대거 이란을 찾아 새로운 사업 기회를 모색했다. 박혜린 옴니시스템 회장과 한영욱 신일특수금속 사장, 정영균 희림건축 대표, 박충열 동성 코퍼레이션 대표 등 27개 중소기업에서 수십 명의 기업인이 이란 시장을 둘러봤다. 한 기업인은 "이란에는 제조업 기반이 갖춰져 있어 부품 등을 당장 수출할 수 있는 신시장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정부가 중소기업에 대한 지원책을 내놓기를 바라고 있다"고 말했다.

/테헤란=이혜진·서일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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