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십자는 지난 1967년 창업 이후 반세기 동안 쌓은 경험과 노하우를 바탕으로 백신과 혈액제제 등 바이오의약품 시장을 주도하고 있다. 매년 매출액의 10%에 달하는 금액을 연구개발(R&D)에 투자하며 국내 제약회사 중 신약 개발에 가장 공들이고 있는 기업으로 손꼽힌다. 올해도 녹십자는 ‘건강산업의 글로벌 리더로의 도약’이라는 비전에 맞춰 백신 및 바이오의약품 신약 개발에 적극적으로 나설 방침이다. 김병주 기자 bjh1127@hmgp.co.kr
최근 한국신약개발연구조합은 의미 있는 조사결과를 발표했다. 국내 40여 개 제약회사 중 가장 많은 연구개발 파이프라인(약품 개발 및 출시를 위한 연구화 단계 프로젝트)을 가진 기업 순위를 공개한 것이다. 파이프라인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신약 연구개발에 많은 공을 들인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가장 많은 신약개발 파이프라인을 보유한 회사는 바로 총 24개를 보유한 녹십자다. 그뿐 아니라 임상시험 단계 신약 파이프라인의 최다 보유 기업 역시 녹십자였다. 녹십자는 한미약품, SK케미칼, 동아에스티 등 쟁쟁한 경쟁사를 제치고 임상 1상(건강한 사람에게 의약품을 투여해 약물의 체내 흡수·분포 등과 부작용을 관찰하는 시험) 단계 3개 테마, 임상 2상(특정 질병을 가진 환자를 대상으로 의약품의 효능, 용량, 용법 및 부작용 등을 확인하는 시험) 단계 6개 테마, 임상 3상 단계(임상 2상 후 추가로 확인해야 할 부분을 확인하는 시험) 6개 테마 등 총 15개를 보유 중인 것으로 나타났다.
녹십자의 신약개발 노력은 오래전부터 이어지고 있다. 녹십자는 지난 1983년 세계에서 세 번째로 B형간염 백신 ‘헤파박스’를 개발했다. 녹십자가 개발한 헤파박스는 국내 B형간염 보균율을 낮추는 데 혁혁한 공을 세웠다. 지난 1988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유행성출혈열 백신 ‘한타박스’와 1993년 세계 두 번째이자 국내 최초로 자체 개발한 수두백신, 국내 최초 에이즈 진단 시약도 녹십자의 몫이었다. 2000년대에 들어선 후에도 세계 네 번째 유전자재조합 혈우병치료제 ‘그린진’, 세계 두 번째 헌터증후군 치료제 등 개발에 성공하며 바이오제약 부문에서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과 경쟁력을 과시했다.
현재 녹십자는 기존에 강점을 보여온 혈액제제(혈액을 원료로 한 의약품을 치료 목적에 맞게 배합·가공해 일정한 형태로 만든 제품)와 백신 시장에 집중하고 있다.
혈액제제 개발·생산에는 대규모의 설비와 고도의 운영경험이 필수다. 전 세계 공급량의 70% 이상을 소수의 다국적 제약사들이 생산할 정도로 까다로운 분야다. 녹십자는 다국적 제약사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글로벌 혈액제제 시장에서도 입지를 굳힌다는 각오를 다지고 있다.
북미 시장 공략에 심혈 기울여 특히 올해는 미국 시장에서 녹십자가 자체 개발한 혈액제제의 첫 허가를 기대하고 있다. 녹십자는 지난해 11월 미국 식품의약청(FDA)에 국내 제약기업 최초로 면역결핍치료제 ‘아이비글로불린 에스엔(IVIG SN)’의 생물학적 제제 품목허가를 신청했다. 200억 달러(2016년 1월 18일 기준 한화 약 24조 1,700억 원) 규모에 달하는 글로벌 혈액제제 시장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북미 혈액제제 시장은 혈액제제 분야에서 강점을 보여온 녹십자가 글로벌 제약사로 도약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시장이다. 녹십자는 북미 혈액제제 시장 공략을 위해 지난 5년여간 다각도의 노력을 기울여 왔다. 북미 현지법인을 통해 혈액원을 설립했고 현지 생산시설을 건설하며 만반의 준비를 마쳤다.
올해 아이비글로불린 에스엔이 FDA의 허가를 받는다면 본격적인 시판은 오는 2017년부터 시작된다. 이때를 기점으로 녹십자가 목표로 한 북미시장 연 매출 3,000억 원 달성 역시 가시권에 들어올 전망이다. 허은철 녹십자 대표는 “아이비글로불린이 선진 시장에서 길을 열어준다면 다른 혈액제제와 유전자재조합 제제 등도 잇따라 좋은 성과를 낼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녹십자는 또 다른 주력분야인 백신의 연구개발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다. 녹십자는 지난 2009년 국내 최초의 계절 인플루엔자(독감) 백신 ‘지씨플루주(GC FLU inj)’와 H1N1 신종인플루엔자 백신 등을 시작으로 최근 허가받은 백신에 이르기까지 단가, 3가, 4가* 백신 개발에 성공하며 다양한 바이러스주(株)에 대한 대응력을 갖췄다. 더불어 다인용(multi) 및 일인용(single) 바이알(약병)과 프리필드시린지(약물을 미리 의료기기에 충전해 환자에게 주사하는 기기)까지 다양한 형태의 인플루엔자 백신을 확보하며 향후 발생 가능한 감염병 대유행에 대응할 체계를 마련했다.
이 같은 녹십자의 백신 제품은 해외 시장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과를 내고 있다. 현재 녹십자 독감백신은 해외 시장 진출 5년 만에 중남미 독감백신 시장에서 글로벌 제약사들을 제치고 점유율 1위를 기록하고 있다. 특히 기존 3가 독감백신에 이어 지난해 국내 판매 허가를 받은 4가 독감백신 역시 세계보건기구(WHO)의 사전적격성 평가 인증을 받았다. 이를 통해 녹십자는 중남미 독감백신 시장 1위 자리를 더욱 공고히 할 뿐만 아니라 또 다른 글로벌 제약 시장 진출에도 속도를 낼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중남미 독감백신 시장서 1위 질주기존 질병의 치료를 위한 신약품 개발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B형 간염 바이러스를 중화하는 항체인 GC1102의 경우 세계 최초로 간이식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2상을 마쳤다. 최근에는 만성 B형간염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1상도 시작했다. 대장암을 타깃으로 하는 차세대 항암 표적치료제인 GC1118은 기존 치료제와 차별화된 기전(작용 원리나 구조)을 가진 항체로, 현재 임상 1상을 진행 중이다. 이 밖에도 차세대 혈우병 치료제를 비롯한 다양한 혁신 바이오 신약에 대한 비(非)임상 단계의 공정개발에 착수한 녹십자는 항암 면역치료용 항체 제제 후보 물질 발굴 등의 다양한 연구도 병행할 계획이다.
특히 헌터증후군 치료제인 ‘헌터라제’ 역시 녹십자의 기술력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다. 지난 2012년 세계 두 번째로 출시한 헌터증후군(유전성 질환으로 얼굴 변형, 정신지체, 성장 지연 등의 모습으로 발현되는 질병) 치료제 ‘헌터라제’는 출시 2년 만에 국내 시장 점유율 50%를 넘어섰다. 특히 그동안 국내 헌터증후군 치료제 시장에서 독주해온 미국 제약회사 젠자임의 ‘엘라프라제’의 대체약물로 주목받으며 미국, 유럽 등 글로벌 시장에서의 관심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향후 녹십자는 해외 시장에서 통할 수 있는 경쟁력 있는 신약 후보 물질 발굴에 더욱 힘쓸 계획이다. 이를 위해 신약 개발부터 출시까지 전 과정을 혁신하고 전문가의 영입과 글로벌 수준의 외부 전문기관 및 전문가 활용, 내부 인력 교육·훈련, 자동화 설비 투자 등의 노력을 강화해 나갈 계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