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비리 사건에 연루돼 4일 사전구속영장이 청구된 허준영(가운데) 전 코레일 사장이 지난달 31일 검찰 조사를 받기 위해 피의자 신분으로 서울 중앙지검에 출두하고 있다. /연합뉴스
수년간 추진되다 무산된 수조원 규모의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이 불법 비자금 조성으로 정치권에 핵폭탄을 가져다줄지 주목된다.무엇보다 검찰은 허준영 전 코레일 사장의 뇌물수수 및 정치자금법 위반 혐의로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것과 관련해 해당 시점을 지난 2011년으로 지목했다. 당시는 이명박 정부 시절로 대규모 비자자금 조성 정황이 속속 드러날 경우 사업에 관여했던 전 정권 정관계 인사들로 수사가 확대될 수 있다는 얘기다.
또 검찰이 지난달 31일 피의자 신분으로 허 전 사장을 불러 조사한 지 나흘 만에 사전구속영장을 청구한 것을 볼 때 이미 혐의 입증에 자신을 갖고 있는데다 추가 혐의까지 파고 있다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금액도 문제다. 현재 겉으로 드러난 허 전 사장 개인의 의혹 금액은 수억 원에 불과하지만 지난해 말 검찰에 접수된 고발장에서는 그 금액이 2,000억원에 달한다. 검찰이 고발장 내용에 신빙성이 있다고 판단하고 사실을 확인하면 이번 비리는 개인을 넘어 게이트 수준으로 확대될 수 있다는 얘기다. 여기에 4·13 총선을 앞두고 당시 사업에 관여됐을 가능성이 있는 유력 인사들 가운데 상당수가 지금도 현역으로 활동하고 있어서 총선 결과에도 상당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일단 고발장에는 허 전 사장이 사업 추진 과정에서 1조4,000억원을 임의로 집행했고 그중 2,000억원 정도를 따로 챙겼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돼 있다. 당시 사업에 관여했던 김모씨와 박모씨 등이 자금 조성과 자금 세탁을 담당했고 또 다른 인물이 자금을 관리하는 등 조직적인 불법 정황도 기재돼 있다.
법조계 일각에서는 허 전 사장의 사전구속영장 청구를 신호탄으로 검찰이 뇌물과 불법 정치자금 규모 범위를 확대해 수사 속도를 높일 것으로 보고 있다. 정치권의 한 관계자는 “서울시와 코레일, 그리고 개발 사업자, 금융권의 핵심 인물이 관여하지 않고서는 큰 액수의 자금을 조성하기 어렵다”며 “검찰이 하나씩 내용을 확인해가면서 자금의 용처까지 파악해나가면 후폭풍이 엄청날 것”이라고 내다봤다. 여의도를 중심으로 정치권 밑바닥에서는 용산 비리 내용 들이 이미 퍼져 있다는 게 이 관계자의 설명이다. 또 허 전 사장뿐 아니라 관계자들이 빼돌리거나 따로 챙긴 불법 자금을 합치면 액수는 천문학적으로 늘어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오고 있다.
앞서 검찰이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사업 비리 사건 수사에 본격 착수한 것은 지난해 12월 자유총연맹 산하단체 대표 김모씨 등이 허 전 사장을 배임 혐의 등으로 고발하고 나서부터다. 이후 검찰이 수사에 속도를 내기 시작한 것은 2월23일이다. 이날 검찰은 허 전 사장의 최측근으로 알려진 손모씨의 자택과 사무실 등 2∼3곳을 압수 수색했고 그 과정에서 용산역세권개발(AMC)에도 수사관을 보내 사업 관련 자료를 임의제출 형태로 확보했다. 이후 검찰 수사는 손씨를 구속 기소하면서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손씨는 2010~2013년 AMC의 고문을 맡았던 인물로 폐기물 처리업체 W사를 실소유하고 있었다. W사는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 주관사였던 삼성물산으로부터 폐기물 처리용역 사업을 수의계약 방식으로 따낸 곳으로 2010년부터 2013년까지 폐기물 처리 사업 진척도에 따라 100억 원을 사업비로 지급 받았다. 검찰은 이 돈 가운데 20억원가량을 손씨가 빼돌린 사실을 확인하고 지난달 13일 그를 구속기소 했다. 검찰 수사는 용산국제업무지구 개발 비리의 열쇠를 쥐고 있는 그의 신병을 확보해 구속 수사에 나서면서 가속이 붙었다. 이어 보름 만에 허 전 사장의 자택을 전격 압수 수색하고 용산 개발 관련 서류를 비롯해 개인 문서, 컴퓨터 하드 디스크 등을 확보했다. 이후 검찰은 지난달 말에 허 전 사장을 피의자 신분으로 불러 소환 조사했다.
허 전 사장은 조사 과정에서 “부정한 금품을 받지 않았다”며 혐의를 전면 부인했으나 검찰은 손씨 등을 조사하는 과정에서 허 전 사장이 금품을 받았다는 등 진술을 확보한 것으로 알려졌다.
용산 국제업무지구 개발 사업은 코레일이 보유한 용산 철도정비창과 서부이촌동 일대 56만㎡를 랜드마크 빌딩·쇼핑몰·호텔·백화점·주상복합아파트 등으로 탈바꿈시키는 사업이었다. 2006년 8월 개발 확정 이후 이듬해 12월 개발사업자로 드림허브 컨소시엄을 선정했다. 사업비 규모만 30조원 이상이라고 알려지면서 ‘단군 이래 최대 개발사업’으로 기대를 모았으나 부동산 경기 침체와 맞물려 2013년 4월 무산됐다. /권대경·안현덕기자 kwon@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