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협 없는 원자력 안전을 향해] 1. 한국원자력연구원

사고예방부터 피해완화까지 원전 안전연구의 첨병

한국원자력연구원은 우리나라가 단기간에 원자력 수출국의 반열에 오를 수 있게 한 자타공인 일등공신이다. 안전에 있어서도 원자력연구원의 비중은 절대적이다. 원전 설계의 타당성 검증은 물론 원전에서 발생 가능한 모든 종류의 사고에 대한 예방, 그리고 노심용융이라는 중대사고 발생 시 피해를 최소화할 방안에 이르기까지 관련연구를 주도하고 있다.



원자력 안전연구, 그중에서도 예방 연구에 있어 원자력연구원의 최일선에 서 있는 것이 바로 가압경수로 열수력 종합효과 실험장치인 ‘아틀라스(ATLAS)’다. 원자력발전소의 원자로 계통과 안전계통 등을 정밀하게 축소 제작한 시뮬레이터의 일종으로, 원전에서 일어날 수 있는 다양한 사고와 고장, 운전조건을 실제 원전과 동일한 압력 및 온도조건에서 실험할 수 있다.

우라늄 핵연료 대신 전기 가열봉을 이용하기 때문에 방사선 누출의 우려 없이 냉각재 상실 같은 사고를 모사해낸다.

아틀라스를 운용하고 있는 열수력안전연구부 최기용 박사는 그 가치를 자동차에 빗대 설명했다. “신차를 개발할 때는 모든 부품의 안전성을 확인한 뒤에도 조립을 마친 완성차로 도로주행이나 충돌테스트 같은 실험을 수행합니다. 각각의 부품은 안전하지만 이것들이 하나의 시스템으로 묶였을 때도 그럴 지는 확신할 수 없기 때문이죠. 하지만 원전은 이것이 사실상 불가능합니다. 그런데 아틀라스가 이를 가능케 해줍니다.”

기본적으로 아틀라스는 한국형 신형 경수로 ‘APR-1400’을 체적기준 288분의 1로 축소한 모델이다. 2005년 완성 이후 차세대 신형 원전 APR플러스(APR+)의 개발 등에 맞춰 지속적인 설비 업그레이드를 해나가면서 우리나라 원전의 안전성과 대내외적 신뢰도 확보에 중추적 역할을 하고 있다.

최 박사는 “APR플러스는 APR1400을 토대로 크게 4가지 부분의 설계변경이 이뤄졌다”며 “이에 대한 안전성을 입증해 한국원자력안전기술원(KINS)의 인허가를 획득하는데 아틀라스의 실험데이터가 결정적 기여를 했다”고 밝혔다.

아틀라스의 우수한 성능과 신뢰성, 기능성은 원자력 선진국들도 인정하는 부분이다. 미국, 프랑스, 독일 등 13개국 18개 기관이 참여하는 ‘OECD-ATLAS 프로젝트’가 그 실례다. 이는 후쿠시마 사고를 계기로 원전의 설계기준을 초과하는 사고 등을 실험하기 위한 경제협력개발기구 산하 원자력기구(OECD/NEA)의 국제 공동 프로젝트로, 아틀라스가 경쟁자들을 물리치고 OECD/ NEA의 최종 낙점을 받았다.

전 세계 원전의 안전성 확인에 아틀라스가 활용되는 것이다. 최 박사는 “일본, 독일, 중국도 열수력 실험장치를 보유하고 있지만 30여년 전에 개발된 노후 설비거나 실험결과의 보편성이 상대적으로 낮다”며 “다목적성과 최신성에서 아틀라스가 현존하는 가장 뛰어난 설비라 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최 박사에 따르면 OECD-ATLAS 프로젝트를 통해 2017년 3월까지 총 8종의 실험이 진행될 예정이다. 모두 후쿠시마 사고와 관련된 실험이다. 특히 원자력 안전분야의 오랜 이슈였던 실험장치의 크기에 따른 신뢰성 문제의 규명에 대한 세계 원자력계의 관심이 크다.

최 박사는 “실험장치가 축소모델인 만큼 일부 현상이 왜곡될 수 있다는 의문이 있었다”며 “아틀라스 실험결과를 아틀라스와 규모가 다른 실험장치를 운용했던 미국, 프랑스, 일본, 독일의 과거 데이터와 비교함으로써 이 의문을 상당부분 규명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최 박사팀은 OECD-ATLAS 프로젝트 이후에도 추가 대응실험을 추진, 이 분야의 안전연구를 선도해 나갈 방침이다. 덧붙여 현재 세계 최초로 원자로 격납용기(격납건물) 내부의 물리적 현상을 실험할 수 있는 ‘격납건물 건전성 평가 종합 실험동(LIFE)’이 아틀라스 옆에 건설되고 있어 완공 후 격납건물을 포괄한 연구도 수행할 예정이다.


최 박사는 “원자력 안전 연구는 크게 사고 예방과 사고후 피해 완화 분야로 구분된다”며 “사고가 발생하기 전에 무조건 막는다는 각오로 원전의 안전성 우려를 불식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후쿠시마 사고에서도 확인됐듯 설계기준 초과사고의 개연성은 항상 존재한다. 때문에 모든 안전시스템과 백업시스템이 무너졌을 때에 대비한 대응기술 연구도 게을리 해선 안 된다. 이 중책을 맡고 있는 곳이 원자력연구원 중대사고·중수로안전연구부다.

원전은 크게 정상운전(NO), 비정상 운전(AOO), 설계기준사고(DBA), 설계기준초과사고(bDBA) 등 4가지 상태로 구분할 수 있는데 NO와 AOO, DBA는 예방의 몫이고 중대사고·중수로안전연구부는 bDBA 상황이 벌어졌을 때에 대비한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하광순 책임연구원은 “bDBA는 기본적으로 핵 연료봉이 녹아내리는 이른바 노심용융 사고를 의미한다”며 “모든 연구는 원전 설계 단계에서 미처 반영하지 못했던 최악의 상황을 가정해서 이뤄진다”고 설명했다. 연구의 최종 목표는 원자로의 최후 방어벽이라 할 수 있는 격납건물의 파손을 막는데 있다. 그래야만 방사능 누출 등 극단적이고 광범위한 피해를 차단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한 연구팀의 무기는 증기폭발 실험장치(TROY)다. 원전 중대사고 시 발생할 수 있는 증기폭발 현상을 실제 원자로 조성 물질인 산화우라늄, 산화지르코늄 등을 사용해 실험할 수 있다. OECD/NEA의 의뢰를 받아 증기폭발과 관련한 ‘OECD-SERENA 프로젝트’를 2003년 성공리에 마무리하기도 했다.

하 책임연구원은 “실험결과, 생각만큼 위험도가 크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지만 보다 정확한 분석을 위해선 추가연구가 필요한 상황”이라고 전했다.

이외에도 수소폭발에 대비한 수소 분포 해석 코드 개발, 핵연료 용융물과 콘크리트의 반응, 에어로졸 거동 예측 등의 연구가 진행 중이다. 후쿠시마 사고 이후 격납건물 내부 압력상승 시 압력을 배출시키는 여과 배기장치의 개발에 성공해 월성 1호기에 설치하기도 했다. 특히 연구팀은 지금까지의 연구결과들을 집약해 ‘중대사고 종합 해석 코드’를 개발 중이다. 원전 수출에 꼭 필요한 요소로 내년 정도에 완성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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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제2차 국가에너지기본계획에 따른 2035년 우리나라의 원자력 발전설비 비중 목표.

열수력 (thermal hydraulic) - 고온·고압으로 가동되는 원자로의 냉각 성능을 결정짓는 냉장재의 유동과 열전달 현상.

서울경제 파퓰러사이언스 편집팀

/양철승 기자 csyang@sed.co.kr

구본혁 기자 nbgkoo@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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