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 세계 컨테이너 시장은 16개 해운사가 4개의 얼라이언스(동맹)를 맺고 전체 물동량의 99%를 담당한다. 아시아에서 유럽이나 미주로 가는 장거리 노선을 전 세계에 운영하려면 여러 회사가 배를 나눠 투입하는 동맹 가입이 필수다. 동맹에 끼려면 다른 선사와 비슷한 규모의 선대를 꾸려야 하고 해외 곳곳에 영업망도 갖춰야 하기 때문에 아무나 동맹에 들 수 없다. 지난해 기준 세계 8위의 한진해운과 18위 현대상선은 오랜 기간 다져온 영업력과 네트워크를 바탕으로 각각 CKYHE와 G6 동맹에 포함돼 글로벌 해운사 대열에 서 있다. 그러나 내년부터 세계 해운동맹이 재편되면서 동맹에 변화가 불가피하다. 문제는 국내 선사들의 경우 자금난으로 초대형 컨테이너선을 갖추지 못해 동맹에서 소외될 우려가 크다는 점이다. 또 현재 유동성 위기를 풀지 못하면 법정관리로 넘어가 아예 세계 무대에서 자취를 감출 수도 있다.
해운업은 시황에 민감하게 반응하는데 2010년 호황기 때 한진해운은 6,298억원, 현대상선은 6,017억원의 영업이익을 낼 정도로 한 번에 큰돈을 만지기도 한다. 세계 물동량이 점증하는 상황에서 국내 선사가 치킨게임의 패배자가 된다면 이후 수급 안정기에 공급자 위주의 시장이 도래할 때 외국 선사들의 돈 잔치를 구경만 할 수밖에 없다는 슬픈 전망이 나오는 이유다. 전준수 서강대 석좌교수는 “국가 차원에서 컨테이너 선사를 재건시키는 계획과 의지를 반드시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선업계 역시 섣부른 구조조정이 국가 경쟁력을 약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가 꾸준히 나오는 산업으로 꼽힌다.
최근 5조원대 부실로 빅3 중 구조조정 1순위로 꼽히는 대우조선해양은 2014년 발주된 액화천연가스(LNG)운반선 절반을 독차지한 이 분야 절대 강자로 손꼽힌다. 당장 올해 수주는 부진하지만 대우조선의 수주잔량은 지난달 말 현재 118척 782만CGT(표준화물선 환산톤수)로 2위인 현대중공업 울산조선소(450만CGT)와의 격차도 멀찌감치 벌려놓은 명실상부한 세계 1위다. 당장 수주는 없지만 2~3년치 일감이 있는 만큼 이 기간 내 수주가 회복되면 기업을 정상 운영하는 데 문제가 없다. 현대중공업과 삼성중공업 역시 수주량이나 주력 선종에는 차이가 있지만 3개 회사 모두 세계적인 기술력을 확보했다. 뒤쫓아오는 중국과 선전하는 일본 등이 위협된다고 하지만 최근 조선업황 악화로 중국 역시 추격의 고삐를 당기지 못했으며 철저히 자국 선사들의 발주로 일감을 채우는 일본은 세계 무대에서 한국의 경쟁상대에는 한참 못 미친다는 게 공통된 분석이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설계인력이나 기술의 저변을 볼 때 여전히 한국이 최강자”라며 “친환경 고효율 선박인 에코십은 조만간 시장 수요 회복이 기대되는 만큼 조선업계 수주난 극복에도 이바지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철강업계는 중국발 공급과잉이 빚은 동반 침체가 올해부터 서서히 나아지는 모습이다. 세계 최고 경쟁력을 자랑하는 포스코와 현대차그룹이라는 튼튼한 수요처를 바탕으로 성장하는 현대제철은 지난 위기 속에서 자산 매각과 사업 구조조정 등 자체 자구계획을 거쳐 회복세를 보이고 있다. 철강업계 역시 중국산 철강재의 저가 공세에 루블화 폭락으로 러시아 등 유럽 철강재까지 판치며 가격 하락으로 고통받았지만 튼튼한 체력을 바탕으로 견뎌낸 끝에 혹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석유화학업계는 지난해 저유가로 원가는 낮아진 반면 수요가 늘며 이익률이 뛰어오르면서 새로운 호황기를 맞고 있다. 그러나 중국의 성장 속도가 빨라지고 있고 앞으로 역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되는 만큼 새로운 치킨게임을 앞두고 고부가제품 강화와 신사업 진출 등 체력 다지기가 시급한 시점으로 분석된다. 물론 이를 위해서는 정부와 채권단의 끈질긴 지원이 선결돼야 한다.
업계의 한 고위관계자는 “업계 자율적인 구조조정을 원칙으로 하되 정부는 다양한 세제혜택을 지원해주고 채권단은 경영권을 침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이자 감면을 포함한 채무재조정 조치를 해줄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또 다른 재계의 한 관계자는 “조선과 철강·해운 등이 대표적인 한계산업으로 꼽히지만 고용이나 국가 경쟁력, 호황기 수익성 등을 따져볼 때 충분히 경쟁력을 갖추고 있다”며 “무조건 정리할 것이 아니라 시야를 넓게 보고 우리 기업들을 치킨게임의 승자로 만들 방안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임진혁기자 libera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