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경계에 갇힌 한국의 핀테크

통신사가 앞장선 케냐 핀테크
시장 점유율 80%…유럽 진출도
금융·IT수준보다 '융합'이 중요
은산분리론 새 가치 창출 못해

최영준 경희대 무역학과 교수, 한국모바일금융포럼 이사


지난해 말 금융위원회와 핀테크지원센터는 금융개혁의 핵심과제로 추진해온 ‘핀테크 육성’ 정책의 효과에 대해 발표했다. 정부는 보안프로그램 설치의무 폐지와 공인인증서 사용의무 폐지 그리고 금융권 공동 플랫폼 구축 등의 정책을 중점적으로 추진해왔다. 이러한 정책으로 핀테크에 대한 국민적 인식이 개선되며 핀테크 산업이 성장하고 있다고 만족스러워하는 자평을 내놓았다. 아주 낯설었던 핀테크가 사람들에게 알려지고 사용자도 늘었다는 점에서는 정책적 효과를 부인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런데 우리는 새로운 것에 익숙해질 때 우리가 바르게 가고 있는지 되짚어볼 필요가 있다. 틀린 방향에 익숙해지면 틀린 줄도 모르고 고칠 수 없게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에 익숙해지고 있는 이때 우리는 핀테크를 다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에서 핀테크는 이름 그대로 ‘핀(FIN)’인 금융과 ‘테크(TECH)’인 정보기술(IT)과의 만남으로 이해한다. 그래서 막연하게 IT가 발전한 우리나라가 국제경쟁력을 가질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 그리고 새로운 IT 개발이 핀테크 산업 발전에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는 우리의 첫 번째 오해다. 핀테크에서는 기술이 중요하지만 기술이 경쟁력의 핵심적 원천이라고 할 수는 없다. 핀테크가 가장 보편적으로 활용되는 국가는 아프리카 케냐다. 케냐는 핀테크 시장 점유율이 80%에 달한다. 케냐의 핀테크는 이제 케냐를 넘어 아프리카 주변국뿐 아니라 유럽까지 진출하고 있다. 또 최근 핀테크를 주도하는 국가는 중국이다. 중국의 성장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빠르고 급격하다. 그런데 이들보다 더 좋은 IT와 인프라를 가진 우리나라가 이 국가들을 뒤쫓아가고 있는 형국이다.


두 번째로 핀테크는 IT가 은행 발전을 지원해야 한다는 것이다. 핀테크의 세계적 확산을 이끈 케냐의 엠페사는 은행이 시작하지 않았다. 엠페사는 케냐 통신사인 사파리콤과 영국 다국적 통신기업인 보다폰에서 서비스를 시작해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 중국도 마찬가지다. 중국의 핀테크를 이끄는 것도 중국 은행이 아니라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다. 전자상거래 업체가 금융업에 진출해 중국 핀테크 산업을 선도하고 있는 것이다.

핀테크는 융합 서비스다. 융합은 기존 것이 합쳐져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그러므로 핀테크가 금융인지 정보통신인지는 중요하지 않다. 중요한 것은 누가 소비자를 만족시킬 수 있는 서비스를 창출해내는 능력이 있는가다. 이름에 테크(TECH)가 들어가 기술이 중요한 것도 아니고 핀(FIN)이 붙어 금융의 능력이 중요한 것도 아니다. 핀테크는 핀(FIN·금융)도 테크(TECH·기술)도 발전하지 않은 빈곤국에서 시작돼 개도국에서 급속히 성장하고 있다. 이것이 바로 융합의 묘미다. 그러기에 핀테크 발전은 누가 더 좋은 융합 서비스를 만들어내는가에 달려 있다. 은행이냐 IT기업이냐는 중요하지 않다. 그러므로 핀테크에 대한 정책의 최우선은 기술이나 홍보가 아닌 경쟁촉진에 있어야 한다.

그런데 한국은 은행과 산업 간 경계를 만들어놓고 융합을 하라고 한다. 은산분리로 철저히 출신성분에 따라 금융과 기술을 분리하고 있다. 은행이 새로운 서비스를 만들 수 있도록 IT가 지원하라는 것이다. 이렇다면 융합을 이뤄낼 수 없다. 또 경쟁도 촉진시키지 못한다. 산업 간의 또 다른 갑과 을을 만들어낼 뿐이다.

지금 세계 경제는 경계를 무너뜨리며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경쟁을 벌이고 있다. 국가들은 무역장벽을 없애고 국경을 허물고 무역을 자유화하고 있다. 기업은 산업 영역을 구분하지 않고 새로운 가치를 만들기 위해 새로운 산업으로 진출하고 있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혁신을 이룬다면서 경계에 매달려 있다. 한국이라는 경계 안에 금융과 기술의 경계를 만들어놓고 자기 영역을 지키느라 다투고 있다. 그리고 그 한국에 경계에서 자유로운 기업들이 밀고 들어오고 있다. 한국의 핀테크는 어디로 가야 할 것인가. 중대한 고민이 필요하다.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