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지은이 2일(한국시간) LPGA 투어 데뷔 첫 승을 올린 뒤 트로피를 들어 보이고 있다. /어빙=AFP연합뉴스
우승 경쟁은 여러 번 해봤지만 우승은커녕 준우승도 한 번뿐이었다.
미국여자프로골프(LPGA) 투어 6년 차 신지은(24·한화)은 뒷심이 부족한 선수라는 평가에 딱히 할 말이 없었다. 톱10에 20번이나 들고도 우승은 없었다.
2012년 2월 ‘싱가포르의 악몽’이 치명타였다. 당시 HSBC 위민스 챔피언스에서 신지은은 마지막 날 17번홀까지 2타 차 단독 선두였다. 우승은 예약돼 있었다. 그러나 최종 18번홀 티샷을 앞두고 있을 때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천둥 번개로 2시간 동안 경기가 중단된 것. 경기 재개 후 신지은의 티샷은 왼쪽 숲으로 들어가버렸고 이 홀에서 2타를 잃었다. 신지은은 4명이 벌인 연장에서 앤절라 스탠퍼드(미국)에게 우승을 넘겨줬다. 연장 세 번째 홀에서 1.5m 파 퍼트를 놓쳤다.
이후 첫 승까지 4년이 넘게 걸렸다. 마지막 날 우승을 다툰 적도 여러 번이었지만 준우승조차 없었다. 그만큼 결정적인 순간 크게 흔들렸다는 얘기다. 2일(한국시간) 미국 텍사스주 어빙의 라스콜리나스CC(파71·6,462야드)에서 끝난 텍사스 슛아웃. 135번째 LPGA 투어 대회 출전인 이번에는 달랐다. 선두에 4타 뒤진 공동 4위로 출발하고도 2타 차 역전 우승으로 마쳤다. 데뷔 첫 우승. 이번에도 2타 차로 마지막 홀을 맞았는데 4년 전과는 다르게 무난하게 파를 지켰다. 최종합계 14언더파로 12언더파의 허미정(27·하나금융그룹)과 양희영(27·PNS)을 따돌렸다.
서울 출생으로 9살 때인 2001년 미국으로 건너간 신지은은 만 13세에 미국여자주니어선수권에서 우승했다. 특급 유망주로 손꼽혀온 그는 2010년 LPGA 2부 투어 상금랭킹 4위에 올라 2011년 1부 무대에 진입했다. LPGA 투어에는 영어이름 제니 신으로 등록돼 있지만 국적은 한국을 유지하고 있다.
예전의 신지은이 아니었다. 첫 5개 홀에서 버디만 3개를 몰아친 그는 10번홀에서 다시 버디를 잡고는 8홀 연속 파로 이렇다 할 위기도 없이 우승했다. 퍼트가 약점이었으나 이날은 27개의 짠물 퍼트를 자랑했다. 43홀 연속 노 보기로 대회를 마무리할 만큼 견고했다. 우승상금 19만5,000달러(약 2억2,000만원)를 받은 신지은은 시즌 상금 톱10(9위·40만9,000달러)에 진입했고 세계랭킹도 38위에서 24위까지 끌어올렸다. 경기 후 신지은은 “15번홀에서 리더보드를 보니 상위권 선수들 중 4언더파를 친 사람은 나밖에 없더라. 우승의 신이 내게 온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고 돌아봤다. 그는 “대회 초반에 1m 퍼트 연습을 많이 했다. 마지막 6홀에서 그런 상황이 많이 나와 도움이 됐다”며 “다음에 또 우승 기회가 오면 오늘처럼 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이런 경험을 통해 해마다 발전하는 선수가 되는 게 목표”라고 말했다. 올 시즌 전체 11개 대회에서 한국(계)선수가 10승을 쓸어담고 있다.
3라운드까지 2타 차 단독 선두였던 저리나 필러(미국)는 2타를 잃어 또 우승을 놓쳤다. 전반에 신지은에게 선두를 내준 뒤 회복하지 못하고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톱10 진입이 27번째인데 우승은 터지지 않고 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