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법 막힌 한국 해외서만 고군분투

내년 전국망 구축… 日은 뛰고 있는데


해외에서 원격의료 사업을 펼치고 있는 비트컴퓨터의 정진옥 사장은 바이어들을 만날 때면 늘 곤혹스럽다. 세계 최고의 통신기술을 갖춘 한국의 원격의료 서비스 현황을 가장 먼저 묻기 때문이다. 그럴때마다 정 사장은 법과 제도에 막혀 서비스를 시작조차 못한 국내 상황을 설명하는데 진땀을 빼기 일쑤다. 의사와 환자간 정보기술(IT)을 이용한 원격의료를 허용하지 않는 국내 의료법 탓에 우리나라 기업들이 총(국내 시장)도 없이 전쟁터(해외시장)에 나가 싸우고 있는 상황이 지속되고 있는 것이다.

정 사장은 "국내에서는 법적인 이유로 원격의료시장이 형성되지 못해 차라리 해외시장 진출을 모색하고 있는 기업이 늘고 있다"며 "해외 바이어들로부터 '너희 나라는 어떻게 하고 있냐'는 질문을 받으면 우리나라 원격의료시스템의 기술, 비용 측면 우위에도 불구하고 현재로서는 해외 구축 사례나 실적을 바탕으로 계약을 설득하는 수 밖에 없는 실정"이라고 말했다.


그나마 지난 2000년 선도적인 투자를 감행해 해외 실적을 쌓은 비트컴퓨터는 나은 편이다. 상당수 중소기업들은 우수한 원격의료 기술력을 갖추고도 국내 수익 창출이 뒷받침 되지 못한 탓에 해외 시장에는 첫발도 내딛지 못하고 있다. 세계 최고의 통신기술을 바탕으로 중국 등 해외시장에서 사업을 벌이고 있는 대기업들조차도 국내 사업은 엄두조차 못 내고 있다.

문제는 이 같은 상황을 지켜보고만 있기에는 글로벌 원격의료 시장이 놓칠 수 없는 '황금알' 이나 다름없다는 점이다. 시장조사기관 IHS테크놀로지에 따르면 지난 2013년 글로벌 원격의료 환자수는 48만명에서 2018년에는 700만명으로 급증하면서 같은 기간 시장 규모도 4억 달러에서 45억달러로 급성장할 전망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원격의료 시장을 둘러싸고 세계 각국과 기업들은 발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일본 경제산업성의 지원으로 카가와현은 지난 2003년 케이-믹스(K-MIX+)라는 원격의료 플랫폼을 구축하고 당뇨병 진료 등 다양한 원격의료 서비스를 펼치고 있다. 특히 산모와 태아용 원격의료 서비스는 태국과 미얀마 등지에 수출됐다. 한국보건의료연구원 관계자는 "일본 사회보장번호 마이 넘버(My Number)가 내년에 도입되면 원격의료 플랫폼은 전국망으로 연결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우리나라는 동네의원을 중심으로 원격의료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의료법 개정이 야당과 의협 등의 반대로 1년 8개월째 국회 상임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하고 있다. 이영찬 한국보건산업진흥원장은 "세계 최고 수준의 우리나라 IT와 의료기술을 결합한다면 분명 최고 경쟁력을 갖춘 원격의료 성공 모델을 만들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위해서는 국내서도 원격의료 관련 법안이 서둘러 마련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임지훈기자 jhlim@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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