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정부의 공식 이유는 북한의 억압적 인권 실태가 개선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미국은 과거에도 리비아의 전 독재자인 무아마르 알카다피, 로버트 무가베 짐바브웨 대통령, 라이베리아의 찰스 테일러 전 대통령 등을 인권침해를 이유로 개인 제재한 바 있어 제3국 지도자를 정면 겨냥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하지만 미국의 대북제재강화법(HR 757)에 따르면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이번에 북한 인권보고서만 의회에 제출하고 제재 명단 발표는 다음 정권으로 미룰 수 있었다. 또 김정은을 제재 대상에 포함하면 북한의 추가 도발로 한반도 긴장이 극대화할 수 있다는 점이 부담이었다. 이 때문에 워싱턴 외교가는 정치범수용소 운영에 관여된 중간관리 10여명만 첫 제재 대상이 되고 김정은이나 핵심 지도부는 포함되지 않을 것으로 관측했다.
사정이 이런데도 오바마 행정부는 예상을 뒤엎는 초강수 제재조치를 통해 국제사회 경고를 무시하는 김정은 정권과 대화 의지가 없다는 뜻을 분명히 했다. 특히 북한이 지난달 22일 무수단 미사일의 대기권 재진입 실험에 성공하며 미국에 실질적 위협으로 등장하자 북한 정권 내부를 흔들어 벼랑 끝으로 몰기 위한 압박 공세를 본격화한 것으로 풀이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 고위관료의 발언을 인용해 “개인 제재로 즉각적인 효과를 기대하지 않는다”면서도 “북한 정권, 특히 하급·중간관리자에게도 인권침해에 관련될 경우 앞으로 블랙리스트에 올라 심각한 불이익을 받을 것이라는 신호를 주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미 정치 전문지인 폴리티코 등은 공화당의 유력 대선주자인 도널드 트럼프를 간접 공격하는 효과도 있는 것으로 분석했다. 트럼프는 김정은은 ‘미치광이’이며 오바마 대통령이 북핵 저지에 실패했다고 맹비난하면서도 김정은과 만나 대화할 용의가 있다는 입장이다. 김정은을 인권 범죄자로 낙인찍으면 트럼프의 무책임한 외교정책을 부각시킬 수 있다.
/뉴욕=최형욱특파원 choihuk@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