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과 미국이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를 주한미군에 배치하기로 8일 최종 결정했다. 한반도 사드 배치에 반대하던 중국은 곧바로 외교부 성명을 내고 사드 배치 중단을 촉구하며 강력히 반발했다. ‘전략적협력동반자관계’ ‘역대 최상의 우호관계’를 강조하던 한중관계는 폭풍 속으로 빠져들게 됐다. 중국이 한국에 대한 전방위적 보복에 나설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는 상황이다. ★관련기사 2·3·4·9·10면
한미는 이날 오전 국방부에서 “주한미군에 사드 체계를 배치하기로 한미동맹 차원에서 결정했다”고 공식 발표했다. 양국은 발표문에서 “북한의 핵과 대량살상무기(WMD), 탄도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과 우리 국민의 안전을 보장하고 한미동맹의 군사력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조치로 결정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특히 “사드 체계가 조속히 배치될 수 있도록 긴밀히 협력하고 있으며 세부 운용절차를 발전시켜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내년 말께를 목표로 주한미군에 배치되는 사드는 1개 포대로 주한미군사령관의 작전통제를 받으면서 한미연합작전에 운용될 계획이다.
중국은 즉각 외교부 성명을 통해 “강렬한 불만과 단호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다. 이어 “중국은 미국과 한국이 사드 배치 프로세스를 중단하고 지역 형세를 복잡하게 만드는 행동을 하지 말 것을 강력히 촉구한다”고 밝혔다. 중국 외교부는 또 이날 오후 김장수 주중 한국대사와 맥스 보커스 주중 미국대사를 불러 이번 결정에 강력히 항의했다.
중국의 반발을 의식한 듯 한미는 이날 사드 배치를 발표하면서 “오직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에 대해서만 운용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하지만 중국은 사드가 자국의 전략적 안보이익과 동북아 지역의 전략적 균형을 심각하게 훼손할 것으로 보고 있다. 사드 배치가 미국의 한반도·동북아에서 새로운 미사일방어망(MD) 구축 거점이 돼 미국과의 핵전력 균형이 깨질 수 있다는 우려에서다.
전문가들은 이번 사드 배치 결정을 계기로 한중관계가 급속도로 악화되고 중국이 우리와 이해관계가 충돌하는 분야에서 잇따라 딴죽을 걸 가능성이 있다고 분석했다. 김흥규 아주대 정외과 교수 겸 중국정책연구소장은 “(사드 배치 결정으로) 우리가 원하는 한반도 통일이나 향후 한반도 정세의 큰 비전과 관련해 중국과 논의할 수 있는 상황은 이미 지나가고 있다”고 지적했다. 김 소장은 “중국은 그동안 한중관계 차원에서 참아온 여러 가지 사안들을 국가이익 차원에서 하나씩 제기하게 될 것”이라며 “한중 간 영공식별이나 해양경계 획정, 우리의 이어도 점유 문제 등이 대표적”이라고 설명했다.·
특히 중국에 대한 한국의 높은 교역 의존도를 무기로 삼아 중국이 공식적인 무역보복 조치까지는 아니더라도 눈에 보이지 않는 각종 비관세장벽을 동원할 수 있다는 점이 가장 크게 우려된다. 우리나라 전체 교역에서 중국이 차지하는 비중은 지난해 기준 수출 25.3%로 1위다. 수입 비중도 20.6%에 달한다. 중국이 기침을 하면 우리 경제는 감기에 걸리는 셈이다.
연초 중국이 한국 기업들이 우위를 점한 삼원계 배터리를 전기버스 배터리 보조금 품목에서 잠정 배제한 것이 대표적이다. 1차적으로는 급성장하는 자동차용 배터리 시장에서 중국 기업을 보호하려는 조치로 분석되지만 우리 기업에는 엄청난 타격일 수밖에 없다. 사드 배치 결정을 빌미로 이런 조치가 다른 업종으로 확산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중국 정부가 유커(중국 여행객)에 대해 직간접적인 압박을 가하는 방법도 있다. 대만처럼 직접적으로 여행제한을 하기는 어렵지만 무관세 허용 물품 제한 등 합법적인 조치를 통해 한국을 방문하는 여행객 숫자를 줄일 수 있다.
다만 중국이 지난 2001년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해 규정준수 의무가 생긴 만큼 2000년의 ‘마늘 파동’ 같은 보복조치를 취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WTO 규정상 수출제한은 극히 예외적인 경우를 제외하고는 할 수 없으며 물품별 관세율 범위도 정해져 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은 “중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중국이 연간 약 600억달러 규모의 무역적자를 감내하면서도 한국과 교역을 유지한다는 점을 강조하며 한국이 사드 배치에 나설 경우 중국도 국익에 따라 문제를 바라볼 수밖에 없다는 분위기가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또 “중국 학자들 사이에 이 같은 ‘경제 보복’ 목소리가 나오는 것은 중국 정부의 의중을 반영한 것”이라면서 “WTO 체제 내에서 노골적인 무역보복은 어렵지만 비관세장벽을 높이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고 이는 우리에게 큰 타격”이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우리 정부는 중국과의 관계를 어떻게 끌고 가야 할까. 우리 정부는 전날 외교채널을 통해 중국에 사드 배치 결정을 사전 통보했으며 향후 사드 배치가 한중관계에 추가 리스크가 되지 않게 고심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김흥규 소장은 “이제는 한중 간에 서로 갈등하지 않고 윈윈할 수 있는 영역을 찾아 협력의 경험을 축적하고 갈등 관리를 해야 한다”고 전했다. 이어도 문제 해결이나 환(環)황해지역 협력, 해양·수산 협력, 환경 협력 등에서 중국과 새로운 구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노희영기자 nevermind@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