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26년 평양에서 출생한 구봉서는 한국 코미디계의 대부로 한 평생 대한민국의 웃음을 위해 헌신한 인물이다. 1945년 악극단의 희극배우로 첫 발을 디딘 이래 400여 편의 영화, 980여 편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며 다방면에서 활약했다.
그는 배삼룡, 곽규석 등과 콤비를 이루며 1960~80년대 희극계를 주름잡으며 한국 코미디의 황금기를 이끌었다. 정치적으로 암울하고 경제적으로 어려웠던 시기에 웃음으로 고단한 서민들의 삶을 위로했다.
1940~60년대 연극, 만담, 코미디, 노래가 어우러지는 악극이 전성기를 구가하던 시절에는 양석천, 양훈, 김희갑, 서영춘, 배삼룡 등과 함께 전국을 돌며 서민들에게 웃음을 선사했다. 1950년대 후반부터는 충무로에 진출해 코믹영화의 전성기를 열었다. 1969년 MBC TV 개국과 함께 시작된 코미디 프로그램 ‘웃으면 복이 와요’에서 ‘비실이’ 배삼룡과 명콤비로 연기를 선보이면서 국민적인 스타로 부상했다. 동양방송(TBC) TV 프로그램 ‘쇼쇼쇼’에서는 ‘후라이보이’ 곽규석과 콤비를 이루면서 라면 CF에도 등장해 ‘형님 먼저, 아우 먼저’라는 유행어를 낳기도 했다.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찰리 채플린의 희극 연기를 신봉했던 구봉서는 코미디는 풍자라고 믿었다. 잘못된 정치와 사회를 풍자하는 진실이 담긴 코미디를 해야 한다는 게 그의 신념이었다. 그는 은퇴 후 가진 한 인터뷰에서 “요즘은 풍자 코미디가 부족하다”며 “코미디가 사회를 정화하는 역할을 못 한다면 의미와 역할이 퇴색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60년 이상 희극인으로 사회와 연예계에 기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13년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문화훈장’을 받기도 했다.
그는 과거 영화 촬영 중 부상한 후유증으로 척추 질환을 앓아왔으며 지난 2009년 1월 중순 자택 욕실에서 넘어져 뇌출혈로 의식을 잃은 뒤 뇌수술을 받은 바 있다. 2010년께부터는 휠체어를 타고 다녀야 했고 최근에는 신장 문제로 일주일에 세 번 정도 투석을 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빈소는 서울 강남성모병원 31호실에 마련됐으며 발인은 29일 오전 6시다. 유족으로는 부인과 네 아들이 있다.
/연승기자 yeonvic@sedaily.com
코미디언 구봉서가 2013년 11월 18일 서울 송파구 방이동에서 열린 ‘2013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시상식에서 은관 문화훈장을 수여받은 후 소감을 밝히고 있다./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