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상논단] 茶山의 위민 정신이 아쉽다

김진수 선비리더십아카데미 회장
전 현대차그룹 일본법인대표
황제도 백성 섬겨야 한다던 다산
정치 본질을 '민본 사상'서 찾아
특혜 누리는 고위직 공무원들도
존재의 이유 스스로 되돌아봐야



심리학자들의 연구결과에 의하면 인간은 하루에 약 6만번의 생각을 한다고 한다. 그중 약 95%는 어제 했던 생각의 똑같은 반복이고 나머지 5%는 어제와 거의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을 뿐 새로운 생각을 전혀 하지 않는다고 한다. 즉 인간은 새로운 창조적인 생각을 거의 하지 않고 하루를 보내고 있다는 말이 된다. 이는 대부분의 인간에게 적용되는 말이지만 세상의 인간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끼친 위대한 성현이나 위대한 과학자들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조선말기의 선비 다산 정약용은 아주 특별하게 새로운 생각을 많이 생산해낸 실학자다. 그는 유학자인 동시에 탁월한 행정가·교육자·역사학자·수학자·토목공학자·기계공학자·지리학자·법학자·의사·시인·화가였다. 왕명을 받아 수원화성을 건설할 때 정조임금이 10년 안에 완공하라고 임무를 줬는데 2년 9개월 만에 거뜬히 앞당겨 공사를 마감한다. 정조임금이 현장에 와서 보니 노무자들이 지게를 지고 돌을 나르는 것을 보고 적어도 10년은 걸릴 거라고 생각했는데, 다산 정약용은 새로운 발상으로 거중기를 제작해 공사현장에 설치함으로써 공기를 대폭 단축시킨 것이었다.


다산의 새로운 발상은 논어의 해석에서도 나타난다. 학이편 제1장 제1절에 나오는 ‘학이시습지 불역열호(學而時習之 不亦說乎)’라는 구절의 해석이다. 모든 학자들이 ‘배우고 때때로 익히니 즐겁지 아니한가’로 풀이하지만 다산은 이것은 잘못된 해석이라며 ‘시(時)’를 ‘언제나’로 풀이하고 ‘습(習)’을 ‘실천’으로 해석하는 첫 번째 학자가 됐다. ‘배우고 때때로 익히는’ 것이 아니라 ‘배우고 언제나 실천하는 것이 즐겁지 아니한가’로 풀이를 새롭게 했다. 이는 경험과 실행을 우선시한 공자의 뜻을 바로 꿰뚫어 본 정곡을 찌른 해석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우리가 배우고 그 배운 것을 실행하지 않는다면 그 배움이 무슨 가치가 있겠는가. 다산은 ‘실천할 수 없는 학문은 학문이 아니다’라고 까지 말한다. 다산은 주지하는 바와 같이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하면서 500여권이 넘는 저서를 남겼다. 40세에 시작한 유배는 57세에 끝이 나서 고향으로 돌아온 다산은 유배시절의 저서에 대한 마무리 작업을 거쳐 차분히 정리를 해놓고 18년 만에 서거한다. 그의 나이 75세 때였다. 19세기 중엽까지 살았던 다산은 당시 조선의 정치·경제·사회·문화에 대한 의식이 일반인들과 달리 개혁적이고 진보적인 측면이 돋보인다. 특히 다산의 인권의식은 ‘관리는 백성 위에 있는 사람이 아니고 백성은 관리의 위에 있는 사람’이라고 강조한다. 다산은 ‘원목(原牧)’에서 이렇게 설파한다. “목민관(관리)은 백성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백성이 목민관을 위해서 있는 것인가. 백성들이 곡식과 옷감을 생산해 목민관을 섬기고 또 탈것과 사역자들을 내어 목민관을 전송하고 있으니, 백성들이 정말로 목민관을 위해 있는 것인가. 아니다. 절대 아니다. 목민관이 백성을 위해 있는 것이다.”

다산의 위민사상은 세종대왕과 정조대왕의 위민사상을 이어받고 있다. 다산은 또 이렇게 설파한다. “마을 사람이 추대해 이정(里正·조선 지방행정 최말단직)을 세우고, 고을 사람들이 추대해 주장(州長)을 만들고, 주장들이 한 사람을 추대해 국군(國君)을 세우고, 여러 국군이 모여서 방백(方伯)을 추대하고, 여러 방백이 모여서 한 사람을 황왕(皇王)으로 추대하는 것이라, 따지고 보면 황왕의 근본은 이정에서 시작된 것으로 윗사람은 모두 백성에서 나왔으며 백성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황왕은 곧 천자(天子)라는 인식이 보편화됐던 왕정세습시대에 이렇게 진보적인 민본사상의 발상을 다산이 했다는 사실이 놀랍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대통령을 비롯해 정부의 고위직에 앉아 있는 사람이나 국회의원의 자리에 올라 온갖 특권과 의전을 수혜하고 있는 사람들이 반드시 새겨들어야 할 위민사상이다. 고위직으로 나라의 녹을 먹는 사람들이 출타할 때 받는 의전을 생각해보자. 의전과 호위를 받으면 으스대고 싶은 마음이 생기기 마련이다. 하지만 그럴수록 이런 의전과 호위가 누구를 위해 또 무엇을 위해 제공되는 것인가를 깊이 생각해보는 통찰이 필요하다.

김진수 선비리더십아카데미 회장·전 현대차그룹 일본법인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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