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행정사에게 행정심판 대리권을 부여하는 내용의 행정사법 개정안이 입법예고되자 이를 반대하는 변호사들과 행정사 간의 영역 다툼이 가열되고 있다.
행정자치부가 마련한 개정안은 그동안 행정심판 청구와 관련된 서류 작성·제출만 대행하도록 한 행정사의 업무 영역을 넓혀 행정심판에서 변호사 외에도 행정사를 대리인으로 쓸 수 있게 하는 내용이다. 대리권 부여에 찬성하는 측은 행정사를 통해 적은 비용으로 행정심판을 대리해 법률 소비자들이 좀 더 쉽고 편리하게 권리 구제를 도모할 수 있으며 일각에서 제기하는 퇴직공무원의 전관예우 우려는 수임 제한으로 충분히 방지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반대 측은 전문성이 부족한 행정사에게 일종의 사법절차인 행정심판 대리권을 부여할 경우 사법체계의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다고 반박하고 있다. 양측 견해를 싣는다.
최근 행정자치부는 행정사의 업무 영역을 확대하는 취지의 행정사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그동안 행정기관에 제출하는 서류의 작성·제출 대행 등의 업무를 수행하던 행정사에게 법률 업무 영역인 행정심판 대리권 및 법제에 대한 자문권 등을 부여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이러한 영역 확대로 국민의 권익 보호를 강화하겠다고 한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은 의도와 달리 국민의 권익 보호에 역행하고 사법체계의 혼란을 초래할 소지가 크다. 주된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이번 개정안으로 행정심판 영역에서도 전관예우가 성행할 우려가 크다. 이미 고위직공무원 출신 행정사들이 민간과 정부 부처 사이에서 로비 창구 역할을 하고 있다는 비판이 많다. 로비스트 제도가 합법화하지 않은 현실에서 공무원 출신 행정사들이 로비 과정에 전관예우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행정사의 업무 영역이 행정심판으로 확대되면 행정심판 영역에서도 전관예우가 성행할 우려가 크다. 행정심판 담당 공무원이나 공무원 출신 행정심판위원과 같은 부서에서 근무하는 등 연고관계가 있는 행정사가 이러한 관계를 활용해 영업을 할 것이 불 보듯 뻔하기 때문이다. 유착관계가 형성될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전관예우가 고착화하면 고액의 수임료를 주고서라도 로비가 가능한 행정사에게 사건을 의뢰할 수밖에 없어 결국 국민의 수임료 부담은 높아지고 행정심판에 대한 국민의 불신은 가중될 수밖에 없다. 이미 우리는 법조계를 통해 전관예우의 폐해를 여실히 목도하고 있다. 늦었지만 전관예우 근절을 위해 대법관 출신 변호사의 개업을 금지하고 판검사 출신 변호사의 개업 제한을 강화하는 등 각종 대책이 마련되고 있는 상황이다. 이처럼 전관예우 척결이 국가적 과제로 떠오른 이 시기에 행정심판 영역에서 전관예우를 부추기고 ‘관피아’를 양산하게 될 이번 개정안은 시대의 흐름에 역행하는 것이다.
둘째, 행정사는 행정심판에 대해 전문성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기 어렵다. 현재 행정사 자격 취득자 중 99% 이상은 별도의 시험 없이 일정 경력 이상의 공무원이라는 이유만으로 자동으로 자격을 취득한 자이다. 따라서 이들이 소관 부처의 법령 외에 법적 분쟁에 대응하기 위한 실체법 및 절차법 전반에 대한 기초적인 법 지식을 보유하고 있다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행정심판은 행정청에 의한 행정작용이 아니라 부당한 공권력의 행사·불행사에 대한 구제절차로 일종의 사법절차이고 우리 헌법(제107조 제3항) 역시 행정심판에는 사법절차가 준용돼야 함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므로 실체법·절차법에 대한 전문성을 갖추지 못한 행정사에게 전면적으로 행정심판 대리권을 부여하는 것은 헌법 위반에 해당할 소지가 크다.
어떻게 반대
셋째, 행정사에게 전면적인 행정심판 대리권을 부여하는 것은 소관 전문 분야의 행정심판 대리권만 부여받거나 행정심판 대리권을 전혀 부여받지 못한 다른 자격사와 비교해 형평에 어긋난다. 세무사의 경우 조세 분야, 변리사의 경우 특허 분야, 노무사의 경우에도 노동 분야에 한정해 행정심판 대리권을 보유할 뿐이다. 또 행정사와 유사한 서류의 작성, 등기·공탁 사건 신청의 대리 등의 업무를 수행하는 법무사는 행정심판 대리권을 보유하지 못하고 있다. 법무사의 경우 행정사에 비해 시험과목이 많고 난도도 높은 법률 전문 직종이지만 행정심판 대리권을 가지지 못하는 점에 비춰봐도 행정사에게 전면적 대리권을 부여하는 것은 형평에 어긋난다.
넷째, 현재 행정사에게 행정심판 대리권을 부여할 사회적 필요성이 전혀 없는 상황이다. 이미 법학전문대학원 제도 시행으로 매년 1,500명 이상의 변호사가 배출되고 있으며 그에 따라 행정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고 행정심판 업무를 수행하는 변호사 역시 증가하고 있다. 국민들이 행정심판 영역에서도 많은 비용을 들이지 않고 양질의 법률 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시대가 도래한 것이다. 여기에 세무사·변리사·노무사 등의 전문가들이 소관 전문 분야의 법률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구태여 행정사에게 행정심판 대리권을 부여해야 할 합리적 근거를 찾기 어렵다.
이와 같이 이번 행정사법 개정안은 별다른 필요성이 인정되지 않음에도 전문성이 부족한 행정사에게 일종의 사법절차인 행정심판 대리권을 부여해 전관예우를 양산하고 사법체계의 혼란을 초래할 우려가 있으므로 신속히 폐기되는 것이 타당하다. 이러한 개정안이 ‘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김영란법)’이 본격 시행되는 이 시점에 입법예고됐다는 사실이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채명성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