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의 눈] 경직된 삼성의 조직문화

이종혁 기자 (산업부)



지난 12일 밤 만난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소속의 한 엔지니어는 잔뜩 미간을 찌푸리고 있었다. 갤럭시노트7의 단종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답답함이 느껴졌다. “갤럭시S7과 갤노트7을 비교 분석하며 갤노트7의 정확한 폭발 원인을 찾고 있다”고 그는 말했다. “폭발 원인을 찾는 것은 좋은데 위에서 갤S7은 왜 터지지 않는지 원인을 찾아오라고 한다. 스마트폰이 폭발하지 않는 원인을 도대체 어떻게 설명하란 말인가”라고 이 엔지니어는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갤노트7의 첫 폭발 사례보고부터 이번 단종 조치까지, 최근 삼성전자는 스마트폰 사업에 뛰어든 이래 최대 고비를 맞고 있다. 삼성전자 내부는 그 원인을 아직 소상히 밝히지 못했다. 원인은 하나일 수도 있고 여러 개의 복합 작용일 수도 있다. 하지만 국내외 여론은 한 가지, 삼성이 출시 시기를 무리하게 맞추려다 보니 충분한 품질 검증 기간을 거치지 못했을 것이라는 데 동감하는 분위기다.


결국 회계 장부에 숫자로 나타나는 성과에 집착하고 엄격한 상명하복 관계로 잘 알려진 삼성의 조직 문화가 이번 사태를 낳은 배경이라는 비판을 피할 수 없게 됐다. 이 점은 삼성전자가 애플을 제치고 스마트폰 시장 1위로 치고 올라가던 2010년대 초부터 제기되던 지적이다. 경영진이 세워둔 숨 가쁜 일정에 따라 일사불란하게 제품을 개발·양산하며 빠르게 왕좌를 차지했지만 정작 중요한 품질은 놓쳐버린 셈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도 “스마트폰이 왜 안 터지는지 설명하라”는 경영진의 모습은 다소 비합리적으로 보인다. 경직된 삼성전자 조직 문화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듯해 아쉬움이 남는다. 기자와 만난 엔지니어는 “혹여나 갤노트7의 정확한 폭발 원인을 알아내 보고한다 해도 결재선을 거치면서 왜곡·은폐되는 부분이 생기지는 않을까 두렵다”고 말했다.

삼성전자는 올 3월24일 ‘스타트업 삼성’을 내걸고 유연하면서도 수평적인 조직으로 재탄생하겠다고 선언했다. 직급을 간소화하고 복장은 자유롭게, 근무는 유연하게 바꾸겠다고 했다. 하지만 연매출 200조원에 이르는 거대한 삼성전자가 진정 변하기 위해서는 단순히 직원들이 반바지를 입고 출퇴근 시간을 자유롭게 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하다. 상부의 비합리적인 지시에 대해 하부에서 ‘노(No)’라고 말할 수 있는 문화부터 구축해야 한다. 그리고 이는 삼성전자가 이번 위기를 새로운 도약의 기회로 바꾸는 길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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