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약부터 따고 보자" 꼼수 판치는 조달물품 검사

기술력 없는 기업도 무조건 입찰
사전검증 땐 제대로 된 제품 제출
선정 후 저가 타업체·중국산 납품
직접생산증명원 등 갖춰야 하지만
조달청·수요기관 허술한 검사탓
소비자 피해·안전사고 우려 키워

0115A16 조달물품


내진 설계된 교량 받침을 제조하는 A기업은 경기도에 있는 한 지자체의 구청이 발주한 교량 내진보강 사업 입찰에 뛰어들었으나 실패했다. 입찰 결과를 궁금해하며 선정 기업을 확인해 본 결과 내진 설계 제품을 생산해 본 적도 없는 곳이 선정돼 있었다. 교량 받침에 내진 설계를 하는 기술은 진입 장벽이 높아 업계에서 해당 기술을 보유한 업체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다. A기업은 입찰에 성공한 기업이 내진 설계 기술 실험을 거쳤는지 서울지방조달청에 문의했지만 구청에 확인해보라는 말만 돌아왔다.

조달청 업무처리 매뉴얼 상 입찰에 참여한 기업은 제품 시방서(건물을 설계하거나 제품을 제조할 때 도면상에 나타낼 수 없는 공정 세부 사항을 적은 문서)에 명기된 대로 사전성능인증시험을 거치게 돼 있다. 구청에서는 문제가 없다면서도 실험 증빙 서류는 확인시켜주지 않았다. 답답한 A기업은 해당 사안을 감사원에 신고했고 감사원의 감사가 시작되자 해당 교량 공사는 중지된 상태다. A기업 관계자는 “처음에는 문제가 없다고 하더니 감사원에 신고해 감사가 시작되자 갑자기 교량 공사가 중단됐다”며 “선정된 기업은 감사원 측에 다른 기업과 기술제휴를 맺어 제품을 생산한다고 주장했다고 한다”고 토로했다.


조달청과 정부 공공기관 사업은 입찰 경쟁을 통해 국내 중소기업들이 납품을 전담하고 있지만 사전성능인증시험 때는 제대로 된 제품을 제출한 뒤 계약을 따낸 뒤에는 다른 제품을 싸게 받아 공급하는 방식이 성행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조달청이 조달물품을 전문기관에 맡겨 꼼꼼히 입찰 기업 제품의 성능을 검사하도록 제도를 마련해 놓았지만 수요기관에서 이를 잘 지키지 않는다는 것이 업계의 지적이다. 또 입찰에 참여하는 기업은 중소기업청이 발급하는 직접생산증명원이 있어야 하지만 이마저도 수요기관이 면밀하게 살피지 않는다는 주장이다.

중국에서 검증 안 된 제품을 수입해 대체하는 방식도 문제다. 발광다이오드(LED) 전등기구 업계에 따르면 입찰을 따낸 기업 중 일부가 정상제품으로 인증을 통과한 후 중국에서 수입하거나 불법 제조 업체에서 제품을 가져와 납품하고 있다. LED 전등기구 조합 관계자는 “전기용품은 안전인증인 국가통합인증(KC)마크를 비롯해 고효율, 친환경 등 3~4개의 인증을 통과한 후에 제품을 생산하도록 돼 있다”며 “일부 기업이 제품을 생산할 기술이 없으면서 입찰만 따낸 후 납품은 중국 제품으로 대체하는 꼼수를 부린다”고 설명했다.

중기업계는 지자체나 정부 기관의 안일한 검사가 결국 소비자의 피해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에 엄격한 관리가 필요하다고 입을 모은다. LED 전등기구 사업을 하는 한 대표는 “문제가 없을 것이란 생각이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다”며 “조달을 감독하는 기관이나 발주한 수요기관이 서로 책임을 떠넘기려 하지 말고 납품된 제품을 제대로 검사해 시장 질서를 흐리는 행위를 뿌리 뽑아야 한다”고 강조했다.

/백주연·조권형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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