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유기동물센터 이야기②] 10일 뒤에 모두 안락사? "누가그래"

지난 2월의 충격적인 첫 봉사 이후 몇 주가 지났다. 월요일마다 정기적으로 찾아가 청소, 설거지, 목욕시키기만 하고 분양시간이 되면 빠져나왔다. 분양까지 보게되면 헤어나올 수 없을 것 같았다.

여느때와 다름없이 허리를 꺾으며 돌아서려는 길, 고정 봉사자들이 “네가 목욕시킨 강아지가 분양되는걸 보는것도 큰 보람일 것”이라며 붙들었다. 사실 그 기분이 궁금하기는 했다. 딱 한번만, 진짜 딱 한번만 견학해보자고 마음먹었다.

사실 분양과정을 보는게 내키지는 않았다. 편견 때문이었다. 과거 사설단체에 방문했을 때 분양절차 중 입양자의 개인신상을 묻고, 단체에서 이를 심사하거나 책임비를 요구하는 경우를 목격하며 실망했던 바 있다. 마치 상품 고르듯 강아지들을 고르는 사람들의 표정도 머릿속에 스쳤다. 부담스러웠다.

제주유기동물 센터의 분양시잔은 수요일을 제외한 평일 2시~3시다. 입양시간이 가까워오면 강아지들은 흥분하기 시작해 사람들이 돌아가면 다시 가라앉는다. / 사진=최상진 기자
두시가 넘어서자 3~4팀의 가족이 분양동으로 들어섰다. 모두 상기된 표정이었다. 한 가족은 이미 ‘포인핸드’ 애플리케이션을 통해 특정 강아지의 관리번호를 찾아 왔고, 두 가족은 한두마리 강아지를 산책시켜봤다. 다른 한 부부는 불쌍하다며 눈시울만 붉히다 돌아갔다.

이날 분양된 강아지는 총 세 마리. 분양비는 없었다. 입양자들은 입양신청서를 작성하고, 동물등록을 마친 뒤 준수사항·사후 관리에 대한 안내까지 들은 뒤 아이들을 안고 떠났다. 대형견과 고양이는 찾는 사람이 없었다.

문득 생각해보니 이날 입소된 동물은 6마리.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개체수 비율이 맞지 않았다. ‘이래서 안락사를 시키는건가보다’라고 생각하며 무심결에 던진 ‘10일 뒤 안락사’에 대한 이야기에 고정 봉사하시는 이모들은 모두 펄쩍 뛰었다.

“상진씨, 우리 센터는 10일 뒤에 안락사 안시켜. 그럴거면 시작도 안했어.”


제주유기동물센터 분양동 식사시간. / 사진=최상진 기자
봉사자들의 말처럼 제주도에서 직접 운영하는 제주특별자치도 동물보호센터(이하 제주유기동물센터)에서는 실제로 ‘10일 공고 뒤 안락사’라는 말은 있으나 마나 한 이야기다. 되도록 긴 시간 동안 지켜보며 새로운 주인을 찾는다. 마음 약한 직원들과 봉사자들은 ‘언젠가는’ 이들의 새 주인이 나타날 거라고 믿는다.

일부 사설단체는 ‘공고기간 10일이 지나면 이 아이는 안락사됩니다’라는 과격한 문구로 홍보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러나 이를 반대로 보면 ‘10일 뒤에 이 아이의 가족이 되어주세요’라는 말로 풀어낼 수 있다. 공고기간 10일은 동물을 잃어버린 주인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배려다.

제주유기동물센터에는 안락사만큼 많은 수의 동물이 자연사한다. 예방한다고 하지만 파보장염, 코로나장염, 홍역 등의 전염병이 돌면 보통 어미젖도 떼지 못한 강아지들부터 목숨을 잃는다. 하루에도 몇 마리씩 들어오는 새끼 고양이는 스트레스에 취약해 임시보호를 맡기는 편이지만 보통 절반도 살아남지 못한다. 성견은 길에서 심장사상충을 비롯한 지병을 안고 들어와 죽는 경우가 많다.

7개월간 꾸준히 봉사하며 지켜본 센터에서는 불필요한 안락사를 하지 않았다. 300여 마리까지 수용할 수 있는 대형 시설을 갖춘 만큼 멀쩡한 동물을 안락사 시키는 경우는 없다. 성질이 사나워 다른 동물을 해칠 우려가 있거나 심각한 질병에 걸린 경우, 교통사고 등으로 치료가 불가능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보통 새로운 주인을 찾을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제주유기동물센터 분양동에서 생활하고 있는 믹스견 ‘보리’는 큰 수술을 받았지만 분양동 안에서 사람을 가장 잘 따른다. 7개월간 함께했고, 지금도 분양동에 있다. / 사진=최상진 기자
도에서 운영하는 만큼 수의사를 통한 기본적인 진료와 치료도 이뤄지고 있다. 그러나 동물병원으로 등록되지는 않은 만큼 큰 수술이나 심한 질병을 치료할 여건까지는 미치지 못한다. 이런 경우 고정 자원봉사자들이 매달 십시일반 회비를 모아 시내 동물병원에서 치료해 분양하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모두가 대상이 될 수는 없지만, 그렇게 새 주인을 찾은 동물만 해도 수십마리에 이른다.

이 덕분에 불안정한 하루하루 속에서도 꿋꿋하게 살아남은 동물이 많았다. 특히 봉사를 시작한 2월부터 7개월간 함께했고, 지금도 센터의 터줏대감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는 강아지들이 봉사자들의 사랑을 듬뿍 받고 있다.

자궁을 들어낸 믹스견이지만 누구보다 사람을 잘 따르는 보리, 눈이 보이지 않지만 끈질기게 봉사 이모들 옆을 따라다니는 도레, 10월의 어느 좋은 날 미소가 넉넉한 봉사자 아저씨의 품에 안겨 떠난 럭셔리 푸들.

작고 예쁜 품종견(묘)가 아닌 유기동물에게 센터는 적응하기에 따라 다르지만 죽지 않으면 나가지 못할 감옥과도 같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안에서도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은 아이들에게 늘 희망을 이야기했다. ‘참고 견디면 이번에는 좋은 주인을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그래서 봉사자들은 오늘도 희망을 안고 제주유기동물센터로 향하는 비포장길을 덜컹거리며 오른다.

/최상진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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