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순실 게이트' 촛불집회]'대통령 퇴진' 30만의 평화적 외침...시민의식 빛났다

광화문에만 지난 주보다 10배 늘어난 20만명 모여
10대·주부서 중장년층까지 나이·이념불문 거리로
대규모 집회에도 참가자들 노력으로 물리적 충돌 피해

5일 저녁 서울 광화문광장에서 열린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화제에 참가한 시민들이 손팻말을 들고 ‘박근혜 퇴진’ 구호를 외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으로서 자괴감 들면 자리에서 내려오라.” “4년 전에 찍은 표를 되돌려 받으러 왔다.”

‘최순실게이트’에 대한 국민들의 실망감이 전국에서 30만개의 촛불로 타올랐다. 박근혜 대통령에 대한 지지도가 5%까지 추락한 상황에서 하야를 요구하는 촛불시위에 참가한 인원이 1주일 새 10배 넘게 늘었다. 지난 5일 시민사회단체 1,500여개로 구성된 ‘박근혜 정권 퇴진 비상국민행동(준)’ 주최로 서울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제2차 촛불집회’에서는 예상보다 훨씬 많은 20만명(주최 측 추산)의 서울시민들이 모여들었다.


‘모이자! 분노하자! #내려와라 박근혜 2차 범국민행동 문화제’라는 이름의 문화제 형식으로 열린 집회에서 시민들은 ‘비선 실세’ 의혹에 분노를 표출하며 박 대통령의 퇴진을 요구하는 목소리는 높았지만 끝까지 평화시위 원칙을 지켜내려는 시민의식은 빛났다.

격앙된 감정으로 쉽게 폭력집회로 변질될 것이라는 경찰의 우려는 기우에 지나지 않았다. 촛불집회의 시민들은 하나같이 스스로 절제하며 차분하게 손 피켓 등을 들고 입을 모아 박 대통령 퇴진 구호를 외치는 모습을 보였다. 경찰은 이번 집회가 폭력화할 것으로 예상하고 집회에 앞서 ‘행진 금지’ 처분을 내렸지만 서울행정법원 행정4부(김국현 부장판사)가 참여연대가 신청한 ‘금지통고 집행정지’를 받아들이며 시위대의 행진은 예정대로 진행됐다. 문화제가 끝나고 종로3가를 지나 을지로3가를 거쳐 남대문을 돌아 다시 광화문으로 되돌아오는 행진을 벌이면서도 참가자들은 일부의 일탈 행동에 대해 ‘경찰 통제에 잘 따르자’거나 ‘신고된 행진 코스로 갑시다’라고 외치며 불법행진이 되지 않도록 서로를 독려했다.

집회가 마무리되고 50대 취객이 “내가 세금 냈는데 왜 이 땅에 못 섭니까”라며 세종대왕상 앞 폴리스라인을 넘어섰다. 그러자 다른 참가자들이 한목소리로 ‘부끄럽다’, ‘빨리 돌아오시라’고 비판했고, 이 남성은 머쓱한 표정을 지으며 구석으로 사라졌다. 참가자들은 집회가 끝나고서도 서로 솔선해 휴지를 줍고, 대치하고 있는 의경들을 향해 고생한다며 박수를 쳐주는 등의 모습도 보였다.

한주전 같은 장소에서 열린 1차 촛불집회에 이어 훨씬 많은 인원이 모인 가운데 열린 2차 집회까지 별탈 없이 마무리되며 평화적인 집회 문화가 정착되는 것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최대 규모가 될 것으로 전망되는 민중총궐기가 평화롭게 마무리 될지에 대해서도 관심이 쏠린다. 오는 12일 열리는 민중총궐기에는 100만명에 가까운 인파가 운집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날 촛불집회에는 가정주부와 청소년은 물론이고 박 대통령의 주요 지지층으로 꼽히는 50~60대 이상의 중장년층들도 대거 거리로 쏟아져 나왔으며, 진보와 보수라는 이념적 스펙트럼을 넘어 한목소리로 분노를 표출했다. 집회에 참가한 이정춘(59·서울 강동구)씨는 “국민의 한 사람으로 나라가 이렇게까지 망가졌는데 도무지 집안에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며 “이제 대통령이 물러나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가정주부 최미영(47)씨는 “국민들이 이렇게까지 거리로 나와야 하는 상황까지 우리나라가 내몰렸는지 답답하다”고 하소연했고 중학교에 다니는 허모(16)군은 “우리와 같은 중·고등학생에게도 인정받지 못하는 대통령이 대통령이라고 할 수 있느냐”고 꼬집었다. 박 대통령을 지지했던 보수 성향의 김양진(37)씨는 “고민 끝에 선택한 대통령이 국민의 뜻의 무시한 채 나라를 이 꼴로 만들었다는 게 도무지 참을 수 없다”고 성토했다. 김보미 서울대 총학생회장은 “대통령으로서 자괴감이 든다면 그 자리에서 내려오라”고 주문했고 최은혜 이화여대 총학생회장도 “국민이 위임한 권력을 정체 모를 사람에게 넘겨 남용하게 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이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두형·박우인기자 mcdjrp@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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