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가 지난 4일 오후 국회에서 열린 의원총회를 마친 뒤 회의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새누리당 비주류의 좌장 격인 김무성 전 대표가 오랜 침묵을 깨고 박근혜 대통령의 탈당을 공개적으로 요구하며 존재감을 드러내고 있다. 7일 김 전 대표는 국회에서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헌법의 최종 수호자인 대통령이 헌법을 훼손하며 국정을 운영했다”면서 “대통령은 선당후사의 정신으로 당적을 버려야 한다”고 탈당을 촉구했다.
특히 김 전 대표는 박 대통령의 출당까지 언급했다. 제 발로 걸어나가지 않으면 당에서 의원들의 의견을 모아 강제적으로 내보내겠다는 것이다. 김 전 대표는 회견 직후 기자들과 만나 ‘출당 조치도 가능하느냐’는 질문에 “대통령보다 당이 중요한데 너무나 당연한 것 아니냐”며 “출당시킨 전례도 많다”고 강조했다. 김 전 대표는 박 대통령과 정면충돌은 피해왔다. 갈등이 생기면 항상 하루도 못 버티고 사과하거나 없던 일로 만드는 행태가 반복돼 ‘김무성의 30시간 법칙’이라는 비판도 받았다. 하지만 이날 김 전 대표는 ‘청와대와 당내 패권세력의 발호와 농단’ ‘정치개혁 유린’ ‘국정붕괴’ 등 독설에 가까운 단어들을 동원했다.
일부에서는 김 전 대표가 큰 그림을 그리고 움직이기 시작했다는 관측이 나온다. 김 전 대표 측은 지난 8월 이후부터 “찬바람이 불기 시작하면 (대권 행보에) 나설 것”이라고 지속적으로 언급해왔다. 당이 최악의 위기에 빠진 지금이 역설적으로 김 전 대표의 존재감을 알리는 절호의 기회가 됐다는 분석이다. 김 전 대표가 당의 혼란한 사태를 원만히 수습하면 자연스레 내년 대선에서 안정감 있는 여당 후보로 부상할 것이라는 계산도 깔린 게 아니냐는 관측도 제기된다. 그러나 김 전 대표는 “나라를 걱정하는 마음에서 일을 같이 고민하고 해법을 제시해야 하는데 (친박 주류들은) 이것을 또다시 당권 싸움으로 몰고 가고 있다”며 “당을 위한 충정으로 얘기하는데 당권 싸움으로 몰고 가는 사람들과 대화할 의욕이 없어진 상태”라고 말했다. 여기에 오세훈 전 시장도 나서 “대통령의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라며 가세해 친박에 눌려 설움을 받았던 비주류가 일제히 반격에 나서는 모양새다. 오 전 시장은 이날 페이스북을 “새누리당은 정권의 한 축으로서의 책임을 느끼고, 재창당으로 거듭나야 한다”며 “그 첫 단추가 현 지도부의 조속한 사퇴”라며 이같이 밝혔다.
비주류의 좌장 격인 김 전 대표와 대선 후보인 오 전 시장까지 전면에 나서면서 당 주류인 친박들은 즉각 반발했지만 파급력은 예전만 못하다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이장우 최고위원은 “최근 일련의 언행과 처신을 보면 당 원로이자 대권 후보군 중 한 명인지 의심스럽다”며 “원로로서 지혜를 모으고 함께 이 난국을 헤쳐나가자고 해도 모자랄 판에 강 건너 불구경 하듯 하는 언사야말로 무능과 무책임 정치”라고 비판했다. 이정현 대표도 “(탈당은) 박 대통령이 판단할 문제이기는 하지만 저는 반대”라고만 했다.
한 정치평론가는 서울경제신문과의 통화에서 “대통령의 지지율이 ‘콘크리트’라던 30%대를 깨고 한자릿수가 되면서 김 전 대표가 내년 대선 등을 고려해 적극적으로 존재감을 알려 나가고 있는 것”이라며 “친박들이 당장은 반발하는 모양새를 취하지만 과거처럼 조직적인 파급력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전 대표 측근인 강석호 최고위원은 이날 공식 사퇴를 선언하면서 “당 지도부를 새로운 인물로 구성하고 당명과 당 로고까지 바꿔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홍길기자 wha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