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현 새누리당 대표가 8일 오전 국회 당 대표실 앞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답하고 있다. 연일 사퇴 압박을 받고 있는 이정현 대표의 입술이 터져 있다. /연합뉴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는 8일 거국중립내각 구성과 관련 “다행스럽게 (거국내각 구성은) 야당의 유력 대선주자들이 먼저 제안한 것을 대통령이 받아들인 것이기 때문에 의외로 (여야 합의가) 빨리 풀릴 수도 있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이날 국회 당 대표실에서 기자간담회를 열고 “사실상 야당이 추천하는 총리로 거국내각구성을 꾸리는 것인데, 이는 한 번도 안 해봤던 정치실험”이라며 “(여야의 내각구성 합의가) 쉽다, 어렵다라고 단정하긴 어렵다”며 이같이 밝혔다. 이 대표는 “지난 30년간 대통령제 폐해에 대해 온몸으로 느끼는 정치권, 특히 야당에서 먼저 요구한 것을 대통령이 수용한 것”이라며 “대통령이 국회를 찾아 강한 수용 의지를 보였고, 국회의장이 바로 3당 원내대표를 만나 논의를 시작했기 때문에 첫 술에 배부를 순 없지만 저는 쉽게 될 수 있다고 본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박근혜 대통령이 이날 정세균 국회의장과의 회담에서 언급한 ‘내각 통할권’ 범위에 대해 “국무총리가 내각 제청권도 있고 해임건의도 있다. 그 부분은 헌법에도 나와 있다”며 “그러나 지금까지 대통령제 실시 이후로 그것이 그대로 시행되는 것을 본 적도 없고, 거의 시행이 안됐기 때문에 단정적으로 얘기하는 어렵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헌법에 나와 있는 대로 정신을 잘 살리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야당은 박 대통령이 이날 정 의장과의 회동에서 “총리가 내각 통할하도록 할 것”이라고 언급한 것과 관련 실제로 내각구성권한을 전폭적으로 총리에게 위임하는 것인지에 대해 정확한 확인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이 대표는 야당의 박근혜 대통령의 2선 후퇴 주장에 대해 ‘박 대통령이 ‘2선 후퇴’를 공식 선언하는 것은 불필요하다는 입장을 보였다. 이 대표는 박 대통령이 야당이 강하게 주장하고 있는 2선 후퇴를 공식화할 수 있느냐는 질문에 “사랑이 뭐냐 하는 것처럼 용어 규정이 어렵다”며 “헌법이나 법률 어디에 규정된 용어는 아니지만 그(2선 후퇴) 의미를 이미 많이 알고 있는 거 아니냐”고 밝혔다. 그는 이어 “거국내각 구성이나 책임총리에 행정권을 부여한다는 선언 속에 그 뜻이 담겨있다고 본다”며 “대통령의 확고한 신념을 신임 총리나 여야가 그 기준만 가지고 있다면 국정운영을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박 대통령이 공식 언급은 안했지만 여야 합의추천 총리를 제안한 것만으로도 ‘2선 후퇴’로 해석할 수 있다는 여지를 남긴 발언이라는 해석이다.
이 대표의 이날 발언은 야당이 실질적인 거국내각 구성이 가능하려면 박 대통령이 선언적으로라도 2선 후퇴 의지를 공식적으로 밝혀야 한다는 주장하는 데 대한 반박성으로도 읽힌다. 박지원 비상대책위원장 겸 원내대표는 이날 국회에서 기자간담회를 갖고 “대통령 자신이 어떻게 할 것이냐의 문제에 대해선 아무런 언급이 없었다”면서 “지금 성난 민심은 대통령의 하야, 탄핵, 2선 후퇴를 이야기하는 데 국회에서 총리를 추천만 하면 그 총리가 무엇을 하겠느냐”라고 지적했다.
당내 비박계로부터 사퇴압박이 거세지는 것과 관련 이 대표는 “정부에만 책임총리가 필요한 게 아니라 당에도 책임대표가 필요하다”며 물러날 뜻이 없음을 거듭 밝혔다.
개헌에 대한 소신도 밝혔다. 그는 “평소 4년 중임제 개헌이 소신이었는데 (이번 최순실 사태로) 이 생각에 변화가 생겼다”며 “개인적인 의견은 분권형내각제가 바람직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개인적인 의견을 전제로 깔았지만, 집권 여당의 당 대표가 개헌 방향을 꺼냈다는 점에서 개헌 정국이 도래하면 상당한 변수가 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이 대표는 “이 일(‘최순실 사태’)이 있기 전까지 4년 중임제 대통령제로 가야 한다고 예외없이 말 해왔다”며 “그러나 지금은 분권형 개헌이 제 생각”이라고 말했다. 그는 “87년 헌법체제 이후 대통령제가 유지되오면서 6명의 대통령이 ‘이렇게 판박이 일 수 있나’ 싶을 정도 친인척과 측근들의 권력비리로 똑같이 어려움을 겪었고, 그로 인해 국정이 표류하고 대통령의 권위와 실적이 와르르 무너지고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이 다 받는다”며 “근본적인 답을 찾아야 하는데 분권형 개헌이 답이 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국회의원 300명중 203명이 개헌요구에 서명하고 있다”며 “어느 시점이 되면 다시 (개헌의 동력이 살아날) 기회가 있지 않겠나 싶다”고 말했다.
이 대표는 또 박 대통령이 여야추천 총리후보를 언급한 것이 김병준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지명철회라고 볼 수 있느냐는 질문에 “철회다, 철회가 아니다라는 단어로 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면서도 “대통령이 국회에 (새 총리 후보를) 추천을 해달라고 했다는 것 자체가 철회라는 명시적인 표현은 안썼지만 제로베이스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청와대는 김 후보자에 대한 지명철회를 공식 언급하고 있지 않지만, 이 대표는 사실상 김 후보자에 대한 지명철회라고 해석했다. 이 대표는 동교동계 인사로 김대중 정부에서 문화관광부 장관을 지낸 김성재 김대중아카데미 원장을 총리 후보군으로 접촉했다는 야권의 주장에 대해 “주변에서 여러 사람이 고견을 전해오고, 제가 직접 여쭤보기도 한다”며 “내가 (총리를) 임명하는 사람도 아닌데, 사담이나 덕담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고 일축했다.
/김홍길기자 what@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