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물단지로 전락한 '현장실습제도'

기업은 규모 줄이는데 갑질업체 늘어 대학·학생 원성 커져

# 국내 모 기업은 현장실습생 채용 규모를 크게 줄였다. 정부가 올해부터 사실상 현장실습생 최저임금 지급을 의무화하면서 비용 부담이 커졌기 때문이다. 이와 함께 실습생들의 업무 효율이 떨어지는 것도 주요 원인이다.

# 서울의 모 대학은 정부의 대학평가항목 중 주요지표인 현장실습생 수가 줄어 걱정이다. 채용인원 감소가 원인이지만 일부 인기가 높은 기업 중심으로 학생들이 몰려 전공과 적성을 고려한 파견이 쉽지 않고 일부 고용주의 ‘갑질’로 학생들이 피해를 보는 사례도 꾸준히 발생하고 있어서다.

대학과 산업 현장의 거리를 좁히고 취업난 해소에 이바지할 것으로 기대를 받았던 현장실습제도가 ‘애물단지’로 전락하고 있다.

최저임금 지급 사실상 의무화

“실습생 관리 시간·비용 더 든다”

기업·기관 참여율 현저히 줄어



9일 업계와 대학가 등에 따르면 현장실습제도에 대한 원성의 목소리가 갈수록 높아지고 있다. ‘고용률 70% 로드맵’의 핵심과제 중 하나로 도입된 현장실습제도는 대학생들이 기업이나 공공기관 등에서 실무 경험을 쌓으면서 3∼15학점을 인정받는 프로그램이다. 기업이나 기관 입장에서는 값싼 노동력을 활용해 인재를 키울 수 있고 학생들로서는 실무 경험을 쌓으며 학점 취득이 가능해 기대가 컸다.


하지만 최근 참여기업과 기관이 현저히 줄었다. 지난 3월 교육부가 현장실습 운영 지침을 발표하면서 최저임금 지급을 사실상 의무화한 결과다. 올해 최저임금은 시간당 6,030원. 결국 비용과 관리 리스크까지 감수하면 안전하게 비정규직 임시채용을 하는 게 차라리 낫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 다만 현장실습의 목적이 교육용일 경우 대학과의 협의에 따라 최저임금을 주지 않아도 되는 예외 규정이 있다. 한 스크린골프 업체 대표는 “실습생으로 온 학생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아 이들을 관리하는 데 시간과 비용이 오히려 더 들었다”며 “투자비용이 적지 않은데 임금까지 모두 지급하라고 해 앞으로는 참여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생들은 대기업 중심 몰리고

고용주 갑질에 수당 못받는 일도

대학들은 숫자 유지에 목매

“내실 다지기 나설때” 목소리



대학도 고민이 많다. 정부의 각종 대학 재정지원사업 평가항목에는 대부분 ‘현장실습생 수’가 포함돼 있다. 기업이 규모를 줄이더라도 평가를 좋게 받으려면 파견학생 수를 최소한 유지라도 해야 할 판이다. 서울의 한 대학 관계자는 “정부의 대학 평가에 목매는 일부 대학에서는 기업의 실습생 교육 준비 상황과 관계없이 무조건 학생을 교육용으로라도 보내자는 분위기도 있다”고 전했다.

또 인기가 높은 대기업 중심으로 학생들이 몰리는데다 일부 기업의 경우 고용주의 갑질로 수당이나 학점을 제대로 받지 못하는 일들도 늘고 있다.

이정미 정의당 의원실에 따르면 2015년 동·하계 방학기간 현장실습에 참여한 15만3,313명의 학생 가운데 26%만 기업으로부터 실습지원비를 받았다. 즉 4명 중 1명 정도만 소액의 실습비를 받고 노동력을 착취당한 셈이다. 전문가들은 그동안 현장실습제도가 양적 팽창에 주력해왔다면 이제는 내실을 다질 때라고 지적했다.

김우승 전 산학협력학회장은 “대학이 너나 할 것 없이 정부정책에 보조를 맞추며 현장실습생 수를 맹목적으로 늘리는 관행에서 벗어나 우수한 기업 섭외에 적극 나서야 한다”며 “기업 역시 원하는 학생 조건과 교육 커리큘럼을 사전에 제시하고 이에 부합하는 실습생에게는 합리적인 보상을 해주는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박진용기자 yongs@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