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2,000년도 더 된 작품에서 우리는 인간의 과욕과 자만이 불러온 지구 온난화, 이기심이 초래한 분쟁 등 현재의 인류가 겪고 있는 문제들의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유럽 최고(最古)의 문학 작품이자 유럽 문학의 효시로 일컬어지는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 서구에서 문자로 기록된 최초의 문학 작품이자, 그리스 문화의 원형이며 서양 정신의 출발점으로 여겨지는 두 작품은 과거에 새겨진 단순한 글자가 아닌 현재 우리 삶 속에서 인간에 대한 통찰을 가능하게 해 주는 역할을 지금도 해주고 있다.
독일 뮌헨 바이에른 주립도서관 밖에 세워진 호메로스 조각상./사진제공=세종서적
옥스퍼드 대학 보들리 도서관에 보관 중인 파피루스. 호메로스의 ‘일리아스’ 구절이 기록돼 있다./사진제공=세종서적
‘지금, 호메로스를 읽어야 하는 이유’는 영국의 대표적인 작가이자 영국왕립문학협회 특별회원인 애덤 니컬슨이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의 현대적 가치를 환기해주는 책이다. 다시 말해 운명이 우리 인생에서 어떻게 작용하는지, 얼마나 냉혹한지, 인간다움이란 어떤 것이고, 그것은 또 얼마나 나약한 것인지 등에 말하는 두 서사시의 저자 호메로스가 왜 ‘지금’도 중요한 것인지에 대해 질문을 던지는 인문서다.
사실 호메로스에 대해 알려진 바는 거의 없다. 실존 여부조차도 확증되지 않았다. 심지어 두 작품의 작가가 동일인인지조차 의문시하는 이들도 있다. 저자 역시 이런 의문들을 반영해 호메로스에 관한 일치하지 않는 의견들이 얼마나 많은지, 기원전 2세기경 서사시의 번역과 보전을 맡은 알렉산드리아의 학자들에 의해서 호메로스가 어떻게 편집되고 변형됐는지를 다양한 역사기록들을 제시하면서 생생하게 보여준다. 호메로스가 젊은 여자였고, 맹인이었다는 흥미로운 주장에도 관심을 나타낸다. “호메르스가 태어난 장소, 부모, 인생 이야기, 연애, 심지어 그가 실제로 존재했는지의 여부 등 호메로스에 관한 이야기라면 신뢰할 만한 게 하나도 없다”는 것이 저자의 주장이다.
‘일리아스’와 ‘오디세이아’는 기원전 8세기 전후에 창작됐다고 보는 시각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저자는 호메로스 서사시에 들어 있는 다양한 언어의 흔적들과 고고학적 증거를 들어, 호메로스의 기원은 그보다 훨씬 더 거대하고 근본적인 변화가 있었던 기원전 2,000년 전후 수세기에 걸쳐 생겨난 것이라고 주장한다.
호메로스에 대해 잘못 알려진 이야기들을 수정하고 반박하지만, 저자가 정작 하고 싶은 말은 ‘4.000년도 더 된 호메로스의 작품이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은 무엇일까’이다.
인간의 추악함과 이기적인 속성마저 지나치게 사실적으로 묘사했다는 이유로 플라톤이 ‘일리아스’를 청소년들이 읽어서는 안 될 작품으로 분류하기도 했다고 전해지지만, 저자는 호메로스의 작품이 아직도 우리의 마음을 사로잡는 힘은 바로 플라톤이 반대한 바로 그 이유라고 강조한다. 미화와 왜곡이 아닌 인간 모습 그대로를 묘사한 호메로스의 글을 통해 4,000년이란 시간을 뛰어 인간의 모습을 발견하고, 그 속에서 더 나아지려는 노력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저자는 말한다. “호메로스의 위대함은 감춰진 생생함을 폭로함에, 삶의 정수를 분명하게 드러냈음에 있다. 호메로스는 그리스인이 아니다. 그는 세계 속에서 반짝거리는 빛”이라고. 1만9,500원
/박성규기자 exculpate2@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