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큐3일’ 울진 비행훈련원 72시간…‘날아올라, 세상 위로’
13일 방송된 KBS2 ‘다큐멘터리 3일’에서는 ‘날아올라, 세상 위로’ 편으로 울진 비행훈련원의 72시간이 전파를 탔다.
■ 비행 초보자에게도 하늘길이 열리다
항공수요가 세계적으로 증가함에 따라 우리나라에도 승객과 화물의 안전을 책임질 국내 조종사가 더 필요해졌다. 국책사업의 일환으로 울진 공항이 비행훈련원으로 개조되면서 기존 항공대 출신 학생들 외에 일반인들에게도 ‘조종사’를 꿈꿀 기회가 넓어졌다.
출신 환경이 각기 다른 사람들이 모인 군대처럼, 비행의 꿈이라는 공통된 목표를 가진 울진 비행훈련원의 학생들은 서로 다른 사연을 갖고 이 곳에 입과했다. 연기를 전공했던 조동현씨, 부상 후 새로운 길을 찾은 전직 축구선수 박상길 씨, 어렸을 때부터 막연히 조종사를 꿈꾸다 항공법의 시력 기준이 완화돼 남성사회인 이 길에 도전하게 된 선택한 이재연씨, 아내, 아이들과 떨어져 뒤늦게나마 비행길에 오른 김용희씨.. 각자 출발점은 달랐지만 그들은 모두 비행훈련원에서 제 2의 꿈을 펼치고 있다.
■ 300여 명의 학생들이 비행기를 타는 이유
고개를 들어 올려다보던 해와 달에 가까워지고 싶다는 열망, 자연과 동등해지고 싶은 인간의 원초적인 욕구는 이제 공기 위에 길을 놓기로 방향을 바꾸었다. 관제사들이 신호를 주고, 안전한 조종을 위한 비행술이 마련돼 있지만, 중력을 거슬러 교묘히 공기 위에 실려야 하는 비행이 쉬울 리 없다. 그럼에도 274명의 학생들이 일주일에 두 세 번 씩 하늘에 다가가는 것은 마음 속 깊이 심어두었던 꿈 때문이다. 조금 더 편안한 직장과 익숙함이라는 안정적인 길을 제쳐두고, 지금까지는 연고가 없던 하늘에 뜻을 두는 이들, 안전한 비행을 위해 항공술로 무장하는 훈련생들은 하늘의 어떤 매력에 빠진 것일까.
“제 꿈을 이제야 좀 찾은 것 같아요. 그 전에는 연기도 제 꿈이긴 했는데, 연기로는 저를 찾고 싶었거든요. 10년 하고 나니까 1차적인 목표는 이룬 것 같더라고요. 연기라는 분야에만 갇혀 있었던 것 같기도 해서 뭘 해야 할까 고민했어요. 아직은 현실과 타협하기에는 조금은 여유가 있지 않을까 하는 제 개인적인 판단 때문에 이 길에 도전하게 됐어요. 일단 이 과정들이 재밌다고 느껴지는 것 자체가, 제가 선택을 잘 했다는 것을 반증을 한다고 생각해요.
- 조동현, 27세
“파일럿이라는 직업을 꿈으로만 갖고 있다가 아무렇지 않게 대학교 졸업하고 회사 들어가서 일하다보니까 정말 너무 하고 싶더라고요 그래서 정말 큰 결심하고 이 곳을 알게 돼서 입과하게 되었습니다”
- 장재영, 31세
■ 빠듯한 비행 인생
훈련원 비행장의 활주로는 아침 7시부터 분주하다. 일주일에 2-3번의 비행 일정을 소화하는 학생들은 비행 전에 미리 비행기 몸체나 양 날개에 실린 기름 양 등을 점검한다. 비행 8시간 전 음주는 금물, 컨디션에 따라 비행이 취소될 수도 있으니 몸 관리에도 철저해야 한다. 비행 후에는 한 시간 가량 교관과의 면담을 통해 오늘의 비행을 평가하는 시간을 갖는다.
비행실습 외에도 지상학술 수업을 받아야 하기 때문에, 비행과 지상수업을 동시에 받는 학생들의 스케줄은 특히 빡빡하다. 조종사가 되기 위한 첫 번째 수업과정인 ‘자가용 과정’ 때는 수업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되고, 이론과 실습이 병행되는 계기용 수업 과정 때도 이론을 실제에 적용시키기 위한 노력이 이어진다. 특히 항공 쪽에 처음 발 들인 신규 과정 학생들은 경력자들의 실력을 따라가기 위해 늘 고군분투한다. 기숙사 방을 같이 쓰는 친구나 입과 동기들에게 모르는 것을 질문하거나, 같이 모여 앉아 간식을 먹는 게 그들에게 허용된 쉬는시간이다.
“(전공자들이) 4년 동안 배워온 것을 저희는 1-2년 안에 마스터해야 하기 때문에 학생 때는 정말 잠도 줄여가면서 열심히 공부했었어요. 모르는 게 있으면 전공자들한테 물어보거나 찾아보려고 노력을 하고. 부끄럽고 싶지가 않았어요. 어차피 같은 길을 가야될 사람인데, 전공자건 비전공자 출신이건”
- 오태균 교관, 32
“지상에서 얼마나 공부를 잘 하고 아무리 높은 위치에 있다 하더라도 비행 올라오는 순간엔 다 동등해요 순수히 노력을 하고 더 공부한 사람만이 발전할 수 있는 거라서 당연히 그것에 대한 괴리감 때문에 실망을 하는 거에요. 그런 것 때문에 지금부터 아 나는 비행할 재원이 아닌가 보다라고 생각할 것은 없지요. 아직 창창한데요”
- 문강식 교관, 36세
■ 조종사로 가는 첫 관문, 솔로 비행
오롯이 혼자서 기류를 맞닥뜨려야 하는 순간이 다가온다. 상공 위의 파트너 교관님도 옆좌석에 없는 상황, 관제사의 통신용어와 관제탑에서 바라볼 교관은 멀게 느껴질 뿐이다. 바로 솔로 비행을 앞둔 훈련생의 심정. 시험 담당 교관이 이륙부터 착륙, 간단한 기동까지 조종의 기본적인 역량이 갖춰졌다고 판단하면, 훈련생에게는 솔로 비행의 기회가 주어진다. 혼자서 비행기 몸체를 책임져야 하는 솔로 비행에는 자신의 기량은 물론 목숨까지 내걸려 있다. 자신과 싸우며 바람을 가르고 끝도 길도 보이지 않는 공중에서 상하, 좌우, 수평을 맞춰가며 비행기와 한 몸이 되다 보면 활주로가 시야에 보인다.
두려움을 이겨낸 훈련생에게는 물벼락이 떨어진다. 세계적 관행인 물 세레머니는 조종사가 되는 첫 걸음을 뗐음을 축하하는 의미다. 선배, 동기, 교관들이 물동이로 끼얹은 물을 온 몸에 적시고도 훈련생이 마냥 웃는 것은 이젠 조종사로서의 자신감을 온 몸으로 느껴서다.
“지금 생각해 보면 솔로 비행 때가 제일 생각이 많이 나요. 왜냐면 교관 없이 저 혼자 비행을 해야 되고 무슨 일이 생기면 이제 옆에 사람 없이 저 혼자 다 해결을 해야 되는 상황이 다가올 테고 그 순간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아요”
- 이동환, 30세
■ 상공 위의 조력자, 비행 교관
상하좌우로 흔들리는 비행기 안, 왼쪽 조종석에 앉은 훈련생의 유일한 버팀목은 오른편에서 상황에 맞춰 지시해주는 교관 뿐이다. 한 때는 왼편에 앉아 손을 떨었을 교관 역시 이 곳 훈련원 출신이다. 비행기 안에서는 물론, 비행 후에도 ‘브리핑실’에서 한 두 시간 가량 펼쳤던 비행 곡예를 조목조목 평가하고, 학생이 내렸던 판단에 영향을 주었을 비행지식들은 물론, 비행할 때의 마음가짐까지 교정해준다.
저가항공에서는 비행시간 300시간으로도 조종사의 길을 밟을 수 있지만, 훈련원생 대부분이 목표로 하는 메이저항공사에서는 많게는 1500시간의 비행시간을 요구한다. 자가용-계기용-사업용 과정을 거쳐 수료한 학생들도 이 곳을 떠나지 않는 이유. 타임 빌드-업 과정으로 교육비를 더 내고 비행기를 타거나, 항공사에 취업해 미국 조종훈련을 받는 경우, 그 나머지는 훈련원의 교관으로 채용돼 학생들을 가르치며 남는 시간에 비행을 하는 과정이다.
“어제보다 오늘, 오늘보다 내일 비행하는 데 있어서 목표한 것을 조금이라도 이루면 그런 것 볼 때 가장 좋고요. 단순히 가르치는 것이 전부가 아닌 거 같아요 교관이라는 게 가르치기 위해서 더 많이 공부를 하고요 가르치면서도 공부하고 가르치고 나서도 학생들한테 배우는 점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이 듭니다”
- 이강수, 31세
■ 항공사와의 연결고리, 채용 면접
비행 시험 외에도 각 강의마다 시험을 치르지만, 학생들의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건 물론 ‘항공사 채용 면접’시험이다. 해마다 양해각서를 체결한 몇몇 항공사의 2차 시험 대상자를 뽑는 과정이 훈련원 내에서 자체평가로 치러진다. 구술면접, 영어듣기, 시뮬레이터(모의 비행 장치)로 구성된 시험에 다년 간 갈고 닦았던 항공 관련 지식과 인성, 비행 실력을 모두 녹여내야 한다.
“어차피 이 조종사의 길로 들어선 이상 저는 끝까지 평가는 계속 돼야 한다고 생각해요. 저희 교수님들도 항상 그러셨거든요. 조종사는 항상 최신의 자료를 갖고 공부해야 한다. 라인(항공사) 입사를 해도 체크나 이런 것들이 계속 있으니까 들어갔다고 끝나는 게 아니거든요. 여기 들어온 이상 공부는 계속 해야 될 것 같아요. 그래서 뭐 부담 되도 즐겨야죠.”
- 김용희씨, 34세
■ 끝이자 또다른 시작, 수료식
자가용-계기용-사업용 과정을 마치고 나면, 어느덧 수료식이 다가온다. 지금까지 봐왔던 전공서적들, 같이 하늘길을 향해 가던 동기들과의 추억과 이별해야 할 시간이지만, 항공사로 가거나 취업의 문을 두드릴 학생들에게 또다른 터닝포인트가 기다리고 있다. 항공기의 조종석에 앉아 오늘의 날씨로 시작하는 기장 멘트를 날릴 그 날을 위해, 훈련생들의 비상은 계속 된다.
“다 잘 되어서 공항에서 만나면 되니까. 언제가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다 만날 거에요. 다 잘 하니까”
- 백주환, 35세
[사진=KBS 제공]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