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와치] 新소비권력 '밀레니얼 세대' 판을 흔들다

전세계 25억명...소비시장 30% 차지
스마트폰·SNS 무장 '똑똑한 소비자'
일방 주입 등 전통적 마케팅 안 통해
글로벌 기업들 디지털 홍보에 열 올려
보수적 명품·미술품 경매시장도 변화

# 미국의 유명 화장품 브랜드 커버걸은 지난 8일 브랜드 역사상 최초로 히잡을 쓴 무슬림 여성을 홍보 모델로 발탁했다. 순식간에 화제의 인물이 된 뷰티 블로거 누라 아피아(24)는 21만5,000명의 애청자를 둔 유튜브 스타다. 아피아는 “히잡을 쓴 여성으로 자라면서 무슬림 여성이 이렇게 큰 광고에 등장할 수 있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며 “무슬림 소녀들이 스스로를 자랑스러운 존재로 여기기를 바란다”고 소감을 전했다.

일각에서는 커버걸의 깜짝 발표가 미국·유럽 모델 중심의 관행을 깨뜨린 신선하고도 훈훈한 시도였다고 평가한다. 하지만 상당수 전문가들은 커버걸의 결정이 무서운 소비권력으로 급부상한 무슬림 ‘밀레니얼 세대’를 겨냥한 아주 노골적인 마케팅의 일환이라고 단언한다. 오는 2020년 2조6,000억달러(약 3,036조원)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는 무슬림 생활시장에서 패션·뷰티·여행 등을 주도할 20~30대 젊은 무슬림 여성에게 적극적인 구애를 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 최근 일본에서는 가상연애 사업이 호황을 이루고 있다. 가상연애는 온라인·비디오게임에 나오는 캐릭터와 ‘사랑해’ 등의 애정표현을 문자 메시지로 주고받고 가상현실(VR) 기기로 성적 욕구를 충족하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대표적인 일본의 가상연애 게임 전문기업 볼티지는 지난해 6월부터 1년간 약 1,200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전 세계에서 5,000만명이 볼티지 게임을 내려받았을 정도다. 스마트폰과 VR 기기의 발달로 일본 가상연애 산업은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이 같은 현상의 원인을 미국 CNN과 영국 가디언은 일본 밀레니얼 세대에서 찾았다. 18~34세인 일본 미혼남녀의 40% 이상은 성경험이 전무하고 남성의 70%, 여성의 60%가 교제 대상이 없을 정도로 일본의 젊은 남녀가 현실에서 연인을 찾는 것을 포기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다. 일각에서는 가상연애를 “성 개념을 무너뜨리고 사회관계를 단절시키는 사업”이라고 비판하지만 일본 게임업계는 “혼자 사는 이를 위로해줄 무해한 대안”이라고 주장하며 신상품 출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를 잡기 위한 글로벌 기업들의 노력이 더욱 치열해지고 있다. 역사상 가장 크고 강력한 소비세대로 평가받는 밀레니얼 세대의 공감을 이끌어낼 상품 개발과 마케팅 마련에 열을 올리는 모습이다. 이미 밀레니얼 세대를 사로잡아 시장의 승자로 자리매김한 애플·페이스북·아마존 등의 뒤를 이어 매우 보수적이던 명품업계 및 경매업계까지도 빠르게 변화하고 있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 ‘온라인 홈페이지’ 오픈 등에 초점을 맞추던 1차원적 대응방식에서 벗어나 진지하게 밀레니얼 세대를 분석하는 데 역량을 쏟고 있다.

밀레니얼 세대는 통상 1980년대 초반부터 2000년대 초반에 출생한 세대를 일컬으며 숫자는 현재 전 세계적으로 25억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전 세계 소비시장의 30%가량을 차지하며 이들의 연간 지출액만도 2조4,000억달러(약 2,807조원) 이상으로 파악된다.


글로벌 기업들이 밀레니얼 세대에 주목하는 더 큰 이유는 이들이 스마트폰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로 무장하고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는 데 주저하지 않기 때문이다. 실시간으로 공유되는 정보를 빠르게 습득하고 상품뿐 아니라 기업 철학까지도 평가한다. 기업 광고나 전문가의 권위보다는 직간접적 경험에 의한 가치판단으로 구매 결정을 내린다. 과장광고나 일방적 주입에 따른 전통적 마케팅은 더 이상 밀레니얼 세대에게 ‘진정성’을 얻을 수 없게 됐다. 국내 패션 대기업의 한 관계자는 “밀레니얼 세대의 파워는 그들의 입김이 작용하는 부모 세대와 결합할 때 무시무시한 수준으로 커진다”며 “기업들은 똑똑한 소비자이자 1인 미디어이자 부모의 지갑을 공유하는 역사상 존재하지 않았던 까다로운 고객을 상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명품 브랜드 중 밀레니얼 세대 공략에 가장 먼저 앞장선 버버리의 경우 이미 10년 전인 2006년 ‘풀리디지털(fully digital)’ 기업으로의 변신을 시작했다. 디지털에 대한 인식이 더딘 다른 명품 브랜드와 달리 2009년 자체 소셜미디어 플랫폼을 구축하는가 하면 2014년 말에는 모바일사이트를 대대적으로 업그레이드해 모바일 매출을 크게 확대했다. 특히 지난 9월 ‘런웨이 제품 즉시판매 제도’를 도입해 전 세계를 깜짝 놀라게 했다. 런웨이 장면을 전 세계에 실시간 중계하고 여기서 공개한 제품을 곧바로 매장에 비치해 즉각적인 만남과 구매를 원하는 고객 수요를 겨냥한 것이다. 통상 런웨이 제품을 5~6개월 후 매장에서 판매하던 패션업계의 관행을 감안하면 파격적인 시도였다. 업계 관계자는 “버버리는 스냅챗·위챗·인스타그램·카카오톡 등 밀레니얼 세대의 소통창구를 선점해 디지털을 표방하는 명품 브랜드 중 단연 선두 자리에 올랐다”며 “버버리뿐 아니라 루이비통·구찌·생로랑·롱샴 등 다양한 명품 브랜드들이 고객에게 최상의 편의를 제공하는 방식으로 디지털을 활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명품업계 못지않게 보수적이던 전통 경매시장도 변화의 움직임이 거세다. 소더비·크리스티 등이 장악하던 전통 오프라인 경매시장이 매출부진을 겪고 온라인 경매시장이 떠오르면서 온라인 경매업체 등장과 투자가 봇물을 이루고 있다. 에릭 슈밋, 피터 틸 등 세계적 부호들은 온라인 미술품 경매 플랫폼인 ‘아트시’에 수백만달러를 투자했고 세계 최고의 부자 화가라는 평가를 받는 데미안 허스트도 온라인 경매업체 ‘패들에이트’에 무려 3,400만달러를 투자했다. 온라인 유통공룡인 아마존도 최근 미국 내 갤러리 150여곳과 협약을 맺고 ‘아마존아트’ 서비스를 선보였다. 이밖에 기득권이 가득한 큐레이터 영역에서도 SNS 인플루언스들이 등장해 한류 열풍의 주역인 빅뱅 멤버 탑이 소더비홍콩 특별경매에 큐레이터로 참여해 193억원에 달하는 판매기록을 세웠다. 이에 대해 CNN은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도 인기가 높은 빅뱅과 탑에 힘입은 결과”라며 “그의 참여로 탑의 580만 인스타그램 팬들을 비롯해 젊은층에게 예술이 알려지는 계기가 됐다”고 평가했다.

국내 기업들의 경우 ‘소통’ ‘공감’ ‘진정성’ 등의 키워드에 주목하며 밀레니얼 세대에게 자사 브랜드를 ‘갖고 싶은 브랜드’로 어필하고 있다. 더 이상 자화자찬식의 전통적 마케팅이 통하지 않는다는 점을 깨닫고 다양한 플랫폼을 통해 기업의 가치와 철학을 스토리텔링 형식으로 풀어내고 있다.

대표적으로 블랙야크는 저성장 시대의 소비 트렌드 변화 대응을 최우선 마케팅 전략으로 삼는다. 개연성이 떨어지는 단편적인 콘텐츠보다 공감을 얻을 수 있는 콘텐츠를 생성해 온오프라인 등 다양한 채널에서 브랜드 철학을 알리고 있다. 블랙야크가 지난해부터 이어온 토크콘서트 ‘세상은 문밖에 있다’는 나이와 상관없이 취향 공동체들이 모여 자유로운 대화를 나누는 캠페인으로 비슷한 문화를 항유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아웃도어 정신이나 크루(crew) 문화를 느낄 수 있게 했다. 최근 블랙야크가 국내 론칭한 포틀랜드 브랜드 나우 역시 ‘지속 가능성’을 브랜드 철학으로 삼고 재활용 소재 사용, 자선활동, 인권 등에 공감하는 소비자들을 자연스럽게 끌어들이고 있다.

이밖에 밀레니얼 세대를 세분화해 개개인의 소비 취향에 주목한 ‘타깃형’ 마케팅도 잇따르고 있다. 인터넷쇼핑몰 옥션은 혼자만의 소비생활을 즐기는 ‘1코노미족’을 겨냥해 신규 브랜드 캠페인 ‘혼자가 더 좋을 땐, 어서옥션!’을 전개하고 있다. 혼자 떠나는 여행부터 △혼자 즐기는 문화 △혼자 먹는 밥과 술 △혼자 하는 노래·취미 등 총 네 가지 테마 프로모션을 순차적으로 선보이고 관련 제품을 특가 판매한다. 스타벅스코리아의 경우 밀레니얼 세대 중 프리미엄 커피에 열광하는 수요가 많다고 판단해 프리미엄 매장인 ‘리저브’와 ‘커피포워드’를 선보였다. 최상급 원두뿐 아니라 원두 추출방법까지 취향에 따라 선택할 수 있게 해 ‘나만의 커피’를 즐기는 이들을 공략하는 것이다.

/신희철기자 hcsh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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