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일 첫 방송된 ‘일밤 -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1991년부터 1992년까지 방송된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와 2005년부터 2007년까지 이경규가 다시 한 번 부활시킨 ‘돌아온 몰래카메라’의 맥을 잇는 새로운 몰카 프로그램이다.
하지만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시작부터 큰 불안요소를 안고 있었다. 바로 ‘몰래카메라’의 거장 이경규가 없는 몰카 프로그램이라는 점이다. 이경규는 2016년 설 연휴 파일럿으로 방송된 ‘몰카 배틀 : 왕좌의 게임’에는 직접 참여했지만, 정작 정식편성된 ‘은밀하게 위대하게’에는 합류하지 않으면서 사상 처음으로 이경규 없는 몰카 프로그램이 탄생하게 됐다.
MBC ‘일밤 - 은밀하게 위대하게’ AOA 설현과 이적의 몰래카메라 / 사진 : MBC ‘은밀하게 위대하게’ 방송화면 캡처
이경규 없는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이끌게 된 파일럿은 윤종신과 이수근을 비롯해 김희철, 존박, 이국주 등 다섯 명. 이들은 매 주 두 팀으로 나누어 각각 두 명의 연예인에게 몰카를 시도하게 된다. 4일 방송된 첫 회에서는 AOA 지민과 초아의 의뢰로 AOA 설현에게 찜질방 몰카를, 다비치 강민경의 의뢰로 이적에 대한 몰카를 진행했다.
꾸준한 인기를 얻고 있던 ‘진짜 사나이’를 종영시키는 강수까지 보이며 선보인 새로운 몰카 프로그램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제목에서부터 남다른 자신감을 보였다. 하지만 막상 뚜껑을 연 ‘은밀하게 위대하게’는 제목처럼 ‘은밀’하지도 못했고, ‘위대’하지도 못했다.
AOA 설현에 대한 몰카는 평소 운세보기를 좋아하는 설현에게 타로 카드로 불길한 점괘를 준 후 찜질방에서 날계란 벼락을 밪게 하고, 눈앞에서 사람이 넘어지고, 조그만 화재사고가 나는 설정이었다. 하지만 설현은 이미 첫 번째 단계인 날계란에서부터 몰카를 의심하기 시작했고, 이어지는 사건들 역시 몰카 특유의 재미를 주기에는 역부족이었다.
이는 AOA 설현보다 더욱 본격적으로 준비한 이적의 몰카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윤종신과 존박은 비틀스 마니아인 이적의 취향을 이용해 11월 내한 공연을 가진 비틀스의 링고 스타와 이적이 술자리에서 만나게 하는 몰카를 준비했다. 이적은 처음에는 링고 스타를 눈앞에서 본 감격에 어쩔 줄 몰라 했지만, 잠시 후에는 “가만 보니 SNL에 나오는 재연배우 같다”며 가짜 링고 스타의 존재를 눈치채버렸다.
‘은밀하게 위대하게’가 이처럼 몰카 프로그램이 새로 생겼다는 정보도 없던 첫 회부터 연이어 몰카가 들통 난 이유는 명백했다. 이경규의 몰래카메라처럼 치밀하고 그럴싸하게 속이기보다 간단한 상황 설정만 던져놓고 몰카라고 우기는 오래된 방식이 시청자들은 물론 몰카의 당사자들에게도 구태의연했다는 것이다.
더욱 심각한 문제는 몰카에 대해 당사자들이 의심을 시작할 때 이에 대처할 수 있는 새로운 플랜이 전혀 없었다는 점이다. 윤종신은 이적이 가짜 링고 스타의 정체를 의심하자 작가들에게 좋은 방법이 없겠냐고 황급히 물었고, AOA 설현의 경우 설현이 의심을 하자 같은 AOA 멤버들에게 표정관리를 하라는 것 외에는 딱히 대처방법이 없었다. 치밀함이 부족해 당사자도 속지 않는 몰래카메라에 시청자들이 보고 즐길 수 있을까?
몰래카메라는 그동안 흥행에서 패배해본 적이 없는 만능 아이템이지만, 몰카가 만능 아이템으로 위력을 발휘한 것은 벌써 최소 10년 전의 일이다. 그러나 ‘일밤’은 이 지난 10년에 대한 새로운 고민 없이 그저 단순히 황당한 상황들로 속이면 몰카가 완성된다는 거대한 착각을 ‘은밀하게 위대하게’를 통해 선보였다. 그래도 아직은 초반이니 제작진이 좀 더 몰카의 진화에 대해 고민할 여유가 있다는 것에 일각의 희망을 걸어본다.
/원호성기자 sestar@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