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일 방송된 KBS2 ‘다큐멘터리 3일’에서는 ‘서울, 2016년 겨울 - 서촌 먹자골목 72시간’이 전파를 탔다.
경복궁 옆 서촌의 옛 골목길에 위치한 ‘세종마을 음식문화거리’는 일명 ‘체부동 먹자골목’으로 통칭되는 곳이다.
고궁이 인기를 끌면서 2010년 본격적인 유명세를 치르기 시작했고 새로운 사람들과 가게들이 생겨나기도 했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도 시간을 거슬러 올라간 듯한 한옥과 예스러운 가게들 그리고 오래된 사람들은 아직도 골목 곳곳을 지키고 있다.
서울의 중심지인 청와대 앞 경복궁역에 위치해 촛불시위의 열기 또한 가깝게 느낄 수 있는 서촌에서 어려운 경제와 어수선한 시국 속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저녁이 되면 따뜻한 조명들이 골목을 밝히고 지친 하루를 마친 사람들이 찾아온다.
다양한 음식들 만큼이나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골목을 찾는다. 비가 오는 날이면 체부동에서 모임을 갖는다는 고정환 (62)씨와 친구들. 술잔을 기울일 때마다 퇴근 후 서로의 고민과 걱정을 나누었던 옛날이 떠오른다는 그들은 은퇴한 직장인들이다. 그 시절 추억의 장소에 모여 각자의 고민을 나누며 서로에게 위로를 받는다.
“백세 시대 건강하고 일하고 싶은데 일할 수 없는 현실 아닙니까. 특별한 기술이 없는 한 60대에 할 게 없습니다. 박사님이라도 할 게 없어요. 학력도 필요 없어요. 여기 계신분은 서울대 나와도 별로 할 일이 없어, 불러주는 데가 없어요”
-고정환 (62)
광화문역 앞 호텔에서 근무하는 신유정(28)씨와 친구들 또한 각기 다른 고민으로 서촌을 찾았다. 근처 직장인들의 애환이 담겨있는 이곳은 서울 속 도시인의 해우소이다.
“모든 사람들이 서대문역 쪽에서 광화문역으로 시위를 하러 오는데 저는 다음날 출근을 해야 되니까 시위를 하고 싶어도 어쩔 수 없이 집에 가야 하는 상황이라 혼자 반대로 걸어가잖아요. 우리 대한민국의 현실이 너무 슬퍼서 좀 눈물이 난 것 같아요”
-신유정 (28) / 호텔리어
집회의 열기는 골목으로 이어져 작은 먹자골목을 가득 채우고 삼삼오오 모인 사람들의 이야기도 밤처럼 깊어진다.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사이 온 가족이 함께 집회에 참가했다는 김훈래(37)씨는 어린 두 딸에게 지금의 상황을 설명한다. 어린아이도 국민의 한 사람이라고 이야기하는 그는 눈으로 보는 것이야말로 아이들에게 최고의 교육이라 말한다.
“이 아이도 국민의 일원으로서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우리나라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꼭 같이 보고 동참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김훈래(37)
집회에 처음 참가했다는 서훈(34)씨는 친구 이방수(34)씨와 함께 거리로 나섰다. 촛불을 함께 들고 하나 된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에 감동을 받았다는 그들은 2016년 한 해를 특별한 한 해로 오랫동안 기억할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자식들에게 부끄럽지 않은 한 해였다고 말을 해줄 수 있는 그런 한 해가 됐으면 좋겠습니다”
-서훈(34)
불광역부터 독립문까지 걸어 촛불집회에 참가했다는 김은영(40)씨 가족. 초등학생인 두 아이들의 관심사도 단연 촛불시위라고 이야기한다. 나이에 어울리지 않는 걱정을 가진 아이들을 보면 마음이 아프다고 말하는 김은영 씨는 추운 겨울 속 일상을 보내고 있다.
“저희 아들이 초등학생인데 학교에 가면 대통령 이야기를 많이 한 대요. 그런 이이기를 들으면 마음이 아픈 것 같아요. 많은 어려움 없이 다들 잘 넘어갔으면 좋겠어요”
-김은영(40세)
유난히 추운 2016년 겨울, 따뜻한 봄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서로를 보듬어가며 골목을 지키고 있다. 과일가게 박영모(77세) 할머니도 봄을 기다리는 마음으로 추운 겨울을 나고 있다.
“겨울이 지나고 봄을 기다리는 마음이 있어야 돼. 봄을 기다리고 있잖아. 아무리 추워도 겨울이 안 밉고. 그러고 사는 거지 뭐”
-박영모(77세) / 과일가게
[사진=KBS 제공]
/전종선기자 jjs737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