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또 테러공포] 이슬람 극단주의...난민...혐오...유럽의 치부 드러나다

러에 반감 터키 경찰 출신
“알레포와 시리아 압제 말라”
터키 주재 러 외교관 사살
터키-러 화해무드 흔들어
양국 시리아서 충돌 가능성
獨 베를린 크리스마스 마켓
대형트럭 돌진 59명 사상
佛 ‘니스 테러’ 와 판박이
이슬람 난민 테러 가능성 무게
스위스 이슬람사원서도 총격

안드레이 카를로프 터키 주재 러시아대사가 19일(현지시간) 터키 수도 앙카라의 현대미술관에서 축사하는 도중(왼쪽 사진) 검은 정장을 입은 남성이 뒤에서 그를 향해 권총을 발사했다(왼쪽 두 번째 사진). 범인은 총격 뒤 “누구든 알레포와 시리아의 압제에 관여한 사람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소리쳤다(〃세 번째 사진). 범인은 터키 경찰에게 현장에서 피살될 때까지 권총을 들고 주변을 서성거렸다(오른쪽 사진). /앙카라=AP연합뉴스
19일(현지시간)은 증폭되는 테러 공포, 난민 문제와 이에 대한 혐오범죄 등 유럽 정치·사회의 어두운 민낯이 여과 없이 드러난 하루였다.

터키 수도 앙카라에서는 러시아 외교관이 행사장에서 총격으로 사망하는 충격적인 사건이 일어났고 유럽의 실질적 중심인 독일 베를린에서는 지난 7월 프랑스 니스 테러를 연상시키는 트럭 테러가 발생했다. 같은 날 스위스에서는 이슬람사원을 향한 총격이 벌어졌다. 이날 밤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아랍의 봄 이후 중동국가들의 정국불안과 이슬람 극단주의 세력의 대두, 난민과 그에 따른 혐오 문제의 단면을 그대로 보여줬다.

◇시리아 내전의 혼란, 러 외교관 목숨을 앗아가다=아랍의 봄 이후 중동 정국불안의 핵심으로 꼽히는 시리아 내전의 혼란상은 러시아 외교관의 목숨을 앗아가는 데까지 미쳤다. AP통신에 따르면 19일 터키 수도 앙카라의 현대미술관에서 안드레이 카를로프 터키 주재 러시아대사가 터키 경찰관이 쏜 총에 맞아 사망했다. 그는 총격 직후 “우리는 지하드(성전)를 추구하는 선지자 무함마드의 후예”라며 “누구든 알레포와 시리아의 압제에 관여한 사람은 책임을 지게 될 것”이라고 외쳤다. 바샤르 알아사드 시리아 대통령 정권을 돕고 있는 러시아에 대한 반감이 외교관 테러로 이어진 것이다. 범인은 총격 직후 현장에서 터키 경찰에 피살됐다. 터키 당국은 이번 테러에 배후세력이 있는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테러 소식에 더해 터키중앙은행이 통화정책회의 결과 시장의 예상대로 긴축에 나서지 않고 기준금리와 주요 정책금리를 모두 동결하면서 달러화 대비 터키 리라화 가치는 이날 장중 전날보다 0.23% 하락한 달러당 3.54리라를 기록했다.

포린폴리시(FP)는 이번 테러로 러시아와 터키의 외교관계가 시험대에 올랐다고 분석했다. 앙숙이었던 양국은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 집권 후 친러 전선을 밟으며 밀월 관계로 나아가고 있다는 평가를 받았다. 하지만 시리아 내전에서 러시아는 정부군을, 터키는 반군을 지원하는 방침을 바꾸지 않는 등 크고 작은 마찰은 이어졌다. FP는 러시아가 보복하기 위해 터키에 해킹을 시도할 수 있으며 관계가 악화될 경우 알레포에서 어렵사리 맺은 휴전이 깨지고 양국이 시리아에서 충돌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러시아는 시리아에서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분명히 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대사 살해는 러시아·터키 관계 정상화와 시리아 사태 해결에 차질을 초래하려는 목적의 도발”이라며 “러시아는 이번 테러에 굴복하지 않고 국제 테러리즘과의 전쟁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것”이라고 밝혔다. 터키 정부는 7월 쿠데타의 배후로 지목한 펫훌라흐 귈렌과 이번 사태가 관련이 있다는 설을 흘리며 러시아와의 외교관계 경색으로 치닫지 않도록 선을 긋는 모습이다. 실제로 러시아는 카를로프 대사 피살 사건 수사에 참여하기 위해 자국 조사팀을 터키로 급파했으며 피크리 으시으크 터키 국방장관은 러시아 모스크바에 방문했다.

◇난민과 이슬람 극단주의, 베를린을 덮치다=19일 오후8시께 독일 베를린 빌헬름 황제 기념 교회 주변의 브라이트샤이트 광장으로 대형트럭 한 대가 돌진했다. 이곳은 베를린 관광객들이 주로 찾는 명소인데다 사건 당시 크리스마스 시장이 열려 인파가 많았던 탓에 최소 12명이 사망하고 47명이 부상했다. 범행에 사용된 트럭은 19톤 정도로 추정되며 적재함에는 건물 공사에 쓰이는 철근이 발견됐다. 트럭에 탑승했던 용의자 두 명 중 직접 운전한 것으로 알려진 한 명은 생포됐으며 폴란드 국적으로 밝혀진 동승자는 총에 맞아 숨진 채 발견돼 납치 가능성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앙겔라 메르켈 총리는 사건이 일어난 다음날인 20일 “테러로 볼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으며 토마스 데메지에르 독일 내무장관은 체포된 용의자가 파키스탄 국적의 난민이라고 발표했다. 다만 용의자는 범행을 부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이번 사건은 7월 프랑스 니스 테러와 범행수법이 유사해 이슬람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와의 연관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도구로 대형트럭을 사용했고 연휴 기간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장소를 선택해 불특정 다수의 민간인을 노린 점에서 니스 테러와 판박이라는 것이다. 독일 정부는 현재까지는 IS가 이번 사건에 연계돼 있는지 특정할 수 없다고 밝혔다.

독일에서 난민이 이슬람 극단주의에 영향을 받아 테러 ‘유입경로’가 될 수 있다는 경고는 수차례 제기됐다. 독일 내무부는 8월 난민규제를 대폭 강화하는 대테러종합대책을 발표해 여론 대응에 나섰지만 이번 사태로 내년에 치러질 독일 총선에서 난민 문제가 주요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된다.

◇깊어가는 혐오 속 길 잃은 유럽=19일 밤 스위스 취리히에서는 이슬람사원을 향한 총격까지 발생했다. 신원 미상의 남성이 모스크에서 기도하던 무슬림에게 총격을 가해 총 3명이 중상을 당했다. 취리히 경찰은 사건을 테러로 규정하는 것에는 조심스러운 입장이지만 독일 도이체벨레는 소말리아 이민자들이 이 사원을 주로 사용한다고 지적해 이슬람·난민 혐오 정서가 사건의 원인일 수 있음을 시사했다. 경찰은 범인이 사망한 채로 발견됐다고 발표했다. /이경운·변재현기자 humblenes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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