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똑한_직장생활 가이드 '플랜 Z'] <5> 두려움을 통제하자. 불확실성은 조직의 체질이다

2030 여성을 위한 최명화 대표의 직장생활 가이드

최명화 최명화&파트너스 대표
“여자 직원들과 일하면서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어떤 면이 있을까요?”

LG에서 일할 때 사업부 사장님과 저녁 식사를 할 기회가 있었다. 평소 후배들을 잘 보살펴서 따르는 후배들이 많은 분이셨다. 호탕하시면서도 사려 깊고 공정해 사내 존경을 한 몸에 받는 분이었다.

잠시 생각에 빠지시더니, 딱 한 말씀 하셨다. “여자들은… 너무 따져.”

업무를 진행하다 보면 내용이 불분명하거나 결과가 전혀 예측되지 않는 프로젝트를 진행해야 할 경우가 많다. 프로젝트의 결과물이 분명치 않은 경우, 외적 변수가 많아 경과를 지속적으로 지켜보며 판단해야 하는 경우, 일을 지시하는 상사조차 어떻게 접근해야 할 지 모르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그런 일도 상사 입장에서는 누군가에게 배정을 해야 한다. 이 경우 남자들은 별 질문 없이 “일단. 해보겠습니다”라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좀 더 구체적으로는 “고민 좀 해보겠습니다”라는 답변이다.

일정 기간 잠수를 타면서, 자리를 비우는 횟수가 많아지는 것 같기도 하고, 담배를 피우는 횟수가 느는 것 같기도 하다. 프로젝트 배경에 대해 주변에 물어보기도 하고, 나름의 인맥으로 잘 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고 있다. 개인 차이가 있기 때문에 일반화는 힘들겠지만, 같은 상황에서 여자 후배들의 반응은 조금 다른 것 같다. 일의 배경을 좀 더 이해하려 하고, 왜 일이 이렇게 진행되는지 알고 싶어 한다. 자신의 역할을 분명히 하려 하고, 자신과 다른 동료의 업무 영역이 어떻게 다른지 분명히 정리하려고 한다. 프로젝트가 진행된 후에도 과정이 갖는 불확실성에 대한 불편함을 지속적으로 드러낸다.

여자들은 너무 따진다. 나부터가 그렇다. 조금만 불분명해도 따진다. 답이 없는데도 답을 구하려고 안달한다. 경계를 짓지 않아도 되건만 내 영역과 역할을 분명히 하려고 한다. /출처=이미지투데이
그렇다. 여자들은 너무 따진다. 나부터가 그렇다. 조금만 불분명해도 따진다. 답이 없는데도 답을 구하려고 안달한다. 경계를 짓지 않아도 되건만 내 영역과 역할을 분명히 하려고 한다. 진행해 가면서 상황을 살펴보아야 더 정확할 텐데, 출발선에서 도착점까지 명확한 그림이 없으면 불안해 한다. 그리하여 급기야는 자기 맘대로 상황에 대한 소설을 쓰고 쉽게 낙담하기도 하고 성급히 불안해 하기도 한다. 그런 여자들의 시선에서 보면, 별로 아는 것도 없으면서 무조건 하겠다고 말하는 남자 동료들, 준비도 제대로 안 하면서 덤벙덤벙 일을 처리하는 것 같이 보이는 동료들이 엉터리 같아 마음에 들지 않는다.

하지만 조직에서 벌어지는 일들은 불확실한 성격의 일이 더 많다. 특히 경쟁 상황이 치열하고 환경적 변화가 큰 산업일수록, 너도 모르고 나도 모르는 일을 어쨌든 시작하고 추진하고 밀고 나가야 할 때가 많다. 그리고 그러한 일에 적극성을 보이며, 일단 뛰어드는 태도를 보이는 직원들이 눈에 확 띈다.

불확실성에 대한 불편함, 상황을 따져 물어 분명하게 하려는 태도, 선을 긋고 내 것을 구분하려는 욕구, 여자들에게서 보다 빈번히 발견되는 이러한 성향은 어떤 차이에서 비롯되는 것일까?

나는 그 답을 성적 정체성에서 오는 두려움이라고 정의하고 싶다. 남성과 여성이 갖고 있는 고유의 성적 정체성을 생각해 보자. 그 어떤 교육적 사회적 장치가 없는 상황이었던 원시 시대, 남녀가 자연스레 분담했던 역할에서 인류학자들은 그 힌트를 제시한다. 즉, 사냥을 하고 가족을 부양했던 남자의 역할과 동굴에 남아 짐승의 공격을 피해 아이들을 돌보아야 했던 여성의 역할이 그것이다. 오늘 잡을 것이 토끼가 될지 여우가 될지도 모르는 상태로 무조건 벌판을 향하던 남성성은 불확실성과 도전의 상징이다. 반면, 있을 수 있는 위협을 제거하며 아이들을 보호해야 했던 여성성은 안전과 확실성을 그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추구하게 된다.


여자들은 확실한 세상, 나와 관련된 모든 것들이 이해 가능하고 일정한 안정성을 보여줄 때 편안함과 안도감을 느낀다. 그런 성향이 조직적 성과를 내는 것에 나쁘게 작용하지만은 않는다. 많은 경우 체계적이고 신뢰가 가는 결과물을 가져다 준다. 프로젝트 기한도 훨씬 더 잘 엄수하고, 성실하고 꼼꼼하다는 평가도 여자들이 훨씬 더 자주 받게 된다. 느닷없이 잠수를 타는 경우도 훨씬 적고, 멋대로 어긋나 판을 깨 버리는 행동도 훨씬 덜하다. 안정적이고 예측 가능한 것이다. 그러나 조직이나 사회를 지배하는 규칙은 또 다른 능력을 요구하고 있다. 때론 흘러가는데 상황을 놓아두고 보는 것, 불확실성을 기본 조건이라 받아들이고 지속적으로 판단을 바꾸거나 결론을 변경해 보는 것, 주어진 역할 만이 아니라 새로운 역할도 정해나가는 것, 이런 능력을 요구한다.

따지지 말자, 두려워하지도 말자. 눈 딱 감고 일단 뛰어들어 보는 과감함을 가져보자. 어려운 일, 아무도 모르는 일, 어떻게 진행될지 감도 안 잡히는 일, 그런 일에 더 손들고, 그런 일에 더 힘이 난다고 눈을 반짝거리면서 도전해 보자. /출처=이미지투데이
더불어 이러한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능력은 직급이 올라갈수록 더욱 요구되는 능력이기도 하다. 사원의 하루는 비교적 확실하다. 오늘 출근해 마쳐야 할 일이 비교적 명확하다. 때론 예상치 못한 업무가 떨어지기도 하고 생각보다 시간이 지체되어 야근을 해야 하기도 하지만, 비교적 분명하고 시간을 쏟으면 해결되는 과제들이 대부분이다.

반면 최고경영자(CEO)의 하루는 불확실의 연속이다. 제한된 정보와 한치 앞을 내다 볼 수 없는 상황에서 중요한 비즈니스 결정을 지속적으로 내려야 하는 자리이다. 예상을 벗어난 경쟁사의 움직임에 따라, 예측과 달리 요동치는 주식 시장에 따라, 엉뚱하게 터져 나오는 국정 사태에 따라, 그가 해야 할 업무의 범위와 방향이 완전 달라져야 한다.

그러한 불확실성 속에서도 확실한 결정을 통해 기업의 위험을 최소화 하는 것, 그것이 CEO의 역할이다. 그래서 CEO가 돈을 많이 받는 것이다. 불확실성을 관리하는 그의 능력이 탁월하기 때문이다.

따지지 말자, 두려워하지도 말자. 눈 딱 감고 일단 뛰어들어 보는 과감함을 가져보자. 어려운 일, 아무도 모르는 일, 어떻게 진행될지 감도 안 잡히는 일, 그런 일에 더 손들고, 그런 일에 더 힘이 난다고 눈을 반짝거리면서 도전해 보자.

아무것도 정해져 있지 않고 때론 시간을 통해서만 확실해지는 상황을 불편함이나 두려움으로만 인지하지 말고, 극적 재미의 전제 조건이라 이해해 보자.

그리고 여자이기 때문에 이러한 불확실성에 조금 더 취약하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적극적으로 관리하자. 안전하고 분명한 것만이 좋은 결과를 내는 것이 아니며, 때로는 지켜보고 침잠하는 것도 필요한 전략이다. 조직은 원래 불확실한 공간이다. 아무것도 정해지지 않은 것이 당연한 생리이고 재미있고 스릴 있게 그 사실을 즐기며 한바탕 게임을 벌어야 하는 것이 우리의 운명이다.

/최명화 최명화&파트너스 대표 myoungwha.choi00@gmail.com

최명화 대표는?

글로벌 컨설팅 기업 맥킨지의 마케팅 컨설턴트, LG전자 최연소 여성 상무, 두산그룹 브랜드 총괄 전무를 거쳐 현대자동차 최초의 여성 상무를 역임했다. 국내 대기업 최고 마케팅 책임자로 활약한 마케팅계의 파워 우먼으로 잘 알려져 있다.

현재 최명화&파트너스의 대표로 있으면서 국내외 기업 마케팅 컨설팅 및 여성 마케팅 임원 양성 교육 프로그램인 CMO(Chief Marketing Officer) 캠퍼스‘를 운영하고 있다. 오랜 직장 생활을 통해 직접 경험하고 터득한 ’조직에서 스마트하게 승리하는 방법‘을 알려주는 현장 전략서 ’PLAN Z(21세기북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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