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E 부회장 베스 콤스톡 Beth Comstock이 맡은 직무는 매우 복잡해 보이지만, 그 목표는 단순명료하다. 바로 유서 깊은 기업에 ‘미래’를 불어넣는 일이다.
바로 이듬해 콤스톡은 리스를 GE 마케팅 행사의 연설자로 초대했고, 뒤이어 리스가 몇몇 GE 제조 부문 팀과 협업을 진행할 수 있도록 기회를 마련해주었다. 초기 제품을 만들어 고객에게 선보인 뒤 피드백을 받아 적용하는 ‘린 스타트업’의 원칙을 도입하게 한 것이었다. 콤스톡은 그 성과가 훌륭했기 때문에 리스가 더 많은 GE 부서들과 협업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GE에서 이런 방식의 실험은 이례적이었다. 하지만 콤스톡-단도직입적이고 신속하며, 표현이 분명한 인물이다-에겐 무모하고 변칙적인 것도 합리적이고 사실적인, 심지어 명백한 것으로 만들어내는 능력이 있었다. 리스는 “당시엔 이것이 일련의 여러 시도 중 하나였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 그녀에겐 회사가 무엇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한가지 목표가 있다”고 말했다.
결국 콤스톡은 리스가 GE 경영진 연례회의에서 그의 아이디어와 결과를 발표하도록 만들었다. CEO 제프 이멀트 Jeff Immelt는 이에 깊은 감명을 받았고, 5,000명에 달하는 GE 고위 관리자들에게 4개월이라는 짧은 기간에 이 개념들을 익히라고 지시했다.
콤스톡이 한 출판기념회에서 알게 된 이러한 아이디어들은 이제 GE의 주요 사업 방식 중 하나인 패스트워크스 FastWroks로 자리를 잡았다. GE는 이 방식 덕분에 혁신이 빨라지고 비용이 줄어든다고 믿고 있다. 예컨대 보통 5~6년이 걸렸던 대형 가스터빈 신제품 개발이 30개월로 단축되는 식이다.
콤스톡에게 어떤 권한이 있었기에 전사에 걸친 본질적 사업방식에 변화를 주게 되었을까? 다시 말해 제트 엔진과 전력 터빈, MRI 촬영기 등의 신규 제품과 사업 모델에 영향을 줄 수 있었을까? 정확히 말하면 그녀에겐 그럴 권한이 없었다. 콤스톡은 최고마케팅경영자였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녀가 지니는 GE에서의 가치, 그녀가 1년 전에 부회장으로 승진한 이유, 그리고 그녀가 최근 포춘 선정 ‘가장 영향력 있는 여성 사업가(Most Powerful Women in business)’ 48위에 오른 이유를 이해하는 데에는 패스트워크스의 이야기가 많은 부분을 설명해주고 있다.
새 일을 벌이고 통합하는 인물 NBC 시절 콤스톡과 함께 일했던 CNN의 제프 저커는 “GE는 자신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스스로를 디지털 기업으로 소개한다”며 “이멀트의 공이 크지만, 베스 없이 그게 가능했을지는 의문”이라고 말했다.
GE의 인사 책임자 수전 피터스 Susan Peters는 “조직도를 바탕으로 생각하는 외부인의 입장에선 베스의 역할과 그녀의 영향력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공식적으로 콤스톡(56)의 직함은 불분명해 보이는 ‘사업 혁신 부회장(vice chair, business innovations)’이다. 그녀는 여전히 마케팅, 판매, 소통 부문을 관리하지만, ‘GE의 서비스 업체 구축’ 또한 책임지고 있다. 외부인의 입장에선 알쏭달쏭한 직무다. 그녀는 신생 사업체에 투자하는 GE 벤처스 앤드 라이선싱 GE Ventures and Lincensing을 비롯해 GE 라이팅 GE Lighting도 이끌고 있다. 겉으로 보기엔 혼란스러울 정도로 업무가 다방면에 걸쳐 있다. 이처럼 가지각색인 부문들이 무엇을 중심으로 묶여있는지 궁금증이 생길 법도 하다.이에 대한 답 또한 평범하진 않다. 그러나 혼란스럽지도 않다. 콤스톡의 업무는 미래를 예측하고, 그 미래가 GE 사업에 있어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아내는 것이다. 콤스톡은 데이터와 분석학의 힘을 축약한 의미로 ‘디지털’을 예로 들었다. 그녀는 “예전에 발견한 개념이다. 이 개념의 출발은 내가 NBC에서 진행했던 업무로 거슬러 올라간다. 바로 변화의 흐름을 포착하는 것이다. 제프 [이멀트]가 그 씨앗을 기술 부문과 상업 부문에 심어두었다. 내 임무는 새로운 사업 모델을 실현하는 데 적합한 초창기 팀을 구성하는 일이었다”고 설명했다. 데이터와 분석학을 기반으로 한 새로운 사업 모델은 현재 GE 전체에 퍼져 있으며, 패스트워크스 또한 마찬가지다. 이런 까닭에 GE는 현재 콤스톡이 관장하는 마케팅 캠페인에서 스스로를 ‘디지털 산업’ 이라고 칭하고 있다. 콤스톡은 “내가 하는 업무는 아이디어의 씨앗을 뿌리고 이를 키우는 일이다. 후에 이 아이디어들이 규모를 갖춰 현실이 된다”고 말했다.
디지털 아이디어는 큰 규모를 갖추게 됐다. 25년 전 NBC에서 함께 일할 때부터 콤스톡을 알고 지내던 CNN 사장 제프 저커 Jeff Zucker는 “GE는 자신을 명확하게 파악하고 스스로를 디지털 기업으로 소개한다. 제프 [이멀트]의 공이 크지만, 베스 없이 그게 가능했을지는 의문이다” 라고 주장했다. 이멀트 자신도 이를 부정하지 않는다. 그는 지난해 콤스톡을 부회장에 임명하며 “그녀는 산업 인터넷에 대한 투자를 진두지휘하면서 우리 스스로가 디지털 기업으로 진화하도록 이끌었다”고 평가했다.
‘서비스 기업 GE’라는 아이디어에서 콤스톡의 역할을 이해하기 위해선 겉으론 미스터리처럼 보이는 문제 하나를 더 풀어야 한다. 왜 최고마케팅경영자가 GE라이팅을 이끌고 있는 것일까? 그 이유는 GE의 첫 제품군인 전구(회사 창립자 중에는 토머스 에디슨 Thomas Edison도 있다)가 새로 창출하는 사업 모델 없이는 살아남을 수 없다는 인식 때문이었다. 수명이 20년에 달하는 LED 전구의 효율성과 점점 저렴해지는 가격 때문에 전구 교체 매출에 의존하던 과거의 모델은 이미 종말을 고했다. 그래서 콤스톡은 GE를 넘어선 신사업 모델을 고안했다. 센서와 에너지 부하 조절 등에 활용이 가능한 LED 전구를 GE의 태양광 발전, 에너지 보관, 데이터 분석학과 융합시킨 것이다. 유통업체와 호텔, 시 당국 같은 상업적 고객들은 더 저렴하고 친환경적인 전구는 물론, 활용 가능하도록 수집된 비즈니스 정보 통합 서비스도 받을 수 있다. 제이피모건 체이스 JPMorgan Chase, 사이먼 프로퍼티스 Simon Properties, 힐튼 호텔 Hilton Hotels, 샌디에이고 시 등이 그런 고객들이다. ‘커런트 Current’라 불리는 신사업 부문은 보스턴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클리블랜드의 나머지 사업 부문-고객들을 위한 LED 전구는 물론 전통적인 전구도 여전히 생산하고 있다-과 분리되어 있다. 두 사업 부문 모두 콤스톡에게 보고를 한다. 커런트의 올해 매출은 10억 달러로 예상된다. 1,400억 달러 규모의 기업에겐 보잘것없는 매출이다. 하지만 ‘서비스 모델이 GE의 나머지 사업 부문에도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을 입증했다는 측면에서 큰 중요성을 가진다.
콤스톡이 GE벤처스를 이끌고 있는 것엔 신사업 모델을 찾으려는 목적도 크게 작용하고 있다. GE는 업계의 신생기업들이 GE의 규모와 글로벌 접점을 경험할 수 있도록 지원을 하고 있다. GE는 그들에게서 혁신을 배운다. 예를 들어 현재 GE와 신생업체 2곳은 GE의 전력, 철도, 에너지 사업 부문에 잠재적인 가치를 더해주는 드론 기반 검수 사업을 키워가고 있다. 기술 자체도 흥미롭지만, 기술은 성과의 일부분에 불과하다. 콤스톡은 이에 대해 “사업 모델을 갖춘 연구개발”이라고 설명했다. “이따금씩은 가장 중요한 게 기술이 아닌 경우도 있다. 사업 모델 자체가 중요하다.”
혼란이 가중되고 있는 것 같다. 사업 모델 혁신처럼 운영 및 전략적 요소가 강한 부문을 총괄하는 인물이 왜 마케팅, 판매, 소통 부문도 관리하고 있는 것일까? 여기에도 논리가 존재한다. 마케팅을 조금 더 확장해 정의하면, 시장의 모든 측면과 그 방향을 이해해 경쟁자들보다 더 영리하고 빠르게 반응할 것을 요구한다. 콤스톡은 수년 전 이런 정의를 받아들였다. 그녀는 자신이 최고마케팅책임자였던 시절 팀원들에게 “여러분은 혁신 과정에서 제품 관리자나 엔지니어들만큼 중심적인 위치에 있어야 한다”고 강조한 바 있다. 그러나 스스로를 이렇게 대단하게 생각하는 마케팅 담당자는 많지 않았다. 그렇게 해낸 담당자도 소수에 불과했다. 아마도 GE 수장 이멀트가 입사 초기 수년 간 마케팅 담당자로 일했던 점이 도움이 된 듯하다.
GE의 변화를 이끄는 콤스톡이 외부에 비춰지는 회사 모습을 관리하는 것도 이런 측면에서 이해할 수 있다. 최근 나온 GE의 재미있는 TV 광고는 20대들을 등장시켜 크고 오래된 산업체에서 일하는 것이 왜 멋진 일인지 설명했는데, 관심도 끌었고 좋은 효과도 거뒀다.
겉으로 정신 없어 보이는 콤스톡의 업무 범위는 이렇게 하나의 일관성 있는 전체를 이루고 있다. 부회장이란 고위직을 맡은 이유도 설명이 된다. 이 직급은 지금까진 주로 거대한 운영 및 재무회계 업무를 이끌었거나 이끌고 있는 (남성) 경영진의 전유물이었다. 그녀는 전형적인 틀에 맞지 않는 인물이다. 그러나 이는 이멀트와 경영전이 전달하려는 메시지의 일부이기도 하다. GE는 한 세대에 한 번 있을 법한 거대한 변화를 시도하고 있다. 거기에는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GE 주가는 지난해 시장에서 압도적인 강세를 보였지만, 15년 전 이멀트가 CEO에 올랐던 때 수준에 여전히 못 미치고 있다. 자체 정비를 위해 GE 캐피털의 대부분을 축소했으며, 이멀트는 1,000억 달러 규모의 산업 인수합병들을 진행하기도 했다. GE는 세계화도 급속도로 추진하고 있다. 디지털 기반 전략을 추진하면서 2020년까지 세계 10대 소프트웨어 기업에 오르겠다는 성취하기 어려운 목표도 세워놓고 있다.
콤스톡은 기질상 GE에서 특별한 쪽에 속한다. 출세 기준이 ‘방을 가득 채우는 존재감(filling the room)’일 정도로 존재감이 큰 인물이 많은 기업에서 그녀는 스스로를 내성적이라고 묘사한다. 새로운 사람을 만나기 위해선 자신을 밀어붙여야만 한다고 믿고 있다. 일단 그렇게 했더니 성과도 나왔다. 많은 이들이 변화의 흐름을 포착하고자 할 때 콤스톡을 찾는 주된 이유에 대해 수전 피터스는 “그녀가 회사 안에서 가장 인맥이 넓은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피터스는 “우리 글로벌연구센터에서도 투자처를 결정할 때 찾는 인물이 콤스톡”이라고 강조 했다. “지금의 시대정신이 무엇인지 궁금하다면 그녀를 찾아 간다.”
일반적으로 GE에서 스타가 되기 위해선 초기에 일정 기간 기업 감사 담당 경력을 거치는데, 콤스톡은 이 과정을 건너뛰었다. 그 대신 그녀는 GE가 소유했던 NBC의 홍보 부문 커리어를 거쳤다. GE 회장이었던 잭 웰치 Jack Welch는 1998년 그녀에게 회사 전체의 소통 부문을 이끌어달라고 부탁했고, 이멀트는 2003년 그녀를 최고마케팅경영자로 임명했다. 콤스톡은 각 직위의 한계를 확장시켰다.
콤스톡에겐 또 하나 유별난 점이 있다. 보통 GE 최고 경영진은 외부 기업 이사회에 소속될 수 없는데, 그녀는 나이키 이사회에서 활동을 하고 있다. GE는 이 사안에 예외를 적용했다. 이사회 활동을 통하면 그녀 업무에 필수적인 안목 확대가 가능하기 때문이었다. 페덱스에서 오랜 기간 최고재무경영자를 역임했고 2002년부턴 나이키 임원을 맡고 있는 앨런 그라프 Alan Graf는 “그녀는 날카로울 정도로 명석한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재무회계 관련 대화도, 마케팅 관련 대화도 편하게 나눌 수 있다.”
콤스톡의 이력이 다방면에 걸쳐있다 보니 다음에 그녀가 어떤 일을 할지 궁금증이 생기는 건 당연하다. 이멀트보다 4년 더 젊은 그녀가 GE에서 더 높은 자리에 올라갈 수는 없는 상황이다. 익명을 요구한 유명 헤드헌팅 업체 스카우트는 “그녀는 ‘수퍼 스타’이다. GE가 허락한다면 더 많은 이사회에서 활동할 수 있는 인물이다”라고 주장했다. 다른 베테랑 헤드헌터도 이에 동의한다. “다른 곳에서 일할 수도 있지만, 아마 그렇게 하진 않을 것이다. GE에서 부회장을 그만두는 사람들은 보통 좀 더 일찍 떠나는 경향이 있다.” 그라프는 이렇게 말을 이었다. “하지만 어딘가 다른 곳에서 CEO를 맡은 베스를 목격한다고 해도 놀라지는 않을 것이다. 그녀는 확실히 그럴 만한 능력이 있다. 그녀가 어딘가의 (CEO) 후보 리스트에 올라있을 것이라고 장담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물론 콤스톡은 이에 대해 말을 아끼고 있다. 포춘 언필터드 Fortune Unfiltered 팟캐스트에서 그녀는 “잠시 멈춰 서서 다음을 생각해야 할 때가 있다고 말할 시점이 있을 것이다. 1년간 공부만 하고 싶은 내 자신도 존재한다. 1년 정도 휴지기를 갖고 나 자신을 추스르고 싶기도 하다”고 말한 바 있다. 하지만 누구나 그렇지 않은가?
그 때까지 콤스톡은 새로 일을 벌이고 통합하는 일을 계속할 것이다. 그녀는 오랫동안 이런 일을 하는 자신을 “미래주의자이자 연결자”라고 묘사했다. 그러나 어떤 결과를 낳을지는 아직 불분명하다. 마침내 월가가 GE의 변신을 믿게 됐지만, 여전히 갈 길이 먼 것도 사실이다. 현재로서는 더 많은 기업들이 스스로 변화할 필요가 있고, 콤스톡 같은 역할을 수행할 누군가를 활용할 수 있다고 보는 정도가 타당하다. 에릭 리스는 “내가 다른 경영진에게 패스트워크스에 대해 얘기하면 그들은 큰 충격을 받는다”고 말했다. “자기들에겐 소용이 없을 것이라고 말한다. 많은 경영진은 자신들에게 베스 같은 인물이 없다고 토로한다. 농담이 아니다. 그녀는 기업의 비밀 병기다.” 물론 그 사실은 이제 더 이상 ’비밀‘이 아니다.
서울경제 포춘코리아 편집부/By Geoff Colv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