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작된 대선, 다시 국가개조다] 정치적 손익 계산에 균형·신뢰 다잃은 외교·대북 정책

사드배치·위안부·남북관계 등
지지세력만 신경쓰다 우왕좌왕
'미·중 사이 균형' 정의 세우고
확고한 원칙·콘텐츠 동반돼야



박근혜 정부는 출범 초기 ‘균형 외교’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내세우며 외교·대북 정책의 대원칙을 제시했다. 하지만 집권 4년간의 결과는 참담하다. 미중일과의 외교 관계는 ‘균형’을 잃었고 한반도에는 ‘신뢰’가 사라졌다. 큰 틀에서의 원칙은 확고했지만 정책을 운영하는 과정에서 정치적 손익을 계산하다 보니 원칙이 힘을 잃었기 때문이다.

우선 외교 이슈가 정치화되면서 외교에 빈틈이 너무 커졌다. 이 때문에 우리나라 외교가 상대국의 의도에 끌려다니게 된 결과를 자초했다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THAAD·사드) 배치 문제는 외교·안보적 실리를 두고 논쟁해야 했지만 정치 논쟁으로 엇나가면서 우리 정부는 중국 등 주변국을 충분히 설득하지 못했다. 더욱이 정부가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전에 사드를 국내로 들여오면서 결과적으로 중국에 ‘사드 배치 철회는 절대 없다’는 강한 메시지를 던지게 됐다. 결국 한국은 미국을 선택했다는 인식이 중국에 퍼지면서 균형 외교라는 원칙은 금이 갔다.


지난 2015년 말 진행된 일본과의 위안부 문제 합의도 ‘한일 관계 개선’이라는 국가 중심적인 원칙만 강조하다 보니 절차적 정당성을 잃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합의 과정에서 전제돼야 할 피해 할머니들의 명예와 존엄 회복, 마음의 상처 치유라는 목표는 무시됐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는 큰 반발을 불러오고 일본 정부만 ‘위안부 문제의 최종적, 불가역적 해결’이라는 정당성을 얻게 됐다는 지적이다.

미국의 보호무역주의 움직임 속에서 통상 정책도 원칙이 훼손됐다. 자국의 이익을 챙기겠다고 나선 건 미국이지만 우리 통상당국은 제 목소리를 내지 못하고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이나 미국의 수입 규제를 완화해달라며 매달리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박인휘 이화여대 국제학부 교수는 “박근혜 외교가 실패한 가장 큰 원인은 원칙보다는 정치적 지지 세력을 최우선으로 고려했기 때문”이라며 “원칙과 콘텐츠가 전제되지 않고 상황에 따라서 지지 세력이 듣고 싶어하는 이야기만 하다 보니 위기가 닥쳤을 때 쉽게 흔들리게 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대북 정책에 있어서도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거창한 원칙으로 출발했지만 결국 용두사미가 됐다. 박 전 대통령은 2014년 3월 북한에 민생 인프라 구축과 인도적 문제 해결, 남북 동질성 회복 등의 내용을 담은 ‘드레스덴 선언’을 하는 등 북한에 손을 내밀었지만 북한의 도발이 거듭되면서 좌절됐다. 지난해 1월 4차 핵실험과 2월 장거리 로켓 발사 이후로는 ‘단호한 대응’만 남발했다. 특히 북한의 장거리 로켓 발사 직후에는 개성공단마저 가동을 중단하면서 대북 정책은 사실상 실패의 길로 접어들었다.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 실패의 1차 원인은 북한의 비협조로 볼 수 있지만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라는 원칙을 뒷받침할 만한 정책이 없었다”며 “기대할 수 없는 북한의 태도 변화를 기다리며 북한 문제를 로컬 정치와 연결시키면서 대북 정책의 원칙은 추상적으로만 남게 됐다”고 지적했다.

앞으로 들어서는 새 정부가 외교·대북 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기는 어렵다. 우리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상대국을 고려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어렵더라도 원칙과 콘텐츠가 동반돼야 한다고 말한다. 박 교수는 “미중 사이에서 균형을 잡는다는 게 무엇인지 정의부터 내리고 외교적 판단 이후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를 구체적으로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강광우기자 pressk@sedaily.com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