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금고를 훔친 집이 대사관저라구요? 에효, 그것도 모르고….”
지난 29일 용산경찰서 경찰들은 주한 캄보디아 대사관저 금고 도난사건 용의자들을 검거해 조사하다 실소를 터뜨렸다. 자신들이 도둑질한 집이 어떤 집인지도 몰랐다니 한편으론 허탈하기까지 했다.
사연은 이렇다. 전 직장동료였던 A씨(38·남)와 B씨(50·여)는 서울 용산구 한남동 일대 고급 주택 중 한 곳을 털기로 모의했다. 집안 침입과 절도는 A씨가 맡고 이동은 B씨가 맡았다. 지난 21일 오후 7시께 A씨는 담을 넘어 유리창을 깨고 한 고급주택에 들어갔다. 돈이 될 만한 물건을 찾던 A씨는 서재로 보이는 곳에 놓여 있던 금고를 발견했다. 금고의 무게는 30㎏ 가량으로 제법 무거웠다. 하지만 A씨는 귀중품이 들어있으리라 기대하고 통째로 들고 정문을 빠져나왔다. 차량에서 대기하던 B씨는 A씨와 금고를 싣고 유유히 사라졌다.
캄보디아 대사관의 도난신고를 접수한 용산경찰서는 비상이 걸렸다. 해외 공관에서 절도 사건이 발생한 것은 매우 드문 일이다. 게다가 한국 경찰의 치안유지 능력에 금이 갈 수 있고 자칫하면 양국 간 외교 문제로까지 번질 수 있는 심각한 사안이었다. 수사력을 총동원했다. 즉각 CCTV 분석과 탐문수사를 통해 A씨의 인상착의를 확보했다.
한국 경찰의 명예가 흔들리고 외교 문제로까지 커질 수 있는 사건이었지만 정작 용의자들은 사안의 심각성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경찰 관계자는 “주거침입뿐 아니라 여권도 없이 캄보디아에 불법입국까지 한 것이라 극도로 중대한 사건이었다”면서 “A씨가 자신이 금고를 훔친 집이 외국공관인지는 꿈에도 몰랐다고 진술하는 것을 들으니 맥이 탁 풀렸다”고 전했다.
경찰은 A씨에 대해 야간주거침입절도 혐의로 구속영장을 신청했고, B씨는 장물운반 및 범인도피 혐의로 불구속 입건했다. 금고에는 상당한 액수의 현금이 있었으며 A씨는 일부를 쓴 것으로 확인됐다.
경찰은 앞으로 외국공관 100여 곳이 몰려있는 한남동 일대에 대한 순찰을 강화하기로 했다. 캄보디아대사관은 이번 금고 도난사건의 용의자를 빠르게 검거한 한국 경찰에 감탄해 조만간 외교부와 경찰청, 서울지방경찰청에 서한을 보내 감사 인사를 전할 예정이다.
/김정욱기자 mykj@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