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워드 로크가 점토로 만든 건축물 모형을 보여주고 있다. 건축가 역을 맡은 배우들 모두 실제 건축 도면을 그린다. /사진제공=LG아트센터
하워드 로크(앞줄 왼쪽)와 피터 키팅(앞줄 오른쪽)이 함께 건축 설계 도면을 그리고 있다. 그 뒤로 키팅의 어머니는 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고 무대 뒤편 음향파트가 노출돼 있다. /사진제공=LG아트센터
극장 안에 들어선 시각 오후 6시 47분. 무대 위에는 배우인지, 스태프인지 분간하기 어려운 사람들이 여럿 서 있다. 한 명은 머그잔을 들고 커피를 홀짝이며 관객석을 구경한다. 몇몇은 무대 중앙 테이블에 앉아 수다를 떨고 가끔은 극장 안 시설을 가리키며 감탄한다. 또 일부는 무대 뒤편에 훤히 드러난 음향시설을 점검한다. 한 남자가 무대 좌측으로 걸어가 블라인드를 걷어 올리자 빛이 환하게 들어온다. 마치 창으로 햇빛이 들어오듯. 이 모든 것이 연극의 일부일까. 혹시 시계가 잘못되어 이미 연극이 시작된 후 입장한 것은 아닐까. 시계를 보고, 다시 관객석을 곁눈질한다. 분명 아니다. 아직 입장하는 관객들이 있다. 오후 7시가 되자 불이 꺼졌다. 배우들이 대사를 읊기 시작했다. 연극은 지금 시작한 게 틀림없다.연극이라는 장르의 생명력은 복제된 매체가 대체할 수 없는 실제성에서 나온다. 영상기술의 발달로 TV, 컴퓨터, 스마트폰으로도 언제든 즐길 수 있는 이야기를 굳이 공연장에서 즐기는 이유는 내 눈 앞에서 단 한 번만 펼쳐지는 불연속적인 세계에 들어가는 짜릿함 때문일 것이다. 대다수 영상물 속 드라마가 완전한 사기를 지향한다면 연극은 불완전한 사기를 꿈꾼다. 배우는 이야기 속 인물에 충실하다가도 때때로 자신이 배우임을 드러낸다. 관객도 마찬가지다. 연극이 그린 세계 안으로 들어간 듯 몰입하지만 자신은 극장 의자에 앉은 구경꾼일 뿐이라는 사실을 계속해서 직시한다. 배우와 관객은 속고 속이는 그 중간 어디쯤의 세계에서 만나고 교감한다. 끊임없는 밀고 당기기다.
이렇게 연극의 장점과 고유의 가치를 열거하는 이유는 유럽 연극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연극 연출가인 이보 반 호브 네덜란드 토닐그룹 예술감독의 손에서 탄생한 ‘파운틴헤드’라는 작품이 이 모든 요소를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이 이미 막을 내리고 국내에서는 재연할 가능성이 매우 낮은 연극의 관람기를 쓰고 있는 이유다.
2일 LG아트센터에서 막을 내린 연극 ‘파운틴헤드’는 구 소련 출신으로 미국으로 망명한 작가 아인 랜드의 동명 소설을 원작으로 2014년 첫 선을 보인 작품이다. 관습에 순응하는 대신 자신만의 신념과 예술적 가치관에 따르는 삶을 택한 천재 건축가 하워드 로크와 오로지 사회적 평판과 성공에만 매달리는 또 다른 건축가 피터 키팅, 그리고 로크를 사랑하지만 자기 파멸로 세상에 저항하고자 키팅과 결혼하고 후에는 세상의 악으로 대변되는 언론재벌 와이낸드와 결혼하는 건축칼럼니스트 도미니크 프랭컨 등이 주요 인물이다.
피터 키팅의 사무실과 하워드 로크의 작업실, 피터의 집 등 모든 공간이 한 무대 위에서 유기적으로 연결된다. /사진제공=LG아트센터
크게는 이상주의와 순응주의(혹은 개인주의와 공동체주의), 작게는 사랑과 야망이 충돌하는 세계를 반 호브 감독은 무대 위 공간의 분절을 통해 절묘하게 창조했다. 고객의 입맛에 맞춘 복제품만 만들어 내는 키팅과 그의 보스 프랭컨의 사무실, 로크의 작업실, 키팅의 집, 키팅의 약혼녀 케이티의 방, 로크와 또 다른 이상주의 건축가 헨리 캐머런의 사무실 등 각각의 공간은 분절됐지만 유기적이다. 굳이 무대의 구성을 바꾸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장면이 연결되고 동시에 연극이 현실화된다. 현실의 삶은 동시다발적이다. 지금 이 글을 쓰는 중간에도 누군가는 밥을 먹고 누군가는 운전을 하듯, 모든 삶은 동시다발적으로 흐르고 있다는 얘기다. 이와 마찬가지로 반 호브 감독의 무대 위에선 모든 것이 동시다발적이다. 키팅과 로크가 각자의 건축 도면(배우들은 실제로 목탄과 마커를 들고 완벽하게 도면을 그린다)을 그리는 동안 키팅의 어머니는 무대 가운데 앉아 신문을 읽고, 도미니크는 칼럼을 쓰고 화장을 고친다.피터 키팅(맨 오른쪽)과 그의 약혼녀 케이티가 대화를 나누는 동시에 주인공 하워드 로크(앞쪽)는 그의 작업실에서 건축 도면을 그리고 있다. 로크가 작업하는 모습을 카메라가 버드뷰로 촬영하고 관객들은 스크린으로 지켜볼 수 있다. /사진제공=LG아트센터
하워드 로크(앞줄 왼쪽)와 피터 키팅(앞줄 오른쪽)이 함께 건축 설계 도면을 그리고 있고 그 모습을 관객들은 전면 그리고 스크린 속 버드뷰로 지켜본다. 이를 통해 관객들은 전지적관찰자시점에서 인물을 관찰한다. 그 뒤로 키링의 어머니는 집에서 차를 마시고 있고 무대 뒤편 음향파트가 노출돼 있다. /사진제공=LG아트센터
연극의 현실화를 위해 반 호브 감독은 카메라와 스크린을 활용한다. 무대 곳곳에 설치된 카메라는 때로는 BGM을 만들어내는 실로폰이나 재생기를 비추기도 하고 로크와 키팅의 건축 도면, 도미니크의 타자기, 심지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로크와 도미니크의 정사 장면을 버드뷰로 비춘다.배우들이 연기하는 중에도 스태프들이 자연스럽게 나와 무대 구조를 바꾼다. 무대 오른편으로 스태프들이 실제 윤전기를 끌어다 놓고 있다. /사진제공=LG아트센터
모두가 합작한 이 사기극 속에 관객은 그대로 무장해제된다. 눈앞의 무대가 허구고 관객석이 현실이라는 경계가 무너지는 순간이다. 그러나 반 호브 감독은 관객을 그대로 내버려두지 않는다. 굳이 무대의 배치를 바꾸기 위해 암전하지 않는다. 스태프들이 무대 위를 오가며 테이블을 옮기고 옷가지를 치워준다. 무대 위 스크린에 중간휴식(인터미션)이라고 알려놓고 배우는 무대로 달려 들어와 막 의자에서 엉덩이를 떼려는 관객들을 도로 앉힌다. 그러곤 5분을 더 이야기한다. 마치 ‘당신은 연극을 보고 있는 것이니 착각하지 말라’고 다그치는듯하다.스토리는 논쟁의 여지가 많다. 미국의 극보수단체 티 파티의 바이블로 불리는 소설을 원작으로 한 탓에 작품 속에서 노골적으로 자유주의와 사회주의 논쟁이 펼쳐진다. 로크의 파멸을 꿈꾸는 사회주의자 엘스워스 투히는 ‘이타주의의 가면을 쓰고 대중을 조종’하는 인물로 그려지고 자신의 이상에 맞지 않다는 이유로 공공임대주택을 폭파한 로크는 개인의 이성과 이기심, 능력주의에 대한 신념으로 범죄를 저지른 사실을 밝히고도 무죄로 풀려난다.
이 소설을 무대화하자 반 호브 감독에게 비난의 화살이 쏟아지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지난 30일 국내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아인 랜드의 소설이 보수주의자를 대변하는 작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고 논쟁의 여지가 있다는 것도 안다”며 “하지만 나치의 홍보물로 이용됐던 바그너 음악의 예술적 가치를 부정하지 않듯 이 작품 역시 예술 자체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고 밝히기도 했다.
아쉽게도 그의 작품을 국내에서 보기는 쉽지 않다. 이번 무대도 LG아트센터에서 반 호브 감독의 대표작 중 하나인 ‘오프닝 나이트’를 선보인지 4년만에 내한한 작품이다. 다만 유럽과 미국에서는 그의 작품을 그나마 쉽게 접할 수 있다. 당장 이달 17일 런던 바비칸센터에서 주드 로 주연의 ‘옵세션’이 초연한다. 올 연말에는 네덜란드에서 파운틴헤드가 재연된다.
/서은영기자 supia927@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