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10월 독일 연방 상원이 오는 2030년부터 배출가스를 내뿜지 않는 자동차만 승인하는 결의안을 전격 통과시켰다. 2030년부터 독일에서는 내연기관 자동차가 사라질 수 있다는 의미다.
독일은 내연기관 자동차 부문에서 막대한 경제적 이득을 얻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내연기관 시장을 포기했다. 업계는 독일의 선공으로 본다. 파리기후변화협약에 맞춰 친환경 자동차 분야에 집중 투자해 ‘에너지 신산업 시장의 패권’을 선점하겠다는 계산이 깔렸다는 것이다. 독일의 움직임에 자극 받은 노르웨이와 네덜란드 등 유럽 일부 국가도 2025년까지 내연기관 자동차의 판매를 금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파리기후변화체제가 발효된 후 에너지 신산업을 선점하기 위한 글로벌 패권 다툼이 치열해지고 있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신기후체제 출범으로 2030년까지 1,400조원 규모의 에너지 신산업 (신재생·전기차·스마트그리드(지능형전력망)·에너지저장장치(ESS) 등) 시장이 열릴 것으로 전망했다. 에너지 신산업이 새로운 성장동력으로 부상하고 있는 것이다.
유승훈 서울과기대 에너지환경대학원장은 “에너지 신산업은 기존 에너지 산업에 정보기술(IT)과 제조업·농업·금융 등 다른 산업과 융합해 미래사회를 변혁할 성장동력으로 꼽힌다”며 “미국이나 유럽연합(EU) 등 세계 주요국은 경제성장과 온실가스 감축의 동시달성을 목표로 자국 특성에 맞는 에너지 신산업 육성에 나서고 있다”고 말했다.
선진국은 이미 에너지 신산업 분야에 대한 투자를 늘리는 등 선제적인 대응에 나섰다. 전기차 등록 대수 100만대를 넘긴 미국은 2030년까지 신재생에너지의 발전 비중을 28%까지 높이는 목표를 세웠다. 주도권을 놓지 않겠다는 것이다. EU 역시 신재생에너지와 전기차 분야 등에 50억유로를 투자하고 2020년까지 전기차 470만대를 보급할 계획이다. 일본은 올해 소매시장의 전면개방을 통해 전기·통신·가스가 결합한 새로운 형태의 에너지 신산업에 50조원을 투입할 예정이다. 이뿐 아니다. 그린 산업 대국으로 떠오르고 있는 중국의 행보는 거침이 없다. 2030년까지 온실가스를 60% 감축한다는 목표를 세우고 지난해에만 신재생에너지·전기차 등 에너지 신산업 분야에 830억달러를 투자했다.
김희집 에너지 신산업협의회 위원장은 “신기후체제의 출범은 에너지 수요 관리와 신재생에너지 등의 분야에서 글로벌 에너지 신시장이 열린다는 신호”라면서 “선제적이고 과감한 투자를 늦춘다면 글로벌 그린 패권 경쟁에서 뒤처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글로벌 기업들도 경쟁에 뛰어들었다. 가장 눈에 띄는 업체는 스마트폰 업계의 최강자 애플이다. 애플은 지난해 6월 ‘애플에너지’를 설립하고 태양광 생산·판매 사업자로 나섰다. 중국 최대 풍력터빈 제조사인 골드윈드의 지분 30%를 인수하기도 했다. 애플의 친환경 프로젝트 중 최대 규모다. 구글도 올해부터 100% 신재생에너지만 쓰겠다고 선언하는 등 에너지 신산업 프로젝트 추진을 위해 최근 5년간 15억달러를 썼다. 페이스북과 아마존도 ‘화석연료 제로 플랜’ 계획을 실천하기 위해 10억달러 투자는 물론 관련 인력을 충원하며 가속페달을 밟고 있다. 테슬라 역시 대규모 이차전지 생산기지(기가팩토리, 35GWh) 설립을 위해 총 50억달러 투자를 결정하고 태양광 사업에 뛰어들었다. 최근에는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빌 게이츠 등 전 세계 억만장자 10여명이 10억달러(약 1조1,650억원) 규모의 친환경 에너지 펀드를 올해 안에 조성하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철용 에너지경제연구원 신재생에너지실장은 “테크놀로지 기업들이 청정에너지 사업에 적극 투자에 나서는 것은 최근 신성장 7대 유망 산업 중 하나로 에너지 신산업이 지목될 만큼 친환경 사업 분야가 미래 먹거리로 주목을 받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현호기자 hhlee@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