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장] ‘세일즈맨의 죽음’, 다시 돌아온 세일즈맨…잔혹하고 잔인한 현실을 직시하다(종합)

지난해 관객들의 뜨거운 호응을 받았던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이 1년 만에 다시 무대에 올랐다. 2016년 ‘세일즈맨의 죽음’이 중년의 절망을 앞세웠다면 2017 ‘세일즈맨의 죽음’은 여기에 청춘의 좌절까지 더해 더 많은 관객들의 공감을 이끌어낼 예정이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미국의 극작가 아서 밀러가 1949년 발표한 희곡이다. 1930년대 경제대공황을 맞은 뉴욕 브룩클린을 배경으로, 평생을 세일즈맨으로 살아온 한 가장이 현실적인 어려움에 닥치면서 겪는 좌절과 방황을 담았다.

/사진=예술의전당
연극 ‘세일즈맨의 죽음’ 프레스콜이 서울시 서초구 서초동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열렸다. 이날 전막 공연이 끝난 후 이어진 기자간담회에는 한태숙 연출을 비롯해 강태경 드라마터그, 배우 손진환, 예수정, 이승주, 박용우가 참석해 연극에 대한 여러 이야기를 나눴다.

2016년에 이어 다시 한 번 ‘세일즈맨의 죽음’을 맡게 된 한태숙 연출은 “재공연한다고 해서 굉장히 좋았다. 한 해 동안 공연을 하면 훨씬 완성도가 생기고 세밀한 부분까지 들여다보게 된다. 특히 지금 같은 시국에 연극에 집중할 수 있어서 위안이 됐다”고 소감을 밝혔다.

그는 초연과 달라진 점에 대해 “지난번에는 윌리의 정신의 붕괴에 대한 이야기가 집중이 됐다면 이번에는 아들들이 상처를 드러내고 어떤 깨달음을 얻는지에 더 명암을 뒀다”며 “작년에 극을 본 사람들이 지독한 우울함이라고 하더라, 저는 그것을 더 강조하고 싶었다. 불안과 불길한 예감을 무대 미술을 통해 표현했다”고 이야기했다.

구체적인 무대 연출의 변화도 설명했다. 그는 “작년의 무대를 보신 분들은 느끼셨겠지만 벽이나 집 구조물도 더 어둡고 헐어지고 연극에 무게도 더 실렸다”며 “무대 미술과 배우들을 통해 더 깊어지고 우울해진 정서를 전달한다. 공연을 본 뒤 관객들이 감정이 더욱 치솟는 연극이 되길 바랐다”고 의도를 전했다.

/사진=예술의전당
한태숙 연출의 말대로 연극은 어둡고 무겁다. 극중 인물들이 처한 상황이 모두 암울하기 때문이다. 외로운 세일즈맨 윌리 로먼 역의 손진환은 “제 배우 인생에 이 정도의 무게감이 있는 작품의 주인공은 처음이었다. 작년에는 연습이나 공연 내내 마치 차력사가 날계란 위를 걷는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했다”며 초연 당시를 회상했다.

그는 이어 “다시 하니까 조금 편안해졌다. 그렇지만 더 잘해야 한다는 불안감이나 초조함도 분명 있다”며 “내면에 대한 깊은 디테일 중 놓친 게 있지 않을까 끊임없이 고민했다. 조금 더 성숙된 윌리가 되기를 바랐고, 그 부분에 주안점을 뒀다”고 설명했다.


윌리를 믿고 내조하는 아내 린다 로먼 역을 맡은 예수정은 “극중 가족들에게 갖는 태도에 변화가 생겼다”고 말했다.

그는 “초연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 많지는 않다. 다만 초연에서는 아들하고 아버지하고 부딪힐 때 피해를 받은 것처럼 보이는 아버지 쪽에 마음을 더 뒀다. 이번에는 가해자처럼 보이는 아들에게 오죽했으면 저렇게까지 할 수 밖에 없었을까 하며 바라보게 됐다”고 이야기했다.

이승주는 변변한 직업 없이 무기력하고 아버지와 가장 큰 갈등을 빚는 비프 로먼을 연기했다. 그는 “초연 때는 부자간의 관계에 대해 해답을 찾으려 했다면 재연은 비프 본인의 내면의 소리를 계속 들으려고 애썼다. 비프 개인으로서, 무너져버리고 고통 받는 청춘의 사고와 생각에 대해 깊게 들어가 보려고 노력했다”며 “그러다보니 어느 장면에서는 더욱 날카롭고 시니컬하게 보일 수도 있다. 그저 진실 되게 연기하려고 해다. 그러면 인물의 고통과 좌절이 선명하게 드러나지 않을까 생각했다”고 말했다.

/사진=예술의전당
장남 비프와 비교해 가족의 무관심 속 방치된 둘째 해피 로먼을 맡은 박용우는 재연에서 형과 좀 더 상반적인 모습을 보여주려 노력했다고. 박용우는 “형과 다른 현실적이고 타락한 모습을 더 부각했다. 해피라는 이름이 가진 아이러니가 잘 드러날 수 있게 했다”며 “초연에서는 가족들의 분위기를 좋게 하려고 안간힘을 쓰고 밝게 행동했다면 이번에는 조금 더 뒤에서 상황을 시니컬하게 지켜보고 조금 더 야비하고 현실적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나름의 해석을 전했다.

마지막으로 한태숙 연출은 “이 작품은 현실에 대한 이야기를 담았지만, 영혼을 사로잡히지 않으려 몸부림치는 인생에 대한 이야기가 더 절박하게 들어가 있다. 영혼을 저당 잡히는 비극, 도시의 높은 공실률 등이 굉장히 섬뜩하다. 그게 바로 우리에게 닥친 현실이다”고 포인트를 짚었다.

다만 연출은 “공연을 통해 직접적으로 위로의 메시지를 주는 것은 피하고 싶었다. 관객들이 바닥까지 훑어내는 잔인함과 깊은 상실감을 느끼고, 현재 자기가 가지고 있는 현실과 가족의 따뜻함을 느꼈으면 좋겠다”고 연극의 궁극적 의도를 밝혔다.

‘세일즈맨의 죽음’은 1949년 브로드웨이에서 초연한 후 퓰리처상 극본상, 뉴욕드라마비평가협회 최우수작품상 및 토니상을 수상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난 2016년 예술의전당에서 ‘세일즈맨의 죽음’을 초연했다. 당시 95%의 객석점유율을 기록, 청년부터 중년까지 현대를 살아가는 모든 직장인과 부모, 자식의 공감을 일으키며 많은 호응을 얻은 바 있다.

한편 ‘세일즈맨의 죽음’은 예술의전당 CJ 토월극장에서 오는 12일부터 30일까지 공연한다.

/서경스타 양지연기자 sestar@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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