①상거래 채권도 부도 직전…‘P플랜’ 직행 “대우조선 회생은 힘들어”
금융당국의 한 고위관계자는 이날 “지금까지의 조건을 후퇴시키기는 쉽지 않다”며 “이제 와서 조건을 바꾸는 일은 형평성 문제를 감안하면 어렵다”고 말했다. 국민연금의 재논의 요구를 수용하지 않겠다는 얘기다.
당국은 대우조선의 자금난이 심각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다음주면 대우조선에 상거래 채권 디폴트가 생긴다”며 “더 이상 지원을 늦출 수 없는 상태”라고 설명했다. 지난 10일 산업은행은 이달 말 기준 대우조선의 현금부족분이 9,116억원에 달한다고 공개했다.
산업은행도 완강하다. 시간을 더 달라는 국민연금의 요청에 “우리가 해줄 수 있는 것은 더 없다”고 기존 입장을 재확인했다. 7일 국민연금은 채권단에 △4월 만기 회사채 상환 △이후 만기 회사채 추후 협의 △대주주의 책임지는 자세 등을 요구했다. 10일 이동걸 산은 회장과 최종구 수출입은행장이 설명회를 열었지만 7일의 요구안에서 하나도 바뀐 게 없다는 게 채권단과 당국의 판단이다.
이 때문에 현재로서는 P플랜으로 직행할 가능성이 가장 유력하다. P플랜 시 금융권과 사채권자의 손해는 4조4,000억원으로 지금의 자율 구조조정안(3조1,000억원)보다 커진다. 특히 수은은 증자에만 2조원이 필요하다. 선수금환급보증(RG) 콜에 따른 피해도 최소 8척에서 최대 40척으로 예상된다. 2조원이 묶인 소난골과 시드릴 계약도 취소될 확률이 크다.
산은과 금융당국은 P플랜의 경우에도 3조3,000억원 이상을 추가 투입해 짓던 배를 완성시킬 계획이다. 다만 대우조선의 회생은 사실상 어렵다는 게 금융당국의 판단이다. 금융당국 고위관계자는 “P플랜도 법정관리”라며 “법정관리에 한번 들어가게 되면 회사의 명성이 떨어지고 신규 수주가 불가능해 되살아나기 힘들다”고 전했다.
②4월 채권상환 유예 후 재협의…운영자금 바닥, 버틸 체력 없어
국민연금은 4월 채권상환을 유예하고 시간을 두고 협상해보자는 입장이다. 금융당국이 기존의 일정에만 집착하고 있다는 것이다. 상황에 따라서는 추가 실사도 할 수 있다는 의사를 비치고 있다. 국민연금 내부에서는 당국과 산은이 P플랜행을 사전에 정해놓고 자율 구조조정 실패의 책임을 자신들에게 떠넘기려 한다는 불신이 팽배하다.
연금 측의 주장대로 사채권자 집회 연기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다. 17~18일로 예정된 집회를 취소하고 다시 공고를 내면 된다. 이 경우 21일이 만기인 대우조선 회사채 4,400억원은 부도 처리된다. 한 회차가 부도 났기 때문에 나머지 회사채도 줄줄이 부도(크로스 디폴트)가 난다. 부도가 난 상태에서 사채권자 집회를 하게 되는 셈이다.
하지만 당국은 이를 꺼리고 있다. 일단 부도가 나면 상거래 채권자와 금융사, 일부 사채권자가 대우조선에 가압류를 신청할 수 있다는 게 당국의 판단이다. RG 콜에 따른 피해도 우려된다. 업계에서는 최소한 해양플랜트는 무조건 RG 콜이 들어올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더 큰 문제는 운영자금이다. 사채권자 집회를 지금 연기하면 빨라야 다음달에나 열릴 수 있다. 산은과 수은의 신규 자금(2조9,000억원) 지원 조건은 채무재조정이 조건이다. 재조정이 안 되면 신규 지원도 없다는 뜻인데 대우조선은 다음달까지 버틸 체력이 안 된다.
③기관투자가-채권단 전격 합의…입장 평행선 달려, 가능성 낮아
지금으로서는 확률이 가장 낮다. 채권단과 국민연금의 입장이 평행선을 달리고 있기 때문이다. 남은 기간 국민연금이 전격적으로 채무재조정안에 동의해주거나 채권단이 국민연금의 요구를 수용해야 하는데 쉽지 않다. 실제 국민연금은 “특정 기업 또는 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기금이 쓰이는 선례가 될 수 있다”며 강하게 채무재조정에 반대했다. 갑자기 이를 뒤집기는 쉽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채권단도 공식적으로 수은 영구채 금리 인하와 우선상환권 보장 외에 추가적인 양보는 없다는 입장을 재차 밝혔다.
/김영필·서민우·김흥록기자 susopa@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