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산하기관·지자체 등이 연간 10조원 이상의 예산을 국내 물산업 시장에 투입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파이프·멤브레인 회사 등 우리나라 물 관련 기업 및 기관의 수출액은 수년째 1조원대에 머무르고 있다. 막대한 투자에도 불구하고 ‘우물안 개구리’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는 것이다. 물산업 수출은 현재 매년 감소 추세를 보이고 있는데 이대로 가다가는 1조원선마저 붕괴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대부분의 업체가 영세한 것과 함께 혁신 기술을 인정하지 않는 최저가낙찰제 등이 원인으로 지목된다.
2일 환경부에 따르면 국내 물산업 수출액은 통계치를 처음 산출한 지난 2013년 이후 우하향 그래프를 그리고 있다. 2013년 1조9,800억원이었던 수출액은 이듬해 1조6,500억원으로 줄어들었고 급기야 2015년에는 1조2,700억원으로 주저앉았다. 물산업에는 건설·제조·운영·설계·컨설팅이 포함된다. 세계 물산업 시장이 매년 커지고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현상유지조차도 못하고 있는 셈이다.
한국이 해외시장에서 거둔 물산업 성적표를 더욱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우리나라 공공부문이 관련 시장에 쏟아 붇고 있는 예산의 규모다. 정부의 한 관계자는 “지자체 매칭 비용을 제외하고 중앙정부인 환경부가 오롯이 상하수도에 투입하는 예산만 연간 3조원에 달한다”며 “공업용수를 관리하는 국토교통부와 수자원공사, 농업용수를 관장하는 농림축산식품부와 농어촌공사 등 모든 예산을 더하면 연 10조원은 훨씬 넘는 수준일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 등이 이처럼 큰 돈을 국내 시장에 투입함에도 불구하고 물기업이 세계시장에서 고전하고 있는 것은 우선 해외 마케팅·판로 개척 등에 나설만한 재정적 여력이 없기 때문이다. 환경부에 따르면 2015년 기준 우리나라 물산업 업체는 총 1만1,700곳으로 이 가운데 96% 정도가 50인 이하의 사업장이다. 구조적으로 영세한 기업이 많다는 얘기다. 또 최저가낙찰제 탓에 국내에서 혁신 기술 레퍼런스를 갖기 어렵다 보니 해외 시장에 나가서도 기술력을 내세우기가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전문가들은 상황이 이런데 국내 업체들에게 그들 스스로 시장 원리에 따라 자생해 알아서 해외시장에서 승부를 보라고 하는 것은 말이 되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최저가낙찰제 등의 구조적인 문제를 개선하고 사업화 단계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영세사업자들의 해외 마케팅 등을 적극 지원해야 한다”며 “기업들이 요구하는 물산업 통계 등을 환경부가 수도법에 근거해 산출하도록 내버려둘 게 아니라 물산업 육성 독립 법안을 만들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세종=임지훈기자 jhlim@sedaily.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