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엔 사장 아들 생일잔치에 불려가, 자진퇴사 강요해 실업급여도 안줘

[100만 청년실업, 일자리 동맹에 답 있다]
<6>'일자리 동맹 성패' 기업에 달렸다
족벌경영·오너 전횡으로 청년들 中企 외면
지방은 "노동시간 초과·수당 미지급" 80%나
자유로운 휴가 보장·소통 등 경영진 노력 필요

# 안마기 제조사에서 일하던 A씨는 얼마 전 경영진의 의견에 반론을 제기했다가 현장 배달직으로 일주일 간 파견됐다 돌아왔다. A씨는 “폭염 속에 100㎏이 넘는 안마의자를 남자 둘이 배달하기 위해서 주택가를 오르내리다 보니 다시는 회사 방침에 어긋나는 말은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을 뼈저리게 했다”며 “오너 장남의 생일잔치를 위해 주말에 사원들을 모조리 불렀는데 무슨 일이 있어도 참석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이어 A씨는 “중소기업은 가족적인 문화라고 해서 기대를 걸고 입사했는데 주인과 노예도 조선시대 기준으로는 가족”이라며 “대기업은 갑질 논란 등으로 여론의 질타라도 받지 중견기업 이하 오너들은 무풍지대라 전근대적인 행태가 너무 만연해 있는 것 같다”고 하소연했다.

# 서울 성동구 성수동 소재 자동차공업사에서 3년간 근무한 B씨는 회사 사정이 어려워지면서 3개월째 월급을 받지 못했다. 사장은 B씨에게 그만둘 것을 요구하며 사직사유를 자진퇴사라고 쓰도록 종용했다. 경영상 문제로 직원을 해고하거나 사직을 권고하면 외국인 노동자 고용이 제한될 뿐만 아니라 해고기록이 많으면 정부지원사업 대상 기업에서 배제된다는 것이 이유였다. B씨는 “매출이 제대로 나지 않아 각종 대출과 중소기업 정부지원금으로 자금을 조달하며 연명하는 기업인 줄 알았으면 처음부터 입사하지 않았을 것”이라며 “자진 퇴사하면 실업급여도 받지 못하기 때문에 고용노동부에 사장을 신고한 상태”라고 토로했다.

중소기업이 고질적인 인력난을 겪고 있지만 청년들은 대기업만 쳐다보며 중소기업 취업을 기피한다는 비판이 적지 않다. 하지만 청년들은 중소기업들이 족벌경영과 오너의 전횡, 비합리적인 기업운영을 일삼아 도저히 미래를 맡길 수 없다고 항변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소기업 스스로 변화하지 않으면 정부가 아무리 청년들의 중소기업 취업을 늘리려 해도 백약이 무효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실제로 서울경제신문이 기업정보 사이트 캐치에 의뢰해 정부 대표 선정 중소기업인 고용노동부 청년친화강소기업(208개)과 중소기업청 월드클래스기업(146개) 소속 직원들의 직장 평가를 분석한 결과 가장 만족도가 낮은 항목이 ‘경영진·경영’으로 나타났다.


리뷰를 남긴 상당수 중소기업 재직자들은 “연봉은 사전정보로 이미 알고 있어 수긍하고 입사하지만 막상 회사에 들어와 불합리한 업무와 처우를 경험하면 퇴사를 결심하게 된다”며 “직원들을 소중히 여기지 않고 대기업보다 더한 오너추종적인 분위기부터 탈피해야 한다”고 공통적으로 말했다.

설문조사에 참여한 6,765개 일반 중소기업 직원들의 평가 역시 비슷했다. 만족도 비교에서 조직문화 항목이 상대적으로 높았고 경영진의 태도가 가장 낮았다. 중소기업 입사의 가장 걸림돌은 낮은 급여로 꼽히지만 오히려 입사자들은 이보다 기업 경영진의 변화를 가장 시급한 개선사항으로 꼽은 것이다.

지난 2월 대구청년유니온이 대구시청 앞에서 ‘2016 대구지역 직종별 청년노동 실태조사’ 결과를 발표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제공=대구청년유니온
특히 지방일수록 악덕기업주 때문에 청년들이 겪는 고통은 더욱 심각한 실정이다. 대구청년유니온이 올해 초 사무직에 종사하는 지역 청년노동자(만 15∼39세) 220명을 상대로 실태조사를 벌인 결과 응답자의 80.3%는 법정노동시간인 40시간이 지켜지지 않는다고 답했다. 응답자의 약 90%는 상시노동자 수가 300인 이하 중소기업에 종사하고 있었다.

또 연장·휴일근무 등 시간외근무를 했을 때 수당을 받는지에 대해서는 79.5%가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48.9%는 ‘연차를 사용할 수 없다’거나 ‘연차제도가 없다’고 했다. 평균 연차 사용 횟수는 4.8일에 불과했다.

전근대적인 문화로 고통받는 청년들도 상당수였다. 응답자의 28.2%는 상사와의 관계로 불이익을 당했다고 응답했다. 특히 불이익을 받았다고 답한 청년 중 폭언이나 폭행 등을 경험했다는 비율도 무려 24.3%에 달했다. 현장직 근로자의 주당 평균 노동시간은 57시간에 달했으며 근무 중 다친 경험이 있는 청년 역시 절반에 육박했다. 반면 산업재해를 당했을 때 산재보험으로 처리되는 비율은 49.6%에 불과했다.

이건희 대구청년유니온 사무국장은 “사무직이나 현장직 가릴 것 없이 청년들이 가장 원하는 것은 법정수당 지급, 자유로운 휴가 사용, 수평적인 소통 분위기 등 기업 경영진의 노력에 따라 비교적 단기간에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라며 “이처럼 기본을 갖춘 기업들이 확산되려면 정부나 지자체 지원 시 청년들이 직접 선발과정에 참여하는 등 제도적 변화가 동반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박진용·백주연기자 yong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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