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일병자살]국방헬프콜·권익위 제보하려면 신원 밝혀라?

국방헬프콜·국방옴부즈만 이용해보니
"신원 밝히고 민원은 국방부 전달"
옴부즈만 민원 이용률 7%에 그쳐

국민신문고를 이용해 군 관련 민원을 넣으려면 본인인증 절차를 거쳐야 한다. /사진=국민신문고 홈페이지 캡쳐
“부대에다 얘기해 줄 수는 있는데 군 생활이 어려워지지 않겠어요?”

A(25) 일병은 지난해 여름 휴가를 나와 ‘국방헬프콜’을 이용했다가 황당한 말을 들었다. 부대 내 따돌림을 제보했는데 상담원이 이같이 답한 것이다. A 일병은 “제보 내용이 부대로 전달될 것이라는 뜻에서 한 얘기였겠지만 제보자로선 황당했다”며 “부대에 입소문이 날까 봐 곧바로 전화를 끊었다”고 말했다.

병사들의 가혹행위 고발을 돕는다며 군 외부에 각종 민원 체계가 만들어졌지만 정작 병사들은 신원 노출을 우려해 민원 제기를 꺼리는 것으로 나타났다. 제보자를 보호하고 문제를 신속하게 해결할 독립기구가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서울경제신문이 25일 국방헬프콜센터에 가혹행위 민원을 접수한 결과 단순 상담을 넘어 실제 신고를 하려면 신고자 본인의 이름·소속부대·연락처를 제출해야 했고 민원 내용도 일반민원은 대대장에게, 범죄민원은 헌병대로 이관된다고 답했다. “군대를 믿을 수 없는데 군 외부에 신고할 수는 없느냐”고 하니 상담원은 “군인의 거취는 국방부가 해결하는 것이 원칙”이라고 밝혔다.

실질적 민원 처리를 국방부가 진행한다는 점도 병사들이 불안감을 느끼는 이유다. 국방헬프콜은 국방부 조사본부 산하 기관으로, 사안의 심각성에 따라 헌병대나 국방부 범죄정보실이 민원 내용을 전달 받아 조사를 진행한다. 군인권센터 관계자는 “가혹행위를 당한 병사일수록 군 당국에 대한 불신이 심해 민원 이용을 꺼린다”고 밝혔다. 19일 투신자살한 K 일병도 3개월 동안 지속적인 가혹행위에 시달렸지만 이달 14일 소속 대대 간부와의 면담에서야 피해 사실을 알렸다. K 일병은 배려병사로 지정됐지만 가해자와 분리되지는 못해 신고 후에도 가해자와 함께 훈련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국민권익위원회에 소속된 ‘국방 옴부즈만’ 제도 역시 신원 노출의 위험이 컸다.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한 아이핀(I-PIN) 인증을 거쳐야 했고 주소·우편번호까지 적어야 겨우 국민신문고 민원창에 접속할 수 있었다. 실제로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가 처리한 군내 가혹행위는 군사 관련 민원 509건 중 37건(7%)에 불과했고 2015년에도 군사 관련 민원 549건 중 53건(9%)에 그쳤다.

K 일병이 투신자살한 19일 문재인 정부는 국정계획 5개년 과제로 ‘군인권보호관제도 신설’을 발표했다. 국가인권위원회 소속 보호관이 직접 제보를 받고 직권조사까지 진행한다는 방침이다. 군인권센터 김형남 간사는 “국방부의 입김에 영향을 받지 않는 독립기구가 생긴다는 점에서 환영할 일”이라고 밝혔다. /신다은기자 downy@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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