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 개정도 전에…한전 "2030년까지 신재생에 54조 투자"

발전·판매 겸업금지 원칙 뒤집어
정부 목표치의 20% 책임지는 셈
이채익 의원 “정부, 공기업 압박”

한국전력이 오는 2030년까지 신재생 분야에 54조원을 투자하겠다는 계획을 세운 것으로 나타났다. 전력판매사업자인 한전은 2001년 전력산업 구조개편 이후 발전사업을 하는 게 엄격히 금지돼 있다. 그 이후 여러 차례 신재생에너지 분야에 한정해 한전이 발전사업을 할 수 있도록 하는 법안이 나왔지만 발전·판매 겸업 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정부의 반대에 번번이 무산됐다. 법이 개정되기도 전에 한전이 투자계획을 세우자 정부가 한전의 발전사업을 허용하는 쪽으로 가닥을 잡은 것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 탈원전을 위해서는 신재생에너지 확대가 필요한데 효과가 큰 한전을 동원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29일 한전이 이채익 자유한국당 의원에게 제출한 ‘한전 신재생발전 사업 추진 계획’에 따르면 한전은 2030년까지 신재생발전 사업에 54조원을 투입해 13.5GW 규모의 신재생에너지 발전설비를 갖추겠다는 안을 검토하고 있다.


계획안을 보면 한전은 지난해 0.1GW(총 사업비 2,000억원)에 불과한 신재생 발전량을 2020년 0.7GW, 2025년 5.2GW로 급격히 확대하고 2030년에는 지난해 규모보다 135배 커진 13.5GW를 목표로 막대한 금액을 투자하기로 했다. 정부의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량 목표 규모가 67.7GW인 점을 감안하면 20%가량을 한전이 책임지는 셈이다.

한전의 계획 가운데 태양광은 5.0GW, 풍력 8.1GW, 연료전지는 0.4GW 규모다. 한전은 이로 인한 고용창출 인원이 2016년 1,000명에서 2030년 31만9,000명으로 증가한다고 내다봤다.

문제는 전기사업법상 한전의 발전사업은 불가능하다는 점이다. 현행 전기사업법 7조는 3항은 “동일인에게 두 종류 이상의 전기사업을 허가할 수 없다”고 명시하고 있다. 한전이 법 개정을 전제로 신재생 투자계획을 세운 것도 이 때문이다. 한전 관계자는 “이번 계획안은 전기사업법을 개정한다는 전제 아래 마련됐다”고 말했다.

국회에선 한전의 신재생 발전사업 영위가 가능하도록 하는 법안이 지난해 발의돼 계류돼 있다. 하지만 송·배전망을 독점하고 있는 한전이 신재생 발전사업을 하게 될 경우 중소 민간사업자에게 피해갈 뿐만 아니라 겸업을 금지한 전기사업법의 취지에도 어긋난다는 정부의 방침에 따라 지금껏 논의가 공전을 거듭했었다. 분위기가 바뀐 것은 2030년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까지 올려 잡은 문재인 정부가 출범한 후다. 한 해 2GW 상당의 설비를 확충해야 하는데 한전의 대규모 자금력을 동원하지 않는 이상 목표 달성이 어려울 수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됐다.

이 의원은 “이 계획은 지난 7월 말 한전이 수립했지만 사실상 정부의 의지가 반영된 결과로 보인다”며 “문재인 정부가 우리나라 현실을 무시한 채 신재생에너지 20% 달성을 위해 무리하게 한전 등 공기업을 압박하는 것은 문제”라고 지적했다./세종=김상훈기자 ksh25t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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