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구 33만' 아이슬란드 또 드라마 썼다

사상 첫 월드컵 본선행
감독 본업은 치과의사

아이슬란드 축구 대표팀 선수들이 10일 월드컵 본선 진출을 확정한 뒤 홈팬들과 응원가를 함께 부르며 기뻐하고 있다. /레이캬비크=AP연합뉴스


본업이 치과의사인 감독과 영화감독 출신이거나 법학도인 선수들. 축구 팬이라면 어디서 많이 들어봤을 스토리다.

지난해 유럽축구선수권대회(유로2016) 8강 진출로 세계 축구판을 뒤흔든 아이슬란드 대표팀 얘기다. 이들이 이번에는 사상 첫 월드컵 본선 진출이라는 또 다른 대형사고를 쳤다.

아이슬란드는 10일(한국시간) 2018 러시아월드컵 유럽예선 I조 코소보와의 홈경기에서 2대0으로 이겼다. 7승1무2패(승점 22)가 된 아이슬란드는 크로아티아(승점 20)를 제치고 조 1위를 확정했다. 월드컵 유럽예선 통과는 바늘구멍에 들어가는 것만큼 어렵다. 워낙 쟁쟁한 팀들이 많고 직행 티켓은 조 1위에만 주어진다. I조에도 크로아티아·우크라이나·터키·핀란드 등 강팀들이 줄 서 있었다. 그러나 아이슬란드는 터키를 3대0, 우크라이나를 2대0으로 꺾고 크로아티아마저 1대0으로 잡으면서 반란을 일으켰다.


아이슬란드의 인구는 33만5,000명. 서울시 도봉구(35만명)보다도 인구가 적은 아이슬란드는 월드컵 역사상 본선에 진출한 가장 작은 나라로 기록됐다. 인구가 100만명도 안 되는 나라가 월드컵 본선을 밟기는 아이슬란드가 처음이다. 이전까지는 트리니다드토바고(137만명)가 인구 규모가 가장 작은 월드컵 진출 국가였다.

아이슬란드의 국제축구연맹(FIFA) 랭킹은 22위. 그러나 7년 전까지도 112위에 불과했다. 여전히 자국 프로축구리그는 없고 국토의 80%는 빙하와 용암지대다. 그런 아이슬란드는 지난해 사상 최초로 유럽선수권 본선에 올라 16강에서 잉글랜드마저 격침했고 올해는 러시아행 티켓까지 손에 넣었다.

전문가들은 아이슬란드 축구의 힘을 사회복지 시스템에서 찾는다. 1990년대 초반까지 유럽 최악 수준의 청소년 비행 문제로 골머리를 앓던 아이슬란드는 1998년에 스포츠를 통한 대대적인 사회복지사업을 시작했다. 동네마다 스포츠센터와 체육관을 지었다. 이와 함께 다양한 스포츠 활동 지원책이 마련되면서 약물과 담배 대신 운동에 재미를 붙이는 아이들이 늘어났다. 당시 아이들이 자라 현재 축구와 핸드볼·농구 등 엘리트 스포츠판에서 신바람을 이끌고 있다. 핸드볼은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 은메달을 땄고 농구는 올해 유로바스켓 본선에 처음 진출했다. 또 추운 날씨 때문에 실내축구가 활성화됐는데 이런 환경에서 자란 ‘인도어 키즈’가 현재 대표팀 주축이다. 이날 코소보전에서 골을 넣은 길비 시귀르드손(에버턴)과 요한 그뷔드뮌손(번리)은 모두 잉글랜드 프리미어리그에서 뛰는 빅리거들이기도 하다.

치과의사 출신의 헤이미르 하들그림손 대표팀 감독은 “지난해 유럽선수권에서 너무 성대한 파티를 치른 터라 다시 앞으로 나가는 데 어려움이 있었지만 우리는 결국 여기까지 왔다”며 “월드컵 진출은 끝이 아니다. 긴 여정의 출발일 뿐”이라는 말로 본선에서의 돌풍을 예고했다.

/양준호기자 miguel@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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